손 내밀어 도움 청하기

내가 나를 위해 말해야 하는 이유/ 관계를 살리는 솔직한 표현

by 남정하


입을 닫게 된 때가 언제였을까? 말을 해도 소용없다고 생각한 순간은 또 언제였을까? 생각할 때 몇 가지 떠오르는 장면이 있다. 가족들이 모여 밥을 먹고 있는 밥상이 보이고 저만치 울고 있는 아이가 보인다. 달그락거리는 수저 소리를 들으면서 훌쩍거리고 있다. 엄마가 말한다. " 이제 그만하고 와서 밥 먹어라. 밥 안 먹으면 너만 손해야. 그러지 말고" 그 소리를 들으니 더 서러워진다. 누구 때문에 이렇게 울고 있는데 달래주지는 않고 밥 먹으라니 될 소리야? 울음소리가 점점 커지자 엄마가 가족들에게 당부한다. " 밥 먹고 싶다 해도 밥 주지 마. 저 속 알 머리 하고는 아무도 못 말려. 아무리 성질부려도 소용없어" 아무리 울어도 뭐가 서러워서 우는지 물어봐 주지 않고, 그러든 말든 맛있게 밥을 먹는 가족들에 대한 원망 끝에 내린 결론. " 아무리 울어도 소용없어, 무슨 말을 해도 들어주지 않을 거야" 사춘기가 되면서 또 결심한다. ' 부모님은 공부 잘했을 때 관심 가져주고 내 말에 귀 기울여 주는구나.' 그런 부모가 야속했지만 공부는 나를 표현하는 수단이었고 자존감과 존재감을 세워주는 절대적인 결과가 되었다. 나의 상태를 가장 잘 드러내고 표현해 주는 수단이었던 공부는 이후, SKY 이름을 단 대학, 직장으로 대체되더니 결혼 후에는 아이로 내 자존감, 존재감을 채우는 수단이 바뀌었다. 난 내 목소리 대신 성적으로 말하는 사람으로 성장한다.


어렵고 힘든 일이 있을 때 위로받고 싶지만 속에서만 말들이 아우성칠 뿐, 입 밖으로 솔직하게 털어놓아지지 않았다. 언제부터 괴로움을 혼자 감당해야 한다고 생각했는지 모르겠다. 솔직하게 다 털어놓고 싶은데 입 밖으로 힘들고 외로운 마음을 한마디도 내뱉지 못하는 고통은 몇십 배로 요동친다. 나의 고통을 입 밖으로 말하지 못해서 그랬나 보다. 그러다 힘들어하는 사람들 이야기를 들어주기 시작했다. 다른 사람들 고통을 들으면서 나 자신이 부족하고, 충분히 갖지 못하고, 온전히 사랑받지 못한 외로움을 위로받았다. 하지만 남들 이야기는 남들 이야기일 뿐이다. 내가 도움을 받기 위해서는 내 손을 내밀지 않으면 안 된다. 다른 사람에게 손 내밀어 도움 청하기. 거기서부터 시작이다. 용기는 마음과 관련된 단어이다. 용기를 뜻하는 영어단어 courage의 어근 cor은 라틴어로 심장을 뜻한다. 처음에 용기는 자기 마음을 솔직하게 이야기한다는 뜻으로 사용되었다. 시간이 흐르면서 행동하는 의미로 바뀌었다. 용기의 현대적 의미는 자신이 누구인지 그리고 좋든 나쁘든 어떤 경험을 했는지를 솔직하게 말할 수 있는 내면의 힘과 의지가 빠져 있다. 마음속 이야기를 하는 것이야말로 평범한 용기라고 생각한다. 수치심 권하는 사회( 브레네 브레인 저자)에 나오는 내용이다.


난 상담사가 아니다. 공감을 전문으로 하는 전문 직업인이 아니라 공감에 대해 말하려면 부족하다는 생각이 든다. 정혜신 박사는 '당신이 옳다'에서 공감이 전문가 영역이 아님을 강조한다. 삶의 언어가 공감 언어다. 비싸게 돈을 지불하고서야 받을 수 있는 공감이 아니란 점에서 정혜신 박사 의견에 박수를 보낸다. 비폭력대화를 배우면서 나에 대한 치유는 공감에서 비롯된다는 걸 몸으로 경험했다. 그냥 의도를 내려놓고 안전하고, 솔직하게 있는 그대로 있었던 일을 털어놓을 수 있다면 그걸로 충분하다는 경험을 했다. 공감은 배워서 되는 기술이 아니다. 있는 그대로 판단받지 않고 솔직하게 내 안에 있었던 모든 부정적인 감정을 말로 표현할 수 있을 때 공감받은 느낌이 든다. 그럴 때 시끄러웠던 온갖 생각들이 편안해진다. 그 말을 할걸 그랬어! 후회와 어떻게 그럴 수가 있어? 상대 비난, 바보같이 왜 가만히 있었어하는 자기 비난이 밤새도록 오락가락하던 폭풍이 가라앉는다. 우리가 다른 사람에게 줄 수 있는 삶의 선물이 공감인 것 같다. 기댈 수 있는 어깨를 발견했을 때 비로소 삶은 살아볼 만한 곳이 된다. 이런 공감을 나누는 공감 연습 모임을 진행하고 있다. 공감 모임에 참여한 사람들은 자신만 고통스럽게 살아간다고 생각하면서 처음에 온다. 저마다 자신의 고통을 솔직하게 털어놓고 고통에 함께 귀 기울여주는 사람이 있다는 사실이 얼마나 감동이고 영혼을 위로해 주는 중요한 무엇인지 느낀다. 가장 부끄럽고 취약하다고 생각되는 일을 털어놓을 때 모두 마음으로 연결되는 느낌을 받는다. 인간은 모두 똑같구나. 나만 고통스럽게 살고 있는 게 아니네. 비극같이 고통스러운 삶의 한 자락은 한 사람에 국한된 그만의 문제가 아니다. 우리 마음 안에 고스란히 고통의 감정이 일상을 지배하고 있다는 걸 함께 느끼는 순간 웃을 수 있다. 함께 위로할 수 있다. 공감의 순간 참여한 모든 사람이 한마음으로 연결되는 순간, 자신 안에 있는 고통이 함께 치유된다. 이 모두 손을 내밀어 도움을 청해야 가능한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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