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나를 위해 말해야 하는 이유/ 관계를 살리는 표현
언제부터인가 무엇이 옳고 그른지, 좋고 나쁜가 하는 판단의 기준을 다른 권위자 반응에 의존했던 것 같다. 대학을 졸업하고 제약회사 첫 여대 졸 회사 사보기자로 일을 시작하면서 내 내면의 권위자가 부모님에서 직장 상사로 옮겨졌다. 지금도 생생하게 기억난다. 대학교 대선배님이었던 광고부 과장님이 날 불러 일어 번역을 부탁했던 적이 있다. 당시 일어학원에 다니면서 겨우 우리나라 자. 모음 같은 히라가나를 익히기 시작한 두 달쯤 지난 시기였다. 과장님이 불러서 시키는 일을 잘 해내고 싶은 마음이 컸다. 과장님에게 도움도 되고 싶었지만 무엇보다 못하겠다는 거절을 할 수 없었다. 열심히 해보겠다고 받아오면서 한 걱정이 됐다. 그날부터 사람들을 찾아다니면서 한 줄 한 줄 물어 물어 번역을 해서 냈다. 훗날 동기 중 한 명이 나한테 물었다. " 잘하지 못하는 일인데 왜 할 수 있다고 번역 일을 맡았어? 이해가 안 되더라 " 부족하고 모자란다는 생각을 다른 사람에게 들키고 싶지 않았던 것 같다. 돌아보니 마음이 느끼고 있는 진실보다 남이 나를 어떻게 평가하는가가 더 중요했다. 선택의 기준에서 내가 어떻게 느끼고 생각하는지는 중요하지 않았다. 자연스럽게 부모님이 옳다고 생각하는 것과 기대를 채우려고 애썼던 어린 시절이 떠오른다. 자기표현은 어떤 선택을 할 때, 사람들과 대화를 나눌 때 " 넌 어때? 너는 어떻게 느끼고 생각하는지 말해줘. 네가 하고 싶다는 말은 너에게 어떤 의미가 있다는 건지 말해줄래?"에 대한 표현이다. 선택의 기준이 남들이 옳다고 생각하는 당위와 책임, 기대가 아니다. 그건 알겠고 그럼 너는 어때? 네가 어떻게 생각하고 느끼는지가 제일 중요해. 그걸 듣고 싶어" 말할 때 나를 중요하게 여기는 존중이 자기표현이다. 아이를 키울 때 나 역시 자신의 내적인 동기에 따라 행동하기보다 '엄마의 기준'에 따르도록 협박, 강요한 게 아닌가 돌아보게 된다.
다른 사람에게 자신을 분명하고 솔직하게 표현하기 위해서는 있는 그대로 본 대로, 들은 대로 관찰로 말하는 것이 중요하다. " 어쩜 애가 그렇게 고집이 세니? 이기적이니? 못돼 먹었니? 게으르니? " 모두 그 아이 행동을 있는 그대로 보지 않고 평가하고 판단하는 말이다. " 한 번도 그냥 하겠다고 말한 적이 없어. 언제나 똑같아. 넌 늘 네가 먼저지? 언제 한 번이라도 네가 잘못했다고 먼저 말한 적 있니?" 그동안 했던 행동들을 모아 싸잡아 평가하는 말이다. 가만히 생각해보면 한순간도 판단하거나 비판, 또는 다른 형태로 분석하지 않으면서 자녀 행동을 있는 그대로 본 대로, 들은 대로 관찰하기 쉽지 않다는 걸 알 수 있다. 누구나 평가나 비난하는 말을 들으면 연결이 어렵다. 상대 말을 잘 들으려고 집중하기보다 반항하거나 변명하기 위해 에너지를 쓴다. 서로 자기 말만 한다. 자녀가 동생한테 장난감을 망가트렸다고 와서 울며 떼를 쓴다고 생각해 보자. 망가트렸다는 표현 자체가 이미 판단이다. 동생이 장난감 망가트렸다고 우는 아이의 자기표현을 돕기 위해서는 동생의 어떤 행동이나 말이 화나게 했는지 본 대로, 들은 대로 관찰로 이야기를 나눈다.
" 동생이 장난감을 망가트렸어요 " - 로봇 손을 잡고 흔들었더니 팔이 떨어졌어요.
" 얘가 겁줘요 " - 엄마한테 실내화 잃어버린 거 말할 거라고 세 번 말했어요.
" 동생이 약 올려요" - 아이스크림 가까이 보여주면서 천천히 핥아먹어요.
어떤 행동, 말을 듣거나 보고 화가 났는지 구체적인 상황을 떠올려본다. 관찰이란 판단이나 평가를 하지 않고 있는 그대로 보고, 들리는 그대로 듣는 것을 말한다. 본 것을 사진 찍듯이 말하고, 들은 것을 녹음하듯이 그대로 표현하는 것이다. 평가와 관찰을 분리하지 못하면 서로 " 내가 언제 그랬어? 안 그랬거든! " 시시비비를 따지느라 갈등이 더 커진다.
