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을 잡고 놓지 말아야 하는 순간

내가 나를 위해 말해야 하는 이유/ 말할 수 있도록 하는 힘, 공감

by 남정하


친구한테 맞고 돌아온 아이에게 " 누가 널 때렸어?" 손을 잡고 때린 아이를 찾을 때까지 손을 놓지 않고 가듯 공감도 그렇다. 방향과 길을 잃은 상대의 말이 과년에 분명히 도달할 때까지 손을 꼭 잡고 절대 놓지 않아야 한다. 언제까지? 상대의 존재 자체를 만날 때까지. '당신은 옳다(저자 정혜신)'에 나오는 내용이다. 이래서 상대 입장에서 이야기를 들어주는 일이 어렵다. 공감을 놓칠 때 수치심, 죄책감이 동시에 느껴진다. 나란 사람이 다른 사람 이야기를 듣기에 턱없이 부족하다는 비난, 그때 그 말을 하지 말았어야지 후회로 한동안 괴롭다.

요즘 학교에서는 학교폭력 사건이 일어나면 아이들은 물론 학부모, 교사들이 한바탕 홍역을 앓는다. 학폭위에 접수되면 학폭위가 열린다. 사건의 유무, 피해의 크기와 상관없이 일단 학폭위에 연루되면 기록에 남는다. 연루되는 순간 가, 피해자로 구분됨은 물론, 학부모끼리 서로 가해 여부를 따지느라 처음에는 좋게 해결하고 싶은 마음에서 출발하지만 감정싸움, 맞고소로 이어져 결국 아이 싸움이 부모 싸움으로 이어진다. 시시비비를 가리는 일은 정말 아무 소득이 없다. 이 과정을 지켜보면서 시시비비란 게 얼마나 웃긴 건지 실감한다. 그래서? 옳고 그름을 가린다 한들 만신창이가 된 아이들과 부모, 그 안에 담임선생님이 있다. 학교의 수장으로 관리를 잘 못한 책임을 져야 한 교장, 교감, 생활부장 선생님까지 포함된다. 모두 죄인이다. 틱낫한 스님은 산불이 나면 시시비비를 가리기 전에 우선 산불을 꺼야 한다고 말한다. 누가 잘못했는지, 우리 아이가 더 피해를 받았음을 증명하기 위해 싸우는 동안 산에 불이 걷잡을 수없이 퍼져 결국 산 하나를 통째로 집어삼키고야 끝이 난다. 갈등이 일어날 때 산불부터 끄는 일이 바로 공감이다. 각각의 입장에서 그 일이 얼마나 당황스럽고 감당하기 힘든 일인지 있는 그대로 그 편에서 듣는 일이다.






학기말이 되면 반 분위기가 어수선해지는 경우가 많다. 학폭위 연루된 일들이 많이 일어나는 시기라 한다. 사실 아이들 학교폭력 관련된 일들을 들여다보면 사소하게 시작되는 경우가 많다. 사소한 일이 감정싸움이 되고 학폭위에 연루되기 시작하면서 법적인 싸움으로 이어진다. 6학년 졸업을 앞둔 한 학급에서 일어난 일이다. 여자 친구 하나가 수업 시간에 손목을 살짝 그은 일이 있었다. 그 사실을 아무도 모르고 있다가 학교 상담을 통해 알려졌고 어머니가 그 이야기를 전해 듣고 아연실색 하늘이 무너지는 듯한 충격을 받았다. 아이에게 그동안 괴롭힌 아이 이름을 대라고 했고 아이는 그 순간 떠오르는 남자아이들을 지목했다. 어머니는 그 아이들을 대상으로 한 명씩 학폭위에 회부했다. 학폭위가 열리기 전에 회복적 서클이라고 서로 충분히 이야기를 나누고 학생들끼리 오해를 푸는 과정이 요즘 유행 아다. 시시비비로 법적인 절차를 밟지 않고 학생들을 구하기 위한 제도이다. 말로 하면 각각의 억울한 입장을 충분히 공감으로 들어준 후 상대 입장에서 생각할 수 있도록 마음의 여백을 만들어 서로 자신이 얼마나 힘들었는지 나누고 부탁하는 자리이다. 그중 한 명과 만난 이야기다.






