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나를 위해 말해야 하는 이유/ 시어머니 사표는 없나요?
‘지지 않는다는 말(김연수)’에 나오는 문장이다. 나를 지키고 인생에서 소중한 것들을 지키기 위해서 용기가 필요하다. 거리를 두자 했다가 서로 서먹해지기만 한다면, 오히려 관계가 더 어긋난다면 얼마나 괴롭겠는가. 그러나 한번 용기를 내 보라, 거리를 둔다는 것은 존중이 살아 숨 쉬는 한 관계가 더 좋아지는 걸 경험하게 될 것이다. 남편이 막내아들이라 시어머님은 주말이면 호출이 잦다. 남편 직업이 군인이라 주말부부를 하고 있다. 주 중에 남편 전화가 온다. " 어머님이 장 보러 가야 한다고 하니까 시간 내서 어머니 집에 들러야겠어" 직장 생활을 하고 있는 L 씨는 큰 아이가 고등학교 올라가면서 신경이 예민해졌다. 아이 학원 보내는 일이 만만치 않다. 학원 선생님은 전화를 해서 이렇게 공부해서는 원하는 대학 못 가요. 어머니. 제가 아이를 맡은 이상 좋은 성적을 올리게 하고 싶은데 아이가 따라오지 않으면 소용없는 거 아시죠? 어머님이 관리 좀 해 주셔야겠어요. 학원 선생님 전화를 받고 나면 온 신경이 아이에게 쏠린다. 예전 같으면 시어머님 호출이라면 다른 일 젖히고 달려갔다. 그래야 하는 줄 알았다. 아이 대학 문제를 앞두고 있으니 남편 어머니 챙기기보다 내 자식 앞 일이 급하다. 조금씩 미루고 아프다고 둘러대고 직장 일 바쁘다고 핑계대기 시작했다. 속으로 조마조마하다. 언제 전화 와서 큰 소리 날지 몰라 벨 소리 울리면 긴장된다. 어머님 집 방문이 한주 한두 번에서 한 번으로 줄어들고, 점점 그것도 미루었다. 전화벨이 울리면 바빠서 못 받은 것처럼 받지 않았다. 그러다 명절 전 마침내 전화가 걸려왔다. 안 그래도 이번 명절 안 가고 쉬었으면 좋겠다 생각하고 있던 차에 였다, 명절 앞두고 한 주 전에 꼭 전화해서 준비해 갈 것 의논하고 함께 장을 볼 약속을 했는데 시기를 놓치고 말았다. 명절이라 어쩔 수 없이 전화를 받았다. 여보세요! 하는 순간 시어머님 목소리가 밀고 들어온다. " 아프다 바쁘다 해서 연락 안 하고 있었더니 넌 손가락이 부러졌니? 어쩌면 전화 한 통화 없니? 각오하고 전화를 받았는데도 어머님이 말할 틈도 없이 퍼부으니까 참기 힘들었다. 시어머님으로선 정말 오래 참았다는 걸 알면서도 듣고 있기 힘들다. 몇 마디 대답을 하고 조용히 핸드폰을 끊었다. 그리곤 불같은 생각이 올라온다. 이번 명절부터는 시댁 안 가고 싶다. 안 부딪치고 안 만나고 살기 위해서는 관계를 끊는 방법밖에 없다. 명절을 앞두고 시댁 갈 일이 끔찍하게 생각된다.
