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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남정하 Oct 05. 2020

못해신앙VS 모태신앙

내가 나를 위해 말해야 하는 이유/ 시어머니 사표는 없나요?


뭐든 태어날 때부터 했던 모든 행동은 쉽게 바꾸기 어렵다. 거의 무의식적으로 습득된 학습이라고 볼 수 있다. 그만큼 자연스럽다. 종교인은 아니지만 모태신앙을 가진 사람은 신앙생활이 몸에 배어있다.  몸에 밴 신앙생활은 해라 말아라 참견할 필요가 없다. 거의 일상이다. 몸에 밴 그대로 행하는 것이 자연스럽고 하지 않을 때 오히려 저항감이 크다. 뭐든 그래서 유대인들은 어린 시절 몸에 배도록 습관 들이는 교육을 굉장히 중요하게 여긴다. 아이와 밖에 나갔다 들어오면 신발 벗고 동전을 저금통에 넣는 모습을 부모가 보여준다. 아이도 자연스럽게 따라 한다. 통에 항상 동전을 준비해 놓고 집에 들어올 때마다  저금통에 넣는다. 저금통이 꽉 차면 아이와 함께 이웃을 위해 기부한다. 말로 가르치지 않고 행동으로 보여주고 저금을 일상에서 실천하도록 가르친다. 유대인들의 모태 교육의 효과는 아이 일생에 영향을 미친다. 




 

책 모임에서 나온 이야기다. 살면서 괜찮지 않은데 괜찮다고 말하는 일이 얼마나 많은지  표현 문화에 대해 이야기는 나누는 중이었다. 한 분이 말한다. 꽤 오랫동안 친분을 쌓으며 만나고 있는 분과 점심 모임을 하는데 이 분은 모든 걸 갖춘 분이어서  안 가진 게 뭔지 찾아야 겨우 찾을 것 같은데 게다가 '못해 신앙'까지 갖추었더라는 거다. 자식 남부럽지 않게 번듯하게 키우고, 남편 잘 나가는 데다  여성으로, 엄마로, 아내로 역할 이외에 다양하게 사회생활을 성공적으로 하고 있는 데다 미모에 날씬하기까지. 가장 부러운 건 그분의 '못해 신앙'인데 다른 사람 다 메뉴를 통일해서 시키는데 자기 혼자 먹고 싶은 음식 시켜 먹고, 적당히 웬만하면 괜찮아. 그게 좋다 맞장구치고 넘어가는 일에 힘들 것 같아. 난 이게 더 좋아, 난 못해 다른 사람이 도와줘, 하고는 싶은데 할 수 없어 미안해. 확실하게 '못하겠다'라는 표현을 정말 잘 하더란 거다. 아이 키우고 살림 살다 보면 평화를 위해 참고, 하기 싫어도 하고, 먹기 싫어도 뒷설거지 귀찮아 싹 다 비우는 주부 입장에서 '못해 신앙'을 가진 지인이 부럽고 살짝 불편했다는 얘기다. 결혼 전에는 딸 넷에 막내여서 정말 공주처럼 예쁨 받고 자랐다고 자부하지만 결혼 생활하면서 언제 어느 상황에서나  씩씩한 무수리로 신분 하강했다. 가정의 평화와 평안이 우선시되다 보니 어느새 괜찮아, 알았어, 좋은 게 좋지 뭐. 상관없어. 나보다 상대가 괜찮으면 만사 괜찮은 사람이 되어 버렸다. 괜찮다고 말하고 돌아서지만 돌아오는 내내 " 나 안 괜찮은데. 안 괜찮을 때는 누가한테 안 괜찮다고 얘기하지?" 

