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나를 위해 말해야 하는 이유/ 말할 수 있게 하는 힘, 공감
가장 강력한 치유는 공감이다. 공감이란 말이 감히 다가가기 어려운 전문용어처럼 들릴까 봐 조심스럽다. ‘당신은 옳다’는 정혜신 박사는 책에 전문가에게 돈을 주고받는 공감이 아니라 누구나 자신의 삶의 자리에서 이루어질 수 있는 공감을 위해 책을 쓰게 됐다고 말한다. ‘적정 심리학’이란 용어를 사용하고 있는데 자격증이 있는 사람이 치유자가 아니라 사람을 살리는 사람이 치유자라고 한다. 바로 옆 사람의 속마음을 이해하고 도울 수 있는 소박한 심리학을 ‘적정 심리학’이라 이름 붙였다. 지금 나도 공감이란 단어를 떠올릴 때 내가 그럴 자격이 있어? 두려움이 생긴다. 자신의 감정을 느끼기도 힘든 상황에 다른 사람 감정을 공명하듯 느끼려면 고도의 훈련이 필요하다는 생각을 한다. 공감이 어떤 것인지, 공감을 어떻게 하는 것인지에 관해 쓰고 싶지 않다. 많은 책들이 수없이 이야기하고 있다. 게다가 난 아직 공감능력이 부족하다.
공감이 원지 잘 모르겠다. 하지만 공감에 실패하는 순간은 생생히 기억할 수 있다. 상대 반응을 통해 쉽게 알 수 있다. 다른 사람의 말을 들을 때 이게 공감인지 아닌지 구분하려고 애쓰게 되면 그 순간부터 잘 들을 수 없다. 공감을 잘해야 한다는 생각이 있을 때 공감을 놓친다. 들으면서 옳고 그른 판단이 올라올 때 상대에게 집중하지 못한다. 공감에 실패하는 순간을 마주하고 있을 때 이해서 공감이 어렵구나 싶다. 그 모두 나에게서 비롯된 생각들이 공감에 방해가 된다. 가장 쉬운 공감은 상대가 하고 싶은 말을 충분히 할 수 있도록 들어주는 거다. 어떤 의도를 갖지 않고 상대 입장에서 그냥 듣는다. 토 달지 않고 비난하지 않고 판단하지 않고 듣는다. 잘 들어주면 감정이 가라앉는다. 말로 표현하면 감정이 가라앉는다는 말이 여기 해당된다. 누군가 들어준다면 감정 회복이 빠르다. 들어주는 것만으로도 공감받는 느낌이 든다. 우울하고 슬플 때 우리가 기대서 울 수 있는 누군가의 어깨나 품이 있으면 우울감에서 빨리 회복된다. 아무에게도 말할 사람이 없다고 생각할 때 감정이 훨씬 고통스럽고 힘들다. 혼자라는 외로움이 우울감을 크게 느끼게 한다. 이렇게 속상하고 서운한 마음을 누구에겐가 털어놓고 부정적인 감정을 긍정적으로 전환할 분출구가 필요하다. 임금님 귀는 당나귀 귀라는 옛 우화가 있지 않는가? 누군가에게 솔직하게 털어놓고 그때 내 마음이 어땠는지 말하고 나면 다소 가벼워진다. 말로 표현해야 고통이 덜어진다고 한다. 말로 표현하고 털어놓으면서 자신의 감정을 잘 이해할 수 있다. 공감의 가장 쉬운 단계는 말없이 들어주는 침묵 공감이다. 상대에게 그럴 만한 이유가 있겠지, 옳고 그름에 대한 판단 없이 그 사람 마음과 연결해서 그냥 들어준다. 상대에게 뭔가 하려고 할 필요가 없다. 상대가 어떻게 하고 싶은지, 해야 하는지 그 사람 마음 안에 이미 모두 있다. 힘들어할 때, 화가 날 때 그냥 마음으로 들어주면 된다. 공감이 전부다. 감정을 쏟아낼 수 있도록, 무슨 말을 해도 괜찮다는 안전함으로 들어주는 일이 전부다. 속상한 일을 충분히 털어놓고 나면 신기하게도 평온함이 회복되면서 저절로 답을 찾아간다.
