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나를 위해 말해야 하는 이유/ 말할 수 있게 하는 힘, 공감
정혜신의 '당신은 옳다'에 나온 글이다. 초등학생을 둔 엄마 이야기다. 하루는 아이 담임에게서 다른 아이를 때렸다는 전화가 왔다. 전에 없던 일이라 아이와 마주 앉아 물어봤더니 " 내가 때리긴 했다. 그렇지만 그 친구가 먼저 말로 시비를 걸었던 거라고 아이가 말했다. 엄마는 " 그래, 어찌 됐든 폭력을 쓴 건 잘못이다. 그걸 알았으면 됐고 다음부터 그러지 말자"라고 약속했다. 그랬더니 아이가 서롭게 울면서 말했다. " 엄마는 그러면 안되지, 내가 왜 그랬는지 물어봐야지. 선생님도 혼내기만 해서 얼마나 속상했는데 엄마는 나를 위로해 줘야지. 그 애가 먼저 나한테 시비를 걸어서 내가 얼마나 참다가 때렸는데, 엄마도 나보고 잘못했다고 하면 안 되지" 하면서 서럽게 엉엉 울더라는 얘기다. 그때 엄마는 느꼈다. 아이 마음이 어땠는지, 얼마나 속상했는지 왜 때릴 수밖에 없었는지, 하나도 묻지 않고 가르치려고 했다는 생각이 들어 아이에게 미안했다. 이미 한번 야단 맞고 온 아이에게 괜찮냐고 묻기도 전에 왜 그랬냐고 따져 물었다는 생각이 뒤늦게 들었다.
아이들이 학교에서 다녀오면 아이는 궁금하지 않고 무슨 일이 있었는지 먼저 묻는다." 오늘 어땠어? 선생님이 손들면 시켜줬어? 친구들이랑은? 오늘 쪽지시험 점수 어때 " 아이는 엄마가 날마다 물어보는 궁금증에 열심히 대답한다. 그러다 목소리 톤이 한풀 꺾여 나오는 대목을 귀신같이 엄마는 알아차린다. " 오늘 무슨 일 있었네. 맞지?" 그때서부터 엄마는 맹렬 호기심을 갖고 아이 안색을 살피면서 시선을 고정한다. 혹시 우리 아이가 무슨 잘못을 했는지? 엄마가 잘못 가르쳐서 생긴 일이 아닌지? 선생님한테 상담을 한번 가봐야 하는 건지 고민하면서 듣는다. 때로는 아이 소리를 듣고 불안해서 화를 내기도 하고, 답답해서 소리를 지르기도 한다. 아이에게 자기표현의 기회를 주기보다 순전히 엄마의 궁금증을 채워기 위한 질의응답에 가깝다. 가까스로 통과한 날은 다행이지만 " 네가 잘못했네, 그러니까 친구가 너한테 그렇게 행동하지. 선생님도 네 말 안 들어줄 거야. 다음부턴 그렇게 행동하지 않으려면 어떻게 말해야 할지 얘기해봐!" 학교에서 받았던 스트레스보다 엄마의 추궁이 더 힘들다. 자신이 잘못했다는 비난을 엄마한테 다시 듣고 나니 숙제는 물론 밖에 나가 놀고 싶은 마음이 싹 사라진다. 아이들이 자기표현을 잘하도록 돕기 위해서는 부모의 민감함이 필요하다.