워낙 사람 불러서 푸짐하게 차려놓고 놀기 좋아하는 성향이다 보니 잠시 편하게 있을 틈이 없다. 결혼해서 음식 장만하고 사람 부르는 걸 좋아하는 줄 알고 시어머님이 집으로 친구 분들을 부르셨다. 남편은 며느리 자랑하고 싶어서 그러시는 거라며 기분 좋아하는 눈치였다. 시어머님은 며느리를 불러 "얘가 우리 집 며늘아기인데 음식 솜씨가 너무 좋아. 예쁘지?" 신혼 때 한마디 못하고 어머님 친구 분들 대접을 도맡아 했다. '못해 신앙' 가진 사람들 보면 정말 부러워요. 힘들어요, 못 하겠어요, 오늘은 할 일이 있어서 안 되겠어요. 이 말을 입 밖으로 하기가 정말 어려워요. 애들은 엄마한테 날마다 싫어요. 공부를 왜 해야 해요. 엄마 마음만 마음이에요? 날마다 반항하는데 말이에요 한다. 





'못해 신앙' 얘기를 나누면서 모두 공감했다. 우리는 언제부터 못하겠다는 말을 마음 편하게 하지 못하게 됐을까?  비폭력대화에서는 우리가 선택해서 하는 모든 행동 뒤에는 얻고자 하는 욕구가 있다고 한다. 이 행동으로 충족하고자 하는 욕구가 무엇인지 이해하면, 그 일을 하든, 하지 않든 즐겁게 할 수 있다. 못하겠다고 할 때도 그 일을 하지 않는 선택을 통해 충족하고자 하는 욕구가 있다는 걸 알면 당당할 수 있다. 때로 우리가 하는 일이 즐겁지 않은 경우가 몇 가지를 살펴보겠다. 돈을 위해서 뭘 할 때다. 돈은 밖에서 오는 중요한 보상 방식이다. 돈으로 보상받기 위해 동기에서 선택을 할 때 일이 주는 순수한 기쁨을 빼앗길 염려가 있다. 직장생활을 통해 삶의 기쁨을 경험하기 힘든 이유가 여기에 있다. 다음은 인정이다. 다른 사람들로부터 인정, 칭찬받기 위해 공부하고, 착한 아이가 된다, 직장에서는 상사의 인정과 회사의 실적을 올려 능력 있는 직원이 되려고 애쓴다. 우리가 원하는 사랑과 인정을 얻기 위해, 힘을 들여 애쓰고 다른 사람의 호감을 얻으려고 자신을 부인하고 상대를 위해 행동해야 한다고 믿으면서 사는 것은 슬프고 고단한 일이다. 그 일을 하지 않을 때 스스로 비난하고 잘못했다고 질책하는 마음의 소리를 듣지 않기 위해 뭔가를 할 때가 있다. 자신에 대한 수치심을 피하기 위해 어떤 일을 한다면 결국에는 그 일이 하기 싫어지고 지긋지긋해질 것이다. 다른 사람의 기대에 미치지 못하면 죄책감을 갖게 될까 봐 이를 피하기 위해 행동할 때가 많다. ‘ 내가 이 일을 하지 않으면 사람들이 나한테 실망할 거야 ’ 이 또한 

일에 대한 동기가 자신의 내면에서 나온 게 아니라 잘못했다는 죄책감을 느끼기 싫어서 하는 행동이다. 이렇게 살면 진심으로 다른 사람의 행복에 기여하고 싶은 마음에서 하는 일과 완전히 다르다. 어쩔 수 없이 하는 일과 즐거운 놀이로 하는 일, 어떤 삶을 살고 싶은가?

의무감에서 하는 행동도 마찬가지이다. ‘해야만 한다’ ‘하지 않으면 안 된다’ ‘어쩔 수 없이 했다’ ‘ 하기로 되어 있다’ 같은 말은 우리 마음의 욕구와 단절되어 행동하게 된다. 일이 기쁘지 않다. 책임감, 의무감에서 하는 일은 나도 기쁘지 않고 상대도 기쁘지 않다. 우리의 내면의 생동감을 상실하고, 자신의 마음의 동기에서 멀어진 채 살아간다. 자동적으로 일을 하게 된다. 자신의 감정과는 상관없이 살면서 삶을 점점 책임과 의무로 살게 된다. 내가 이 일을 마음으로 하고 싶은지, 하고 싶지 않은지 살피는 일은 삶의 생동감, 놀이처럼 즐거운 일과 관련이 깊다. 순간순간의 선택이 나를 살리기도 하고 죽이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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