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하는 걸 콕 집어 말하기

내가 나를 위해 말해야 하는 이유/ 솔직하게 표현하려면 어떻게 말할까?

by 남정하


처음에는 진심에서 우러나온 마음이었다. 학교에서 함께 강의를 하는 파트너 선생님을 선택이라기보다 가는 김에 기꺼이 해줄 수 있겠다 싶었다. 학교에 강의 기획서랑 서류를 내야 하는데 이메일로는 안되고 직접 방문해서 보안관실에 맡겨달라는 거다. 누군가 한 명은 가야 한다. 둘이 각각 가는 건 아무래도 시간낭비 같았다. 이왕 가는 길이니 파트너 선생님 서류를 메일로 보내 달라고 하고는 한 사람만 수고하면 되겠지 싶었다. 함께 볼 자료를 복사해 달라고 복사집에 맡겨 놓은 상태여서 학교 가는 길에 그것도 찾아갈 요량이었다. 항상 나가기 전에 내 머릿속은 다 계획이 있다. 대충 시간이 얼마나 걸릴 건지에 대해서도 다 계획이 있다. 집을 나설 때 우선 동선을 먼저 그려본다. '나가서 복사집 들러 잠실에 있는 학교 갔다가 돌아오는 길에 재래시장 들러 야채 사고, 아! 고깃집도 들러야지' 하고 준비를 하면서 컴퓨터 메일에서 서류를 프린트하려는데 컴퓨터가 열리지 않는다. 전원을 켰는데 아무 소리가 나지 않고 전원이 들어오지 않는다. 순간 조급해진다. 컴퓨터가 열리지 않으면 서류를 프린트할 수 없다. 오후 5시까지 제출하려면 2시에는 출발해야 하는데 미리 확인하지 못한 자책이 올라온다. 아들을 불러 도움을 요청했는데 잘 모르겠다는 답이다. 종종 이런 일이 있다. 그럴 때마다 당황스럽다. PC방에 들러서 프린트를 해야 하나? 도서관은 코르나 때문에 열지 않고 있다. 전화해서 사정을 이야기해야 하나? 생각이 복잡하다. 이왕 가는 김에 서류를 제출하겠다고 먼저 말한 게 후회스럽다. 가만있다가 상대에게 부탁할 수 있었을 텐데 항상 먼저 하겠다고 나서서 일을 만든다는 자책도 생긴다.






예상치 못하게 서류 프린터 문제가 걸리자 어깨가 잔뜩 긴장되면서 복사집 들러 복사물을 찾는 일이 부담이 된다. 예전에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기로 했던 일을 마치느라 스트레스를 받았다. 서둘러 지인에게 전화해서 프린트를 부탁했다. 메일로 자료를 보냈는데 받지 못했다는 바람에 몇 번 일을 확인하고 다시 보냈다. 마음이 부산해진다. 내 서류는 어제 미리 인쇄해 둬서 괜찮았는데 파트너 선생님 서류 인쇄가 문제였다. 더구나 마감 시간이 있어서 제시간에 내야 한다는 부담이 컸다. 잔뜩 책임감을 갖고 긴장하는 나를 느끼면서 이렇게 말했다. " 잠시 멈추자, 여유를 갖고 잠깐만. " 상황은 언제든지 변할 수 있다. 어제는 내가 정말 기꺼이 하고 싶은 마음에서 그렇게 제안했지만 지금은 상황이 달라졌다. 어제는 해줄 마음이었지만 오늘은 복사물 찾는 일이 마음에 부담이 된다면 못할 수 있다. 그럴 수 있음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인다. 할 수 있는 만큼, 하고 싶은 만큼 그때그때 내 마음과 연결해서 하면 된다. 고민하길 멈추고 톡을 보냈다. 지금 컴퓨터가 켜지지 않아 지인네 집으로 프린트하러 가야 한다. 학교에 서로 내는 김에 같이 내고 돌아오는 길에 복사물까지 찾아오고 싶었는데 힘들 것 같아서 연락했다. 복사물 찾는 게 힘들 것 같은데 대신 찾아줄 수 있는지 물어봤다. 귀한 자료라 선물로 주고 싶다고 했는데 내가 직접 찾으러 가려니 선물 받는 느낌이 덜 들었다고 말했다. 잠시 후 답이 왔는데 알았다고 하면서 그렇게 말해줘서 고맙다는 내용이었다. 안 그래도 대신 서류를 내주겠다고 해서 미안했는데 복사물은 직접 찾으러 가겠다고 했다. 그 말을 듣자 긴장과 부담이 싹 사라졌다. 역시 말하길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혼자 애쓰느라 부담과 스트레스가 생긴다면 그건 순전히 나 때문이다. 혼자 감당하고 책임지려 애쓰다가 결국 엉뚱한 곳에 터질 뻔했다. 톡으로 솔직하게 상황을 말하고 양해를 구한 후 원하는 걸 표현하고 나니 한결 편안해졌다. 정말 원했던 건 복사물을 선물로 받고 싶었다는 얘기였다. 우리 집 근처에 와서 복사물을 맡긴 바람에 내가 찾아서 줘야 한다는 생각을 했다. 선물 받는 사람이 직접 찾아오면 선물처럼 느껴지지 않아서다. 사실 별거 아닌 일인데 상대를 배려한다는 명목으로 일을 하다 혼자 감정을 쌓는 일이 얼마나 많았는지 되돌아보게 된다. 혼자 배려하고 혼자 억울하고 서운해하다 결국 쌓인 감정이 엉뚱한 곳에 분출되는 경우가 많다. 누가 하라고 했냐고요? 내가 하겠다고 자처한 일이다.






상대에게 말을 할 때 그래서 원하는 게 뭔지 명료하고 정확하게 알고 전달할 수 있어야 한다. 처음에는 진심에서 우러나오는 마음이었고 기꺼이 할 마음이 있었다. 대체로 내 입으로 낸 말은 지키고 싶은 마음 때문에 책임감을 갖는다. 상황은 언제든 변할 수 있다. 내가 힘에 부치는데도 약속이나 책임을 다하기 위해 애쓸 때 내가 힘들다. 힘들 때는 힘들다고 솔직하게 표현할 필요가 있다. 그게 다른 사람에 대한 배려이다. 힘들어도 말하지 못하고 상대를 위해 배려한다고 생각될 때 그 행동은 진정한 배려가 아니다. 상대에게 꼭 표현해야 할 말은 그래서 어떻게 해주길 바라는지, 내가 원하는 도움이 어떤 건지 명료하게 구체적으로 말해야 상대가 내 말에 응할 수 있다. 자신의 욕구를 찾아 자신이 무엇을 원하는지 연결은 소통에 정말 중요하다. 나라도 파트너 선생님이 그렇게 말해 준다면 흔쾌히 괜찮다고 말할 것이다. 오히려 힘들어도 그냥 하고 마는 것보다 힘든 상황을 말해줄 때 나를 믿고 편안하게 생각한다는 느낌이 들어 친밀감이 느껴질 것이다.





keyword
작가의 이전글욕구는 생동하는 에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