오늘 무슨 일이 있었는지 궁금함을 채워주는 질문뿐 아니라 아이 상태를 살필 필요가 있다. " 오늘 너는 어땠는지 궁금해!" 이렇게 부모가 물어봐 주면 아이는 그제야 오늘 하루 학교 생활을 하면서 어떤 기분으로 지냈는지 돌아보게 된다. 엄마 말대로 선생님 말씀 잘 듣고 아이들과 갈등 없이 지내기 위해 신경 쓰느라 시선이 온통 바깥을 향해 있었다. " 학교에서 너는 어땠어?" 물어보는 말이 아이에게 반갑게 들린다. 학교에서 일어난 일도 궁금하지만 아이가 어땠을지 살필 때 진정한 소통이 이루어진다. 현관문을 열고 들어오는 아이 표정이 어떤지, 엄마하고 부르는 소리가 평소와 톤, 세기가 어떤지, 평소처럼 신발 벗자마자 가방 던져놓고 냉장고로 달려가서 무엇을 손에 집는지? 가장 관심을 갖는 대상이 뭔지. 이런 관찰 하나하나가 아이 상태를 말해준다. 민감함은 이렇게 관찰하면서 엄마가 자신의 느낌과 연결할 때 섬세하게 전해지는 감정이다. 갓난아이 시절 울음소리를 듣고 아이가 배가 고픈지, 탈이 나서 보채는지, 잠투정하는지 짐작할 수 있었듯이 섬세하게 집중할 때 민감성이 생긴다. 집중해서 느낀다고 할 수 있다. 아이 행동과 감정에 대한 민감함이 있으면 아이 마음을 돌봐주고 이해할 수 있다. 부모의 민감함은 아이가 힘들어할 때, 말 못 하고 숨기는 일이 있을 때 말로는 괜찮다고 하는데 뭔가 고민이 있을 때 그때 부모가 도움이 되어 줄 때 꼭 필요하다. 정작 부모의 도움이 필요할 때는 아이가 부정적인 감정과 힘든 상황에 놓일 때이다. 이럴 때 부모에게 털어놓을 수 있다면 아이는 세상에서 두려울 것이 없을 것이다. 자기표현은 행복하고 기쁠 때, 뭔가 성취하고 축하할 때 맘껏 표현할 수 있어야 한다. 또한 자기표현은 위축되고 실패했을 때, 자신이 잘못했다는 비난이 들려와 숨 쉴 수 없을 때, 숨기고 싶은 일을 가숨에 묻어 두자니 답답하고 털어놓자니 수치스러워 몸과 마음이 무겁고 무기력할 때 필요하다. 어쩌면 살아가는 매 순간 자기표현이 필요한 순간들이다. 이럴 때 누군가 " 요즘 마음이 어때?" 물어봐 준다면 어떨까? 안색을 살피면서 관심과 친밀한 눈길로 "너 요즘 괜찮아?" 감정과 정서적 안부를 물어봐 준다면 잠시 자신의 마음을 살펴볼 것이다. " 지금 편안한가? 원하는 대로 잘 살고 있니?" 그리고 기다렸다는 듯 자신의 이야기를 속시원히 쏟아낼 수 있을 것이다. 아이들이 집에 가서 유치원, 학교에서 있었던 일을 이야기하지 않게 되는 계기가 뭘까 생각해 봤다. 부모에게 혼날까 봐 걱정되고 무서워서 말하지 않는다. 그 마음속에선 부모님 걱정 끼쳐 드리고 싶지 않은 마음이 있다. 좋은 일, 잘 한일, 칭찬받은 일만 말하고 싶다. 부모님이 기뻐하니까. 하지만 정말 우리가 부모님에게 털어놓고 살아갈 힘을 회복하고 싶은 순간은 부정적인 감정이 온통 마음을 차지하고 있을 때다. 부모의 역할은 자녀의 부정적인 감정을 잘 수용하고 표현하게 하면서 스스로 감정이 회복되도록 돕는 일이다. 자녀가 잘 살 때는 꼭 부모가 아니라도 그 역할을 해 줄 수 사람이 많다. 혼자서도 긍정적인 상황은 잘 헤쳐갈 수 있다. 하지만 부모에게 지원받고 싶은 순간은 부정적인 감정을 털어놓을 때이다. " 괜찮아!" " 힘들 때는 엄마한테 하소연하고 슬퍼해도 괜찮아!" 부모가 정서적으로 자녀를 지원해 줄 수 있다면 감정이 빨리 회복될 것이며 힘든 일 앞에서 덜 두려워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