지난번 남편이랑 텔레비전 시청을 놓고 한바탕 큰 소리가 오고 갔다. 머릿속으로는 누구의 잘잘못을 가리는 일이 아무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걸 너무 잘 안다. ' 그때 반나절 들린 텔레비전 소리가 소음처럼 들렸구나. 잠시 조용한 공간이 필요했구나. 노트북 싸 들고 카페에 가서 조용히 있다 올 걸 놓쳤구나. 짜증 내지 않고 잠시 조용히 있고 있다고 부탁하지 못했구나.' 후회가 생긴다. 문제는 복잡한 생각과 감정이다 머리로 정리해도 마음이 시끄럽다. 한번 생긴 감정은 잘 다독다독 위로해 줘야 사라진다. 왜 그런 감정이 생겼는지 물어봐 주고 알아주고 원하는 걸 물어봐 줄 때 편안해 진자. 이럴 때 공감 모임이 있다. 한 주 한번 모여 충분히 쏟아낸 말을 따뜻하게 들어주는 모임이다. 잘못이 누구에게 있는가는 중요하지 않다. 하지만 감정이 가라앉지 않은 상태에서는 상대 탓을 하게 된다. 이번 일만이 아니라 신혼부터 있었던 반복되는 싸움까지 다 뒤져 쏟아낸다. 결국 남편이 죽일 놈이다. 말할 때는 눈치 보지 않고 하고 싶은 말 다 한다. 초등 애들 치고받고 싸우는 거랑 뭐 다를 바 없다. 마구 쏟아내는 동안 살짝 신경이 쓰인다. 이렇게 막 말하는 나를 어떻게 생각할까? 상대가 내 말을 아무 말 없이 듣는 동안 속으로 이런 생각이 든다. " 그래 그 순간 나를 상대가 잘 받아들이도록 말하는 표현이 미숙했어 " 속상하고 서운한 감정이 잦아든다. 이렇게 말할 수 있는 사람들이 있어서 얼마나 다행이고 감사한지 안도감이 생긴다. 말을 쏟아내고 나면 본래 내 마음으로 돌아온다. 남편에게 미안한 마음과 고마움이 든다. 따뜻하게 부탁하면 될 일을 짜증을 내서 남편 마음을 다치게 했구나. 매번 공감을 놓쳤다고 후회하고 자책하지만 이렇게는 할 수 있다. 상대가 힘들고 우울할 때 토 달지 않고, 근데 내 생각에는 말이야 라면서 말을 끊지 않고, 옳고 그름으로 판단하지 않고 그냥 들어준다. 다 듣고 “ 그래 너 참 힘들겠어”라고 말하면서 어깨를 토닥여 줄 수 있다. 내가 할 수 있는 공감이다. 다른 사람이 그냥 들어주기만 했는데 마음의 위로가 된 것 같다. 상대를 위로하고 싶은 마음이 공감 기술보다 더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마음을 연결하고 전하는 게 공감이다. 내가 기댈 수 있고, 나를 위험에서 보호해 주고 위로해 주고, 이해해 주고, 내 편이 되어줄 누군가 옆에 있는지, 나는 누군가에게 그런 존재가 되고 있는지, 그런 사람이 주변에 있다면 정말 다행이고, 없다면 적극적으로 찾아서 만들도록 하자. 솔직하게 털어놓을 사람, 모임이 있다는 사실 하나만으로 삶은 훨씬 편안하고 안정감 있어진다. 언제든지 도움을 요청할 누군가가 있을 때 자신감 있어진다. 힘들거나 외로울까 봐 시도하지 못했던 일을 해 볼 용기가 생긴다. 시도했다가 실패할 때 힘들어질 것에 대한 두려움 때문에 위축되지 않는다. 공감은 그런 힘이다. 공감이 전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