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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남정하 Oct 12. 2020

며느리에게 거절하는 법부터
가르쳤다

내가 나를 위해 말해야 하는 이유/ 시어머니 사표는 없나요?



'나는 죽을 때까지 재미있게 살고 싶다'의 저자 이근후 박사는 정신과의 사이다. 지금은 은퇴한 후 책 쓰고 공부하면서 살고 있다. 이 책은  처음엔 가볍게 읽었는데 읽을수록 깊은 감동이 있다. 연세 드셨지만 생각과 생활방식이 젊으시다. 특히 인상적이었던 내용이다. 3대가 한 집에 살고 있는데 각각 자신의 집으로 들어가는 현관이 독립적으로 분리되어 있다. 같은 집에 살고 있지만 서로의 생활을 독립적으로 존중한다.  자녀 집에 음식을 갖다 줄 게 있을 때  메일이나 메시지로 먼저 물어본다.  잠깐 방문할 때 또한 방문해도 괜찮을지 묻는다. 며칠 전 텔레비전 프로그램 '미운 오리 새끼'에 아들이 결혼한 집 비밀번호를 시어머니에게 알려줄 것인가? 란 주제로 이야기를 나누는 걸 봤다. 시어머니들은 오라 해도 안 갈 텐데 비번을 공유하지 않겠다는 아들들의 대답을  듣고 서운해한다. 아들들은 집 비번을 알려달라는 어머니 말이 부담스럽다. 음식 두고 가려고 알려달라는 말에 아내와 의논해 봐야 한다고 대답하자 시어머니들이 무척 서운해한다. 문화의 차이일까? 아님 자녀를 독립적인 인격체로 존중하는 가치으 차이일까? 잠시 여러 생각이 들었다. 저자 가족은 한 달에 한번 가족 모임을 돌아가면서 한다. 순서를 정해 자녀들이 돌아가면서 모임을 주선한다.  그날 뭘 먹을지, 어떤 음식점으로 갈지, 뭐하고 놀지를 그날 모임 진행을 맡은 자녀가 정한다. 더 근사한 일은 시아버지가 며느리 시집왔을 때 거절하는 법부터 가르쳤다는 대목이다. 이근후 박사 친구가 집을 방문했는데 며느리가 “ 그건 언제까지 하면 되나요? 어머니 그건 안 되겠어요” 하고 시어머니에게 대답했더니 친구가 말했다고 한다. “ 자네 며느리 버르장머리가 없는 것 같아”





어떻게 시댁 시부모 앞에서 거절을 말로 해? 글을 읽는 분들을 어떤 생각인지 궁금하다. 아이들이 3, 4학년이 되면 힘이 생긴다. 부모 말을 더 이상 고분고분 따르지 않는다. 엄마들은 이런 아이들 때문에 화가 난다. " 예, 알았어요" 하면 될 일을 하기 싫다고 NO 하기 시작하는 순간부터 마음의 전쟁이 시작된다. NO라고 말하거나, 거절할 때 거절을 들을 때  모두 힘들다. 거절이 힘든 이유는 사람마다 다르다. 관계가 끊어지거나 멀어질까 봐. 상대가 나를 어떻게 생각할지 두려워서. 이기적이라고 생각할까 봐. 소외되거나 외로워질까 봐. 거절하고 나서 더 괴로워서 등등. 거절을 듣거나 말하는 순간 상대와 자신에 대한 비난, 판단, 자책들이 올라와 괴롭다. 차라리 상대가 원하는 대로 해주는 게 더 편할 때가 많다.  누구나 돈 내고 듣는 강의인데 신청했더니 이미 마감됐다고 할 때  순간 거절당한 느낌이 든다. 예전에 1년 과정 자격을 주는 워크숍에 응시한 적이 있다. 왜 이 과정을 들으려 하는지 A4 한 장 써서 내야 했고 그 과정에 맞는 자격을 갖추었는지 이력을 제출해야 했다. 한두 주 후 결과 발표가 났는데 메일로 자격은 갖추었지만 이번에는 초대하지 못하겠다는 답을 들을 때 순간 비참했다.  위축되고 내 존재가 부끄러웠다. 못나고 부족하다는 생각이 들어 자신감이 뚝 떨어졌다. 여파가 며칠간 것 같다. 