상처를 입었다는 친구와 상처를 줬다고 친구가 한자리에서 만나기 전에 한 명씩 사전에 자기 마음을 공감받는 자리이다. 사전 공감이라고 부르는 이 자리에서 그 친구 나름대로 억울한 마음을 충분히 표현하게 하고 들어준다. 이 일이 어떻게 마무리되길 바라는지 묻고 뭘 원하는지 생각해 보게 한다. 한 자리에 모여 서로 마음을 털어놓게 하기 위해 한 사람씩 충분히 공감하는 시간이다. 이 자리에 온 재훈이는 자기 입장에서 들어주는 자리라는 말에 마음이 놓이는 모양이다. 책상 위에 초코파이랑 초콜릿이 놓여있는 걸 보고 갈 때 가져가도 되냐고 물었다. 괜찮다고 했더니 기분이 좋아졌다고 말한다. 이야기가 격해진 지점이 있었다. 자기가 잘못했다고 사과했는데 부모님이 피해 학생 집에 가서 사과하겠다고 했고, 실제 집에 갔는데 만나지 못하고 돌아왔다는 거다. 왜 자기만 사과해야 하냐? 한 번 했으면 됐지 왜 자꾸 사과하라고 하냐? 억울하다 하나. 학폭위 사건이 일어났을 때 엄마가 자기편이 되어주지 않았다는 깊은 억울함이 있었다. 걱정하고 있던 일이 드디어 터졌다는 듯 화들짝 놀라면서 무조건 사과하라고 했다. 재훈이 입장은 물어보지 않았다는 거다. " 나도 내 입장이 있는 거잖아요. 제 입장은 물어보지도 않았어요. 전 이제 제 일을 제가 알아서 할 거예요. 저 혼자밖에 없어요" 재훈이 말을 들으니 마음이 아팠다. 그 친구 입장이 마음이 와 닿고 공감되었다. 여기까지 잘 들어주었다. 시간이 지나고 마무리할 시점이란 생각이 들어 피해받았다고 주장하는 그 친구와 어떻게 하고 싶은지 물었다. 재훈이는 망설임 없이 " 저도 사과받아야죠. 왜 저만 사과해요 “ 진행자 입장에서 턴테이블이 튀는 느낌을 받았다. 아차! 충분한 공감이 안 됐구나. 시간은 다 되어가는데 이 친구 입에서 화해하고 싶어 하는 마음이 생기지 않아서 조급했다. 그 눈치를 챘나 보다. " 초콜릿이랑 초코파이 안 가져갈래요. 맛있어 보였는데 이제 맛이 없어졌어요." 사실 전 학폭위 연루된 기록 남아도 괜찮아요. 그대로 살죠 뭐. 제가 할 일은 다 했어요. 뭘 원하냐면 빨리 중학교로 가서 안 만났으면 좋겠어요. 저도 왜 그렇게 싫은지 모르겠어요. 그냥 싫어요. 안 보는 게 해결책이에요. 하고는 일어났다. 순간 씁쓸했다. 공감을 하면 원하는 답을 얻을 수 있을 거라는 기대가 있었다. 그 기대가 오히려 재훈이와 공감에 방해가 되었다고 생각하니 정신이 번쩍 차려졌다. 그 친구의 당당함이 맹랑하게 느껴짐과 동시에 당차게 느껴졌다. 아! 공감이 이런 거구나. 끝까지 손을 잡고 때린 아이를 찾아갈 동안 손을 놓지 않아야 하는 게 이런 것이구나. 언제까지? 그 아이의 억울함이 사라질 때까지. 존재가 회복될 때까지. 공감 초보자는 시간이 오래 필요하다고 생각할지 모르지만 공감은 한순간에 존재에 이를 수 있다고 한다. 한 마디 따뜻한 말이 그 존재에 가서 닿을 수 있다고 한다. 아직 멀었다고 자신을 자책하고 마무리했지만 공감에 대해 배울 수 있었던 시간이었다. 공감하면서 어떤 답에 얻으려는 의도가 있을 때 공감이 깨진다. 공감은 오직 그 사람 마음을 함께 느끼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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