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나를 위해 말해야 하는 이유/ 솔직하게 말하려면 어떻게 말할까?
" 또, 또, 또 그런다! " 아이가 엄마 TV 보는데 앞에 서 있다. 저녁 먹고 아이 챙기고 그 시간에 TV 보는 재미에 쏙 빠져 있는데 아이가 심통을 부린다. " 재준아! 너 왜 또 그래. 엄마가 요것만 보고 놀아준다 했잖아" 그렇게 말하면 슬그머니 비키던 아이가 오늘을 꼼짝하지 않는다.
" 넌 어떻게 집에만 오면 날마다 엄마한테 놀아달라고 하니?"
" 한 번도 혼자 논 적이 없어. 엄마도 힘들어"
친구들이랑 유치원에서 실컷 놀고 와서 집에서 뚝 떨어져서 혼자 잘 놀면 좋으련만 외아들이라 그런지 매번 놀아달라고 한다.
" 엄마도 TV만 보잖아, 꼼짝하지 않을 거야. 엄마 TV 못 보게 할 거야!"
" 또, 날마다, 한 번도"와 같은 빈도 부사를 붙여 말하면 아이들은 저항한다.
" 또 컴퓨터 게임하니? 공부를 그렇게 열심히 해 봐라 엄마가 잔소리하나?
" 너는 매일 게임이야! 게임이 그렇게 재미있니?"
아이는 엄마 말에 싸울 듯이 달려든다. " 엄마가 언제 맨날 게임시켜줬어요? 어제, 그저께 엄마가 게임 못하게 해서 안 했거든요!" 한다.
자녀에게 말을 할 때 마음을 연결하는 첫 번째 요소가 관찰이다. 자녀의 어떤 말과 행동이 우리의 느낌을 자극했는지 객관적이고 구체적으로 묘사하는 것이다. 그러니까 " 또, 언제나, 한 번도" 같은 빈도 부사에는 부모의 판단, 추리, 의견, 추측, 선입관 등의 평가가 섞여 있다. " 네가 한 번이라도 엄마 말 듣고 제대로 해 본 적이 있니?" 이렇게 말하면 자녀는 이 말을 비난, 비판으로 듣고, 부모 말에 거부감을 갖게 된다. 대개 변명하거나 자신을 방어하려 하거나 아니면 공격할 준비를 하는데 에너지를 쓰느라 더 이상 부모의 말을 듣지 않는다. 부모 말이 들리지 않는다. 관찰로 말하는 목적은 연결에 있다. 대화는 자녀의 어떤 말, 행동, 상황이 부모의 느낌을 자극했는지, 원하는 것을 표현하고 부탁하기 위한 것이다. 대화의 문을 여는 첫 말은 그래서 객관적이고 구체적인 묘사여야 한다. 비디오카메라로 그 상황을 찍었을 때 보게 되는 장면을 떠올리면 좋다.
" 엄마가 TV 보고 있는데 네가 TV 앞에 3분 동안 서 있으니까"
" 지금이 3시네. 게임 약속 시간이 30분이 지났는데 네가 게임을 하고 있으니까 "
꼭 시간을 재서 말하라는 건 아니다. 그만큼 얼마 동안 아이가 서있었고, 게임을 했는지 의식하란 말이다. 부모의 판단, 추리, 의견, 추측, 선입관 등의 평가가 섞인 말로 시작하면 엄마가 원하는 걸 자녀에게 말하기 전에 대화의 문이 닫힌다. 자녀와 연결이 끊어진다.