아이를 키울 때 도움을 요청했는데 거절당할 까 봐 열심히 다른 사람 부탁을 들어준 기억이 난다. 왜 그럴 때 있지 않은가? 어쩔 수 없이 남의 집에 아이들을 맡기고 일을 봐야 하는데 어디 맡길 데가 없어 쩔쩔매게 되는 상황 말이다. 거절에 대한 두려움이 컸다. 내가 거절당하지 않기 위해 다른 사람의 부탁을 무조건 들어주려 애썼다. 내가 다른 사람 부탁을 들어줄 여력이 없을 때도 들어주려 노력한다. 난 그렇게 애썼는데  막상 부탁을 했는데 상대가 내 부탁을 들어주지 않으면 화가 머리끝까지  났다. 요즘도 거절이 익숙하지는 않다.  강의 기획서, PPT 같이 내 삶에 중요한 노력의 결과를 공유해 달라고 할 때 난처하다. 거절의 뜻을 비출 때 괴롭다. " 그냥 쿨하게 줘. 대단한 작품도 아닌데 뭘 그렇게 아까워해? 너도 다른 사람 선뜻 호의를 베풀면 고맙잖아 " 그나마 거절에서 자유로와질 수 있었던 건 이 말 때문이다. 비폭력대화를 공부할 때 선물같이 감사했던 배움이다. "거절은 내가 바라는 것에 대한 거절이지,  나에 대한 거절이 아니다"란 말이다. 우리는 자주 거절을 나에 대한 거절, 존재에 대한 것으로 받아들인다. " 저 사람은 나를 싫어해, 우리 엄마는 나를 미워해 " 거절은  나란 사람에 대한 거절이 아니라  그 행동에 대한 거절이란 얘기다. 자주 우리는 거절을 나에 대한 거절로 받아들인다. " 나를 싫어하는구나, 나를 사랑하지 않는구나, 나를 소중하게 생각하지 않는구나."  이렇게 생각하면 화가 난다. 거절이 단순한 거절이 아닌 게 된다. 그래서 상대 눈치를 보게 된다. 혹시 오해할까 봐 신경이 쓰인다. 때로 하기 싫어도 상대 기대에 맞추며 산다.  존재와 행동을 구별하는 것이 필요하다." 내가 지금 거절하는 건 당신을 좋아하지 않아서가 아니라 지금 내가 할 마음의 여유가 없어서 그래. 엄마, 하기 싫다는 게 아니라 지금은 책 읽고 있어서 조금 있다가 하겠다는 말이에요." 거절을 표현할 때 상대에게 존재에 대한 거절로 들리지 않도록 조심한다. 친구한테 전화가 온다. 평소 자주 통화하던 친구다. 볼일이 있어 막 나가려던 순간 바쁘게 벨이 울린다. " 오늘 좀 울적하고 외로운데 저녁에 시간 좀 내줄 수 있어? 어쩌지? 나 오늘 좀 피곤해서 나가기 힘들어. 다른 사람 찾아보면 어때? ( 아무 말 없다.) 왜 그래? 뭐 잘못됐어? 아니야, 뭐가 아니야. 기분 나쁜 것 같은데 말해봐. 넌 항상 내가 필요하다고 하면 바쁘다고 하더라. 나만 너 생각하는 것 같아." 거절로 들리지 않게 말하려면 다급해서 전화한 친구 마음을 먼저 공감해준다. " 많이 힘들어? 저런. 울적하고 외로워서 위로가 필요해서 전화했구나. 목소리 들으니 힘이 하나도 없네. 전화로 잠깐 이야기할 수 있으면 해도 되는데. 근데 내가 지금 나가려던 참이야. 어쩌니? 치맥 하면서 네 얘기 들어주고 싶은데 일이 있어서" 상대가 도움을 요청하기 위해 전화한 그 마음을 들어주고 공감해 준다. 좀 풀린 다음 일이 있어서 어렵다는 말을 하고 아쉬운 마음을 전한다.  거절은 편안한 사이에 훨씬 안전하게 할 수 있다. 거절해도 상대를 거절하는 게 아니란 걸 아니까 맘 편하게 거절할 수 있다. 그리고 신뢰가 쌓인 사이라면 거절하지만 도움을 주고 싶어 하는 마음을 이해한다.  거절은 상대의 욕구도 중요하지만 나의 욕구도 중요하다는 표현이다. 거절할 수 없는 사이라면 서로 상호적인 관계가 아닐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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