다음은 느낀 대로 말한다. 느낌을 표현하는 것이다. 동생이 로봇 장난감 손을 잡고 흔들었는데 손이 쑥 하고 빠졌을 때 그때 마음이 어땠는지 느낌을 표현하게 한다. 느낌을 안다는 것은 마음 상태를 알아주는 것이고, 그때 느낌이 어땠는지 알아주고 표현하는 동안 이해받는 느낌이 든다. 느낌은 마음의 신호등이다. 자신의 느낌을 잘 알고 이해할 수 있다면 다른 사람에게 자신의 마음을 잘 표현할 수 있다.
남자아이 셋을 키우는 엄마는 섬세하게 아이들 감정을 잘 헤아릴 줄 안다. 형이 갖고 놀던 로봇을 망가뜨렸다고 울음을 터트린 막내에게 엄마가 말한다. " 보자 우리 막내가 속상해서 우는구나. 아끼는 로봇을 형이 떨어뜨려서 망가졌어? 그래서 속상해? " 이렇게 말하니까 막내의 울음소리가 조금 사그라든다. " 저런 속상하지? 로봇 다시 고치려면 어려운데 형아가 떨어뜨렸구나." 하니까 막내가 " 응 "하고 대답을 한다. " 소중한 로봇을 빌려 갈 때는 물어봐달라고 형한테 말할까?" 했더니 고개를 크게 끄덕거린다. 옆에서 지켜보던 형이 웃으면서 " 엥? 벌써 그쳤네. 알았어 알았어 다음부턴 안 그럴게. 형이 고쳐줄까?" 한다. 엄마가 아이 느낌에 집중하면서 현재 무엇을 원하는지 느끼면서 느낌을 읽어준다. 아이들은 자신이 느끼는 느낌을 잘 알 수 없다. 엄마가 아이 입장에서 본 대로, 느낀 대로 관찰과 느낌으로 마음을 따라가 준다. 느낌을 물어봐 주면 상대를 비난하고 탓하던 시선을 자연스럽게 내면으로 옮아가게 된다. 느낌은 온전히 자신의 것이라 그때 내 마음이 어땠는지 살피게 되고 느낌과 잘 연결할수록 원하는 것이 뭔지 명확하게 알 수 있다. 자신 짜증의 책임을 다른 사람 행동 탓으로 넘기지 않고 자신의 느낌과 원하는 것과 연결한 후 자기표현을 할 때 다른 사람으로부터 공감받을 가능성이 커진다.
가장 중요한 자기표현의 핵심은 원하는 걸 말하는 것이다. 아이들 키울 때 도시락을 쌀 때가 있다. 첫아이 학교에서 바깥 학습 갈 때는 정말 신경 써서 도시락을 싸줬다. 미리 장 봐서 예쁜 도시락에 반찬을 두세 가지 싸고 색 예쁜 과일까지 챙겨서 공들였다. 둘째 학교는 정말 그냥 보냈다. 학교에서 둘째 아이가 반 여자 친구들 반찬을 뺏어 먹는다는 소리가 들려왔다. 순간 엄마로서 부끄럽고 화가 났다. 둘째와 이야기를 나누었다. " 여자애들이랑 밥 먹으면 어때?" 물었더니 친구들이 싸온 맛있는 반찬 이야기를 미주알고주알 늘어놓는다. " 반찬같이 먹으면서 기쁘고 즐거웠구나? 부럽기도 하고. 엄마도 매번 다른 반찬을 신경 써서 싸줬으면 좋겠어?" 물었더니 고개를 끄덕거린다. " 엄마는 매번 김치볶음밥만 싸주잖아. 먹기 싫단 말이에요 "한다. 그 얘기 들으니까 가슴이 뜨끔하고 미안했다. 아이가 원하는 건 엄마의 사랑과 관심, 도시락을 정성스럽게 싸주는 엄마 마음이었다. 모든 행동에는 만족하고자 하는 욕구가 있다. 아이의 반항, 떼쓰기, 잘못이라 판단되는 모든 행동 안에 아이가 원하는 걸 찾아 연결할 수 있다면 참 좋겠다. 그걸 표현해주고 말하게 하면서 자신의 욕구를 소중하게 생각하면서 성장하도록 돕고 싶다. 대체로 우리는 자신의 욕구가 충족되지 않았을 때 다른 사람 탓으로 돌리는 것에 익숙하다. 상대를 탓하기보다 자신의 원하는 것을 말하기 시작하는 순간부터 서로 원하는 것을 할 수 있는 방법을 찾을 가능성이 훨씬 커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