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나를 위해 말해야 하는 이유/ 관계를 살리는 솔직한 표현
사람들은 하지 말라고 하면 더 하고 싶다. 못하게 하면 더 하고 싶어 진다. '하지 마' 란 말이 가진 에너지이다. 할 생각이 없더라도 하지 말라는 말을 들으면 해보고 싶은 마음이 생긴다. 부모나 상사처럼 힘 있는 사람이 하지 말라고 할 때 뜻대로 따라도, 따르지 않아도 불편함이 생긴다. 우리는 하든 하지 않든 그 모든 선택이 오직 자신의 결정으로 이루어지길 바란다. 우리가 바라는 가장 중요한 건 바로 자율성과 선택이다. 다른 사람의 영향으로 할지 말지를 결정하면 자율성이 생기지 않는다. 스스로 하고 싶은 마음인 자율성은 자기 선택을 통해 생긴다. 듣는 사람이 하지 말아 달라는 부탁을 들어주지 않으면 비난이나 벌을 받을 거라고 믿게 되면 그 부탁은 강요로 받아들여진 것이다. 강요로 들으면 두 가지 선택밖에 보이지 않는다. 그대로 따르든 다르지 않든 두 가지인데 하나는 복종이고 다른 하나는 반항이다. 듣지 않으면 비난받고 벌 받을 거라는 두려움 때문에 그대로 따르게 되면 자율성을 잃게 된다. 상대에게 부탁을 했는지 강요했는지는 상대가 말을 듣지 않았을 때 어떻게 반응하지에 달렸다. 내 말을 들어주지 않을 때 화가 나면 강요한 거다. 강요는 내 말을 꼭 들어줘야 한다는 생각을 갖고 할 때 상대에게 부담으로 느껴질 수 있다. 부담을 느끼면 상대가 아무리 좋은 의미에서 말한다 하더라도 마음의 저항감이 생긴다.
“ 뛰지 마, 핸드폰 보지 마, 떠들지 마 ” 부정으로 표현된 말을 들으면 두 가지 문제가 있다. 부정으로 금지하는 말은 자칫 오해를 일으킨다. 하지 말라고? 하지 말라는 말이 뭘 하지 말라는 말인지 구체적이지 않아 마음의 저항감이 더 커진다. 결혼해서 아이는 혼자 낳았는지 회사 일로 늦는 날이 많은 남편에게 화가 난 아내가 소리를 질렀다. " 당신은 일은 혼자 다 해? 남편에게 제발 일찍 집에 들어오라고 잔소리를 했더니 집에 7시까지 와서 주야장천 TV를 보더라는 거다. TV 보지 말라고 했더니 방에 들어가서 컴퓨터 하느라 나오지 않았다는 우스개 소리가 있다. 아내가 원했던 부탁은 “ 남편이 적어도 일주일에 하루 저녁은 집에 7시까지 와서 아이들과 함께 밥을 먹고 시간을 보내달라”는 것이었다. 원하는 것을 구체적이고 긍정적으로 표현할 때 상대에게 더 잘 전달된다.
긍정적인 말을 하는 것 이외에도 막연하고 추상적인 표현을 피하고 실행할 수 있는 구체적인 행동으로 말하면 훨씬 잘 들을 수 있도록 부탁할 수 있다. 뛰지 마 대신에 천천히 걸어줄래? 핸드폰 보지 마 대신에 책 읽으면 어떨까? 떠들지 마 대신에 20분 동안 말하지 말고 있어 줄래? 가정에서 부모와 자녀가 나누는 대화 중 일부이다. “ 다 좋은데 아빠는 네가 좀 더 자신 있게 살았으면 좋겠어. 자신감을 가지라고” 아빠가 아들에게 말했더니 “ 자신 있게 살고 있잖아요!” 아들이 퉁명스럽게 대답한다. “ 내 말은 살아가는 데는 자신감이 제일 중요하다고. 두려울 게 뭐가 있어. 자신감을 가지라고” 그 말을 들은 아들은 “ 이미 그렇게 하고 있잖아요” 더 이상 말이 통하지 않는다는 듯 밥 먹던 숟가락을 놓고 일어났다. 아들을 위해서 하는 말인데 도대체 들으려고 하지 않는다고 아버님은 수업에 와서 하소연을 했다. 어떨 때 자신 없어 보이는지 말라고 그럴 때 긍정적인 행동 언어로 구체적으로 어떻게 했으면 좋을지 말해 보라고 했다. 그랬더니 “ 잘못했다고 야단치려고 하는 말이 아닌데 숙제 다했는지 물으면 눈치를 봐요. 그럴 때 눈치 보지 말고 당당하게 대답했으면 좋겠어요. 아직 하지 못했고 언제까지 다하겠다고 이야기하면 이해할 것 같아요. ” 아버지를 어려워하고 묻는 말에 눈치 볼 때 답답하셨나 보다. 지금 말한 그대로 부탁해 보라고 했더니 자기 말을 아들이 어떻게 들었을지 알겠다고 고개를 끄덕거린다.
나도 남편과 27년 동안 살면서 산 횟수만큼 자주 싸운 싸움은 TV 시청 문제였다. 정말 잔소리하지 않고 그냥 두면 아침 먹고 10시 반 정도서부터 12시 넘어까지 TV를 본다. 휴일 반나절이 지나는 순간 슬슬 인내의 한계가 오기 시작한다. 한두 번 화장실을 오가다가 남편을 보면 나도 모르게 한숨이 나온다. 남편 말로는 경멸의 눈초리를 자기를 보는 순간 오기가 생긴다고 한다. 그 순간을 스스로 알아차리고 산책을 나오거나 차 한잔 마시러 집을 나오면 만사 오케이다. 나도 나가기 귀찮은데 하루 종일 TV 소리가 들리면 거슬리기 시작한다. 드디어 " 여보, 제발 TV 좀 그만 볼 수 없어 " 하면 시한폭탄 터지듯이 어김없이 터진다. 자신이 유일하게 마음 편하게 쉴 수 있는 휴일에 세상 근심 내려놓고 TV 보는 게 유일한 낙인데 왜 당신이 하라 마라 참견하냐고 화를 낸다. " 아~ 참다 참다 욱하고 올라올 때 다르게 부탁할 방법이 없을까?" 어떨 땐 어떤 상황의 틀에 둘 다 갇혀있다는 생각이 든다. 왜 화가 나면 그럴 의도가 아니었는데 예전 방식 그대로 고장 난 테이프 돌리듯이 자동으로 말이 튀어나온다는 느낌이 들 때 있죠? 다르게 말하는 방법, 부정적으로 명령하듯이 말하지 않고 상대에게 내가 뭘 원해서 그런 말을 하는지 전할 수 있도록 표현하는 법이 뭘까? 하다가 찾은 답이 긍정적인 행동 언어로 자신이 원하는 걸 부탁하는 것이다. " 여보. 내가 TV 소리 없이 조용한 시간이 필요해. 당신 방에 들어가서 보면 어때? " " 부탁이 있는데 난 당신이 휴일 시간을 나랑 함께 즐거운 시간을 가졌으면 좋겠어. 우리 산책 다녀올까?" 하지 마, 보지 마, 나가지 마! 아이들이나 남편이나, 혹은 상사나 시부모님에게 이런 말 들으면 나도 기분 나쁘고 시켜서 하면 저항감 생기고 따르지 않으면 죄책감 생긴다. 다르게 살고 싶으면 다르게 말해야 한다. 실제로 내가 원하는 게 뭔지 긍정적으로 말할 때 효과가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