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나를 위해 말해야 하는 이유/ 시어머니 사표는 없나요?
' 밥 세 끼를 해야만 한다'라는 책임과 부담으로 꽁꽁 묶여 살았다. 남편이랑 아이들이 밥 달라고 요구하거나 강요한 게 아닌데 그래야 한다고 생각하며 살았다. 강의가 있는 날이면 전날부터 긴장된다. 아침 준비랑 돌아와 먹을 저녁거리까지 챙기느라 분주하다. 왕복 3시간, 혹은 멀리 가면 4시간 운전해서 강의를 하고 돌아오는 날은 몸이 힘들다. 오늘은 피곤해서 나가서 먹으면 좋겠다고 말하면 될 텐데 말을 꿀꺽 삼킨다. 남편에게 전화해서 오늘 일찍 오는지 확인할 때 왜 전화해서 묻는지 알아주길 바란다. 그냥 약속 있는지 확인하는 줄 아는 답을 들으면 화가 난다. 운전하고 들어가는 중인데 저녁 차리기 힘들어서 그러는데 나가서 먹자고 말하면 될 일을 말 못 하는 나에게 화가 난다. 눈치 없이 일찍 들어온다면서 피곤해하는 아내 마음을 살피지 못한 남편이 밉다. 집에 돌아오자마자 남편이 일찍 온다 하니까 옷도 갈아입지 못하고 밥을 하면서 다시 화가 난다.
비폭력대화를 만든 마셜이 나눈 대화이다. “ 당신이 원하고 있는데 얻지 못하고 있는 것이 뭔가요? 제가 뭘 원하는지 잘 모르겠어요. 그럴 줄 알았어요. 왜요? 우리가 우울을 느끼는 것은 자신이 원하는 것을 얻지 못해서이고, 우리가 원하는 것을 얻을 수 있는 방법을 배워본 적이 없기 때문이에요. 대신 우리는 착한 아이, 좋은 부모, 좋은 아내가 되는 것만 배웠어요.” 그러면서 좀 더 즐겁게 행복하게 살기 위해서는 다른 사람들이 무엇을 해주기 원하는지 분명하게 표현할 수 있어야 한다고 말한다. 마셜의 말을 빌리면 일상의 화는 남편에게 뭘 해주길 바라는지 분명하게 표현하지 못해 생긴 억울함 때문이다.
아이들이 다 커서 대학생이 되었는데 여전히 밥 세끼 챙기는 일에 매어 있는 내가 답답했다. 신경 쓰지 말고 두면 알아서 먹겠다고 해도 늘 마음이 놓이지 않았다. 결국 ‘밥 세끼를 차려야만 해’는 내 문제였다. 내가 나에게 강요하고 있었다. 밥 몇 끼 챙기지 않는다고 누가 뭐라는 사람 하나 없는데 계속 손을 놓지 못했다. 오히려 계속 밥을 챙겨야만 한다는 생각으로 밥을 챙겨서 가족들이 엄청 스트레스를 받았다. 가족들이 스트레스받으리라고는 생각해 보지 않았다. 한 워크숍에서 나와 똑같은 고민을 하는 여자가 집에 가서 오늘부터 밥 차리는 일 하지 않기로 했다고 선언했더니 아들이 이렇게 말했다 한다. “ 괜찮아요, 이제부턴 밥 먹으면서 엄마 짜증 내는 소리를 더 이상 듣지 않아도 돼서 다행이에요” 즐거운 마음으로 하지 않으면 상대도 즐겁지 않다. 차라리 하지 않는 게 나을 수 있다. 한 번을 하더라도 정말 기쁘게 하고 싶어서 할 때 마음이 전해진다는 걸 알고 나서야 하고 싶지 않을 때 하지 않는 선택이 나뿐 아니라 가족을 위해서 좋다는 걸 이해하게 됐다.
