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 C.S.Lewis -

by 남정하 Oct 12. 2020

시어머니, 며느리 연대할 수 있을까?

내가 나를 위해 말해야 하는 이유/ 시어머니 사표는 없나요?


아들 둘이 군대 갔다 오더니 아재로 변했다. 남편이나 뭐 아들이나 남자 냄새나는 게 뭐 비슷하다. 며칠 전 공감 모임에 딸이랑 스페인, 프랑스, 네덜란드 유럽 여행을 다녀온 지인이랑 이야기를 나눴다. 코르나 정국을 뚫고 겨우 여행을 마치고 왔다. 프랑스에서 루브르 박물관을 관람한 다음 날 미술관 문을 닫았다 아슬아슬하게 비켜 다녀왔다고 축하를 나누었다. 여행 시작하고 사흘째 날 딸이랑 대판 싸워서 딸 캐리어 바퀴만 보고 말 한마디 하지 않고 하루 종일 다녔다 한다. 유럽 여행 가면 유난히 딸 덕에 효도관광 온 중년 여성이 눈에 많이 띈다. 난 혼자 씩씩하게 다녀왔다. 아들만 둔 엄마는 자식 덕 볼 생각일랑 아예 하지 않는 게 좋다고들 선을 긋는다.  마음은 그렇게 먹지만 아쉬움은 어쩔 수 없다. 요즘 두 아들이 목하 열애 중이다. 군대 갔다 올 때는 괜찮았는데 여자 친구가 생기니 심리적 의존 대상이 여자 친구에게로 옮아갔다. 내심 편하지만 옆구리가 허전하다. 솔직한 고백이다. 내 일도 있고, 글을 쓸 때 온전히 채워지는 내적인 기쁨도 있지만 그래도 사랑을 쏟고 돌봐야 할 대상이 없어지고 허전하다. 아이 키울 때는 홀가분해질 날만 기다렸는데 말이다. 





책임과 의무로 했던 엄마 역할만 이었다면 아마 육아가 힘들기만 했을 것이다. 여성에겐 누군가를 돌보면서 채워지는 기쁨과 행복이 오롯이 있다. 경험해 보면 안다. 정을 떼야하는 시기가 온다. 아이들이 독립하고 나면 한동안  사랑을 쏟을 대상을 잃고 방황한다. 정도의 차이가 있지만 빈 둥지 증후군을 경험한다. 힘들었지만 먹이고 입히고 쓸고 닦으면서 사랑과 관심을 쏟으면서 살았던 시간이 행복했다고 절실히 느끼게 된다. 그 행복이 바로 순수한 모성이다. 생의 선물과도 같은 기쁨이다. 남편은 김칫국 먼저 마시지 말라고 말린다. 아들들이 목하 열애 중이니 내가 시어머니가 될 수 있는지, 되고 싶은지 은근 고민이 된다. 요즘 애들은 데이트가 맛집 투어, 영화 관람, 여행이다. 우리 때랑 비교해 데이트 비용이 엄청나다. 엄마한테는 커피 한 잔 사지 않는 아들이 데이트 비용으로 7-8만 원 쓰고 왔노라는 고백을 들으면 은근 화가 난다. 지금도 야릇한 부러움과 질투가 있는데 시어머니가 되면 노골적으로 대놓고 부러울까 봐 두렵다. 딸이라면 명절 시댁에 먼저 가는 일이 부당할 텐데 며느리라서 당연하게 여겨질까 봐 두렵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 세대는 며느리로 대체적인 관습을 따르며 살았는데  나는 책임과 의무를 다하고 며느리에게는 요구할 수 없는 시어머니가 될까 봐 걱정된다. 생각은 그렇게 하면서 마음이 수용하지 못해 서운함이 생길까 봐 말이다. 나도 여성이면서 시어머니가 되면 완고해질까 봐. 우스갯소리에 이런 말이 있다. 세상에 3대 바보가 있는데 남의 여자 남편을 내 아들이라고 생각하는 여자가 그중 하나란다. 





나랑 정서적으로 친밀한 딸 역할하는 아들이 나한테 물었다. '82년생 김지영'을 여자 친구랑 같이 보면서 엄마가 떠올랐다면서 그 영화 보면서 어땠는지 물었다. 아들이 그렇게 물어봐줘서 울컥했다. 영화 보면서 엄마가 떠올랐고 엄마의 삶은 어떤지 물어봐 주는 아들이 있어 정말 고마웠다. 사실 친정에서나, 시댁에서 제사 지낼 때마다 다른 성을 갖고 있는 시어머니와 며느리가 왜 그 집안 조상들을 모셔야 하는지 아직 익숙하지 않다. 종갓집 종손이었던 친정집 제사는 어땠는가? 1년에 10번 제사가 있었다. 제사 때마다 친정엄마 못지않게 스트레스를 맏딸인 내가 받아야 했다. 내가 꿈꾸는 시어머니, 며느리 연대는 여성으로서 성을 편 가르는 싸움이 아니다. 생각해 보니 관습과 세대, 가부장 문화를 넘어 가족이 연대할 수 있는 가족문화를 남편, 아들과 함께 만들고 싶다. 시어머니, 며느리 연대는 역할에 남성을 공평하게 넣어 좀 더 잘 놀 수 있는 문화를 만들기 위한 연대이다. 아들을 나눠 갖는 이상한 관계, 사랑을 빼앗기고 빼앗는 관계의 틀에서 벗어나고 싶다. 그러기 위해서 난 어떤 시어머니가 되고 싶은지, 세대의 대물림을 어떻게 끊고 싶은지 고민이 필요하다. 가족의 계승자가 되는 순간, 시어머니 역할에서 벗어날 수 없다. 가족의 혈통을 잇고 집안의 가치를 잇는 선택을 하는 순간, 가부장 문화의 전승자 역할을 하게 된다. 텔레비전에서 본 것 같다. 아나운서 오성진 어머님이 며느리를 위해 제사를 없앴다는 내용이었다. 부모님 세대를 보면 아버지는 집안의 전통 계승자 역할을 물려받고 그 역할을 하도록 교육받는다. 가부장 문화의 대표적인 예가 제사 모시기인데, 보통 부모님 살아계시는 동안은 다른 방식으로 추모하기가 힘들다. 가부장 문화의 추모 방식인 제사를 가족이 함께 모여 서로 친목하는 추모 방식으로 바꾸려면 변화와 결단이 중요하다. 시어머니, 며느리 둘 다 여성이다. 남녀를 편가르려는 의도가 아니다. 가부장 문화를 넘어 가족이 연대하고 교류하는 집안 문화를 만들기 위해서는 시어머니, 며느리가 연대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남편, 아들도 함께 참여하는 가족연대는 그래서 시어머니 결단이 중요하다. 바꾸고 변화하려면 여성들이 연대해야 한다. 자신 없지만 새로운 가족 문화를 만들어 가는 시어머니가 되고 싶다. 서로 연대할 수 있기 위해 계속 고민해 나가고 싶다. 





작가의 이전글 며느리에게 거절하는 법부터 가르쳤다

매거진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