부모가 " 또, 언제나, 한 번도 " 같은 빈도부사를 넣어 말하면 자녀를 혼내거나, 비난하려는 의도에서 말한다고 자녀가 느낀다. 어떤 행동이나 말이 엄마에게 영향을 주었는지 동의하고 이야기를 나누는데 도움이 된다. 관찰로 이야기를 시작하는 이유는 아이가 그런 행동을 할 때 엄마가 원하는 욕구를 표현하기 위해서다. 저녁 먹고 잠깐 드라마 보는 동안 엄마에게 휴식이 된다는 것, TV를 보는 동안 잠깐 쉬고 나면 아이와 놀아줄 여유가 생긴다는 걸 표현하려는 의도가 담겨있다. 날마다 게임한다고 혼내려는 게 아니라 게임 약속 시간이 30분 지났다고 알려주고 싶어서다. 약속한 규칙을 아이가 지키게 하고 싶고 약속한 시간을 지키는 습관을 엄마가 길러주고 싶다는 말을 하기 위해서 관찰로 말문을 연다. 관찰로 대화를 시작하면 저항하거나 변명하지 않고 들을 수 있다. 있는 그대로 객관적으로 구체적으로 관찰하려는 노력은 부모의 감정 조절에도 영향을 미친다. " 언제나, 날마다, 늘, 또, 한 번도" 같은 빈도 부사는 과거 지나간 잘못을 줄줄이 소환해서 다시 혼낸다는 억울함이 생길 수 있다. 대화는 우리가 보고 들은 그대로의 사실을 지금 일어난 시점으로 연결할 때 서로 잘 연결할 수 있다. 가끔 TV에 상담 프로그램에서 비디오카메라를 집안 곳곳에 설치한 후, 하루 일상을 찍어 부모에게 보여줄 때가 있다. 어떤 교육과 이론보다 효과가 있다. 있는 그대로 아이 모습과 부모 자신을 객관적으로 관찰하듯이 볼 때 아이와 부모 자신에 대한 이해가 깊어진다.
" 넌 어쩜 그렇게 이기적이니?"
" 한 번도 엄마가 챙기지 않으면 스스로 숙제를 한 적이 없어!"
" 우리 아이는 늘 학교에서 위축되고 자신감이 부족해서 눈치를 봐요 "
" 산만해서 가만히 혼자 앉아 책을 읽을 줄 모르는 아이예요 "
" 게을러서 아침마다 깨우느라 진을 빼야 겨우 일어나는 아이예요 "
감정조절( 권혜경 지음)에 나온 글이다. " 늘 항상 맨날 한 번도 절대로라는 식의 all or nothing의 단어를 쓰면 극단적인 생각을 하게 된다. 우리 뇌에는 위험을 감지하는 장치인 뉴로셉션이라는 것이 있는데 여기서 위험을 감지하면 몸과 마음에 신호를 보내 위험에 대처하도록 한다." 이런 단어들을 들으면 뇌의 뉴로셉션이 위험으로 감지해서 우리 몸이 싸우거나 도망가기 모드기 된다. 이런 상태가 되면 모든 것을 적군과 아군, 혹은 흑과 백으로 판단하는 상황으로 몰려 좋은 뜻에서 나를 위해 하는 말이라고 생각하지 못한다. 가만히 아이에 대해 떠올려보면서 아이를 있는 그대로 보고 있는지, 끊임없이 판단하고 추측하고 이미 갖고 있는 선입관이란 틀로 대하고 있는지 점검해 볼 필요가 있다. 이렇게 판단하고 생각하는 순간 화가 나서 소리를 지르게 된다. 관찰에 평가를 섞은 말들은 듣는 사람뿐 아니라 말하는 사람에게도 부정적인 영향을 미친다. 어떤 분은 그런 생각이 들지만 화내지 않는다고 안심한다. 하지만 판단하고 그렇게 생각하는 순간, 이미 내면에서 요동치는 감정을 자제하고 억누르느라 많은 에너지가 소모된다는 사실을 이해했으면 한다. 그 감정의 영향을 고스란히 자신이 받게 된다. 비폭력대화에서는 다른 사람에게 자신을 분명하고 솔직하게 표현하려 할 때 관찰이 아주 중요한 요소이다. “ 넌 왜 그렇게 산만하니? ”처럼 평가를 섞어서 말하면 듣는 사람이 내가 말하고자 하는 진심을 이해할 가능성이 줄어든다. 그럴 때 본 대로 들은 대로 객관적이고 구체적인 관찰로 이야기한다. “ 선생님이 5분 눈을 감고 있으라고 할 때 눈 뜨고 두리번 둘러보는 걸 봤을 때 ”라고 말을 시작한다. 언제나, 늘, 항상처럼 행동을 일반화할 때 듣는 사람은 마음으로 저항하게 된다. 관찰을 표현하는 말은 때와 말하고자 하는 의도에 맞게 구체적이어야 한다. “ 시간관념이 없어 ”가 아니라 “지난번 세 번 만나는 동안 모두 20분씩 지난 후에 왔어”라고 있었던 일을 있는 그대로 말한다. 그럴 때 듣는 사람이 잘못했다는 비난으로 듣지 않고 말하는 사람 말에 집중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