어릴 때 친정엄마가 워낙 약한 체질인데 장사를 크게 했던 우리 집엔 장정 일꾼이 3-4명 있었다. 엄마는 어린 자녀들을 포함 우리 식구 6명에 10인 이상 밥을 매 끼니 해야 했다. 아버지를 포함해 장정 4명이 먹을 음식을 해야 했을뿐더러 주말이면 시골에서 올라오신 친척분들 뒷수발까지 들어야 했다. 2남 2녀 중 장녀였던 나는 잔병치레가 많았던 엄마를 도와 아침 준비며 시장 심부름, 야채 다듬기 같은 일들을 도왔다. 엄마가 몸이 안 좋아 안색이 좋지 않은 날 아침에 아버지는 나를 일찍 깨우셨다. " 일어나서 엄마 좀 도와드려라. 엄마 아프단다 얼른 " 아침잠이 많아 자는데 깨웠다간 신경질을 있는 대로 부리는 딸을 아버지는 이렇게 흔들어 깨웠다. 골이 잔뜩 나서 하기 싫다는 표현을 온몸으로 하고 있으면 엄마는 나한테 화를 내셨다. " 하기 싫으면 들어가서 자, 자라고. 몸이 아파도 내가 혼자 할 테니 누구 도움을 받겠니? 얼른 들어가! " 어린 나이에 하기 싫다는 말을 하지 못했던 것 같다. 하지만 온몸으로 하기 싫다는 말을 표현했다. 그때 마음은 하기 싫다기보다 아침에 푹 자지 못하고 일어나야 했던 마음을 엄마가 달래주길 바랬던 것 같다. 엄마가 내 마음을 알아주고 다독거려 주길 원했다. 마찬가지로 엄마 또한 몸이 아파도 장정 포함 10명 식구들을 위해 밥을 해야 하는 삶의 고단함을 표현했던 말이었다. 어린 내가 엄마 마음을 돌보아야 했을까? 엄마는 남편 혹은 다른 사람의 도움이 필요했는지 모른다. 그 경험은 나에게 ' 자기표현을 해봤자 소용없다'라는 좌절을 불러왔다.
‘밥 세끼 차리기’에 얽힌 책임감, 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부담은 여기서부터 비롯된다. 말 해도 소용없다는 생각을 하기 시작하면서 사춘기를 맞았다. 혼자 감당하는 일이 늘었다. 하기 싫은 일이 있어도 말하지 않고 해치우는 일이 잦아졌다. 특히 부모나 회사 상사, 학교 선생님처럼 힘이 있는 사람들이 뭘 시킬 때는 그냥 했다. 하기 싫으니까 후딱 해버리는 일이 늘었다. 책임을 다하기 위해 하는 일은 즐겁지 않다. 일이 즐겁지 않았던 이유를 이제 알 것 같다. 책임과 의무, 부담에서 벗어나기 위해 일을 한 탓이다. 하기 싫어도 해야 할 일은 직장을 다니면서 더 많아졌다. 아이를 낳고 나서 엄마가 된 후로는 거의 대부분 일이 하기 싫어도 해야 할 일로 하루가 채워졌다.
” 해야만 한다"라는 책임과 의무에서 생긴 에너지로 아이를 키웠다고 생각하니 가족들에게 미안하다. 기쁘게 한 날도 있었겠지만 하기 싫을 때, 몸이 힘들 때 몸과 마음의 욕구를 살피고 그때그때 잘 표현할 수 있었다면 가족들의 도움을 받을 수 있었을 텐데 아쉽다. 가족이 서로 돕고 지원하는 관계라는 걸 어릴 때부터 충분히 경험하고 느낄 수 있다면 힘들고 고통스러운 일을 피하지 않고 시도하고 도전할 수 있을 것이다. 밥 세끼 문제뿐 아니라 청소, 약속, 일찍 일어나는 일, 미리미리 숙제하는 일 등 모두 해야만 하는 책임감으로 하지 않길 바란다. 자녀에게 표현할 기회를 주라는 건, 자신의 감정에 대해 말할 기회를 주는 일이다.
숙제를 해야 하는 걸 알지만 게임을 더 하고 싶고, 저녁 먹고 하고 싶은 마음, 귀찮은 감정을 말할 기회를 주고 충분히 들어주란 말이다. 감정은 충분히 표현하게 하고 이해받으면 어느 정도 사라진다. 책임과 의무로 하는 일은 즐겁고 행복하지 않다. 해야만 한다는 당위와 책임이 많은 부모는 자녀에게 똑같이 말하고 행동할 가능성이 높다. 해야만 한다는 당위와 책임은 ‘지금 뭘 하고 싶은지’ 묻지 않는다. 지금 내가 어떤지, 가족이 어떤지 뭘 원하는지 중요하지 않다. 물어볼 필요도 알 필요가 없다. 습관적으로 당연하게 하는 일 안에 나는 없다. 그러니까 아이들이 뭐라고 얘기하는 게 모두 하기 싫어서 하는 투정으로밖에 들리지 않는다. 자기표현은 지금 어떤지 말하고 알아달라는 말이다. 하기 싫다는 게 아니라, 지금 자신이 편안한지, 할 마음이 있는지 알아달라는 표현이다. 하기 싫을 때 왜 하기 싫은지 물어보고 언제 하고 싶은지 물어보는 과정에서 하고 싶은 마음이 생긴다. 당연히 해야 한다. 하지 않으면 안 된다. 이렇게 당연히 해야 할 일들이 많으면 어쩔 수 없이 살게 되면 살아야 하니까 산다. 즐거움이 사라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