‘당신과 나 사이(김혜남)에 나오는 구절이다. 한계를 설정하는 것은 내 처지와 능력이 여기까지 밖에 안된다고 상대방에게 명확하게 밝히는 것이다. 그것은 곧 상대방이 바라는 것과 내가 원하는 것이 다를 때, 웬만하면 당신의 요구를 들어주고 싶지만 나를 희생하면서까지 들어줄 수 없다고 밝히는 것이나 다름없다. 대개 자신을 희생하면서 상대가 원하는 걸 들어줄 때 오해하기 쉽다. 상대가 기분 나쁠까 봐, 사이가 멀어질까 봐 우리는 솔직하게 말하지 않고 좋게 좋게 맞추면서 산다. 자신을 희생하면서 상대가 원하는 걸 들어주느라 얼마나 애쓰고 힘들었는지 잘 모른다. 혼자 고통을 쌓았다가 혼자 실망하고 좌절한다. 조용히 마음속으로 관계를 끊고 멀어진다. 한계를 설정한다는 건 관계에서 상대의 요구를 어느 정도 들어줄 수 있는지 내가 할 수 있는 정도를 표현하는 것이다. 선을 그을 때는 절대 흥분하지 말고 부드러우면서도 단호해야 한다. 선을 긋는 것은 나를 지키기 위한 것이지 관계를 어긋나게 만들겠다는 것이 아니다. 화가 났을 때는 잠시 모든 것을 멈추고 흥분을 가라앉힌다. 그런 다음 상대에게 의견을 제대로 전달한다. 두루뭉술하게 표현하면 상대방이 못 알아들을 수 있다. 상대를 비난하거나 탓해서는 안된다. 화를 내면서 말하면 불길에 기름을 붓는 격이다. 거리를 둔다는 말은 관계를 끊는다는 의미가 아니다. 나와 상대를 존중하기 위해 한계를 정하는 것을 의미한다. 상대가 원하는 것을 들어주기 위해 무조건 맞추거나 희생하지 않는다.
나를 보호하고 관계가 어긋나지 않도록 부드럽고 단호하게 말하려면 어떻게 말해야 할까? 일단 멈춘다. 먼저 상대와 잘 연결하고 싶은 마음이 있는지 자신에게 물어본다. 정말 관계를 끊고 싶은 마음이 있는지 생각한다. 상대에 대해 화가 올라올 때 상대와 상관없이 자신에게 어떤 삶을 살고 싶은지 자신이 원하는 삶에 집중한다. 천천히 호흡을 하면서 듣는다. 상대가 화가 나서 듣기 억울한 말을 해도 끝까지 들어준다. 상대가 쏟아낼 만큼 쏟아냈다 싶을 때까지 기다린다. 듣고 있기 힘들 때는 수화기를 귀에서 떨어뜨리고 들어도 괜찮다. 상대가 할 말을 다 쏟아낼 때까지 듣는다. 잠시 잠잠해지는 순간이 온다. 이제 말할 차례다. " 명절이라 장 봐야 하는데 연락 없어서 화 많이 나셨죠? " 상대에 대한 공감이 필요하다. 그런 다음 내 말을 한다. 부드럽고 당당하게 말한다. 상대에게 위축되지 않고 솔직하게 말하려면 용기가 필요하다. " 전화드려야지 하다가 차일피일 미루게 됐어요. 직장 일에 아이들 밥 챙기고 학원 태워 왔다 갔다 하느라 명절 오는 것도 몰랐어요. 어머님 기다리셨을 텐데 몸이 힘드니까 챙기기 어려웠어요 " 이렇게 말하자 시어머니가 “ 그러니까 자주 전화하라고 했니? 가끔 안부전화해 달라고 한 건데. 몸은 좀 어떠냐?” 물어보더라고 한다.
그동안 시어머님이라 해서 무조건 맞춰야 한다고 생각했던 게 잘못이었다. 힘들어도 어머님이 부르면 달려갔고 싫은 소리 듣기 싫어 미리미리 챙겼다. 그러다 보니 의무와 책임, 당위만 남았다. 하기 싫어도 어쩔 수 없다는 마음으로 살다 보니 이제 편하게 살고 싶다는 생각이 자주 든다. " 어머님 힘드시겠지만 아범이랑 장 보러 다녀오시면 안 될까요? 제가 집에서 전이랑 떡 맞춰서 가져갈게요. 집에 제가 없으면 애들이 자기들 세상이에요 " 명절 준비와 관련해 자신이 할 수 있는 일과 할 수 있는 만큼이 얼마만큼인지 제대로 표현한다. 시어머님에게 자신의 상태를 전하고 의논하는 마음으로 표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