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나를 위해 말해야 하는 이유/ 말할 수 있게 하는 힘, 공감
벚꽃이 흐드러지게 핀 봄인데 봄을 마음대로 즐기지 못하는 요즘이다. 기온은 따뜻한데 약간 쌀쌀한 바람이 불어 벚꽃잎이 날리는 곳이 많다. 모처럼 시내에서 지인들이랑 만났다. 예전 같았으면 봄나들이 삼아 몇 번 나갔을 인사동인데 사람들 발걸음이 뜸하다. 날이 화창하면 몸 가볍게 산책을 즐길 텐데 바람 부는 날씨는 왠지 마음이 활짝 피어나지 않는다. 정독도서관 앞에서 시작해서 삼청동 길 건너 청와대 앞길을 따라 죽 걸었다. 목적지는 효자동 음식점. 밥을 먹고 서촌 골목을 돌아 통인시장을 들르기 위해 골목을 따라 걷는데 조그마한 가게들이 오 밀 조밀 붙어있다. 저마다 소박한 간판에 아기자기한 소품들을 놓고 주인이 손님을 기다리는 가게도 있었지만 문을 열지 않은 곳도 눈에 띈다. 골목을 길게 걸어 들어가다 보니 약간 비탈진 경사길 바라 옆에 들어오세요 라는 푯말 하나 달랑 붙어있는 곳이 있다. 지인이 거길 들어가 보자는데 무슨 가게일까? 궁금했다. 자세히 보면 지나치기 쉬운 곳에, 프랑스 자수라는 푯말이 무심하게 붙어있다. 문이 닫혀있어서 가게가 열려있는지 주인이 있는지 모르겠다. 문을 열고 들어가서 직접 손으로 수를 놓은 소품들이 진열되어 있고 프랑스 자수를 직접 와서 배울 수 있도록 커다란 테이블이 놓여있다. 사람들은 눈에 띄게 간판을 걸고, 무엇을 파는 집인데 한눈에 알아보도록 홍보하는 시내보다 길모퉁이를 돌아 숨은 듯 있는 이런 곳을 찾아다니는 은밀한 즐거움을 즐긴다. 문을 열고 들어가자 가게 open은 했지만 마음의 준비가 되지 않은 듯, 주인이 일어나서 손님을 맞는다. 앙증맞은 프랑스 자수가 놓인 바늘꽂이, 핸드메이드 손가방, 손으로 수놓은 꽃망울을 가진 꽃다발이 그려진 가방, 앞치마 이런 것들이 빼곡히 걸려있다 문을 열고 들어오라고 손짓을 하는 것도 아닌데 " 들어오세요" 푯말 하나 달랑 걸린 프랑스 자수 집 문을 열고 들어가게 된 이유가 뭘까 생각해 봤다. 호기심, 궁금증! 가게이지만 직접 만든 소품을 팔고 찾아오는 사람들에게 자수를 가르쳐 주는 공간이라 물건을 파는 느낌이 덜하다. 유럽의 길모퉁이 가게에 들른 것처럼 아늑하다.
지나가는 사람들의 마음을 끄는 호기심, 궁금증. 요게 사람 관계에서 중요하다고 한다. 상대를 다 안다고 생각할 때 서로 불편함이 생긴다. 사람의 말과 행동은 매 순간 동기가 다르다. 화가 날 때 그렇다. 어떨 때는 생리 증후군으로 몸이 찌뿌둥해서 짜증이 나는 건데 자녀에게 화를 낸다. 아침에 일어나서는 괜찮았는데 기온이 올라가 집 온도가 올라갔나 보다, 집이 답답한데 아이들이 뛰어다녀서 화가 난다. 앞으로 기온 변화, 바이러스 이런 변수들이 예측할 수 없을 정도로 많아진다는 뉴스를 듣고 불안하고 걱정스러워 신경이 예민해진다. 자신의 매 순간 감정과 연결하는 것도 힘든데 가족, 다른 사람을 배려하고 공감하는 일은 더 힘들다. 때로 우리는 상대를 다 안다고 생각해서 갈등이 생긴다. 형이랑 동생이 싸웠다면서 울면서 온다. 물어보기도 전에 뻔한 일이다. 늘 있는 일이고 언제나 싸우는 이유는 똑같이 되풀이된다. 물어볼 필요가 없다. 엄마의 예측이 틀린 적이 없다. 하루에도 몇 번씩 일어나는 일이다. " 왜 또 그래! 엄마가 몇 번 이야기해!" 불러서 뭐가 억울한지 무슨 일인지 물어볼 필요가 없다. 자신과 다른 사람과 관계에서 다 안다는 생각은 현재 그 사람의 상태와 연결하는데 걸림돌이 된다. 이미 다 안다는 생각은 판단일 가능성이 높다. 자녀에 대한 판단을 이미 하고 있다면 자신이 갖고 있는 틀에 걸려 넘어진다. " 우리 아이는 매사 귀찮아해요. 게을러요. 약속을 지킨 적이 없어요. 거짓말을 잘해요. " 이런 판단 때문에 매사 귀찮아하는 아이가 되어간다. 갈수록 게으른 아이가 된다. 약속을 지키지 않아야 내가 생각하는 내 아이다. 거짓말하지 않으면 이상한 아이가 된다.
매 순간 지금 내 앞에 있는 사람과 연결해서 대화를 이어가려면 중요한 전제가 있다. 내 앞에 있는 사람은 날마다 새로운 사람이다. 내가 알던 어제의 사람이 아니다. 내가 알고 있는 사람은 어제 지나간 기억 속 인물이다. 날마다 달라지는 자녀를 새롭게 만날 필요가 있다. 날마다 보아 온 가족이라 하더라도 호기심과 궁금증이 가득한 눈으로 문을 두드려야 한다. 호기심과 궁금증을 갖고 있다면 우선 아이에게, 가족에게 먼저 물어봐야 한다. " 내가 잘 몰라서 그러는데 지금 기분이 어때? 어제는 배가 고프다고 해서 간식을 줬더니 맛있게 먹었는데 오늘은 뭘 먹고 싶어? 동생이 울고 왔는데 오늘은 무슨 일이 있었니? " 아이들을 호기심과 궁금증을 가지고 쳐다보면 아이가 불만인 이유가 날마다 조금씩 다르다는 사실을 새롭게 알 수 있을 것이다. 이렇게 물어봐 줄 때 아이들이 얼마나 신나 하면서 자신의 이야기를 미주알고주알 말하기 시작하는지 새삼스럽게 느낄 수 있을 것이다. 늘 반항하는 말투로 말해서 속상했던 아이가 엄마가 이렇게 물어봐 주자 그동안 못다 했던 이야기까지 털어놓는다는 사실이 신기할 것이다. 다 안다고 생각하고 엄마 마음대로 판단했던 바로 그것 때문에 내 아이가 있는 그대로 보이지 않았던 건데, 그런 엄마 자신이 보이지 않았던 거다. 호기심과 궁금증으로 물어봐 주면 어떤 사람이든 자기편에서 이야기를 들어준다는 느낌이 든다. 공감받는다는 느낌이 든다. 아이들이 받고 싶은 사람은 바로 이것이다. 아이뿐 아니라 우리 모두가 그렇다. 어제까지 알고 있던 모든 것은 이미 지난 일이다. 오늘은 오늘 떠오른 태양이 있다. 호기심, 궁금증으로 세상을 대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