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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남정하 Oct 19. 2020

갑을관계 여성의 자기표현

내가 나를 위해 말해야 하는 이유/ 시어머니 사표는 없나요?


최근 박원순 서울시장 성폭력 사건으로  갑을관계에서 여성의 거절 표현에 대한 이야기들이 이슈다, 사건이 터질 때마다 피해자 여성에게 쏟아지는 질문이 있다. “ 왜 그런 일을 겪자마자 당장 저항하고 직장을 그만두지 않았나요? ” 남자들은 물론 같은 여성 입장에서도 그런 행동을 이해할 수 없다는 사람들이 많다. 결국 성희롱, 성추행은 물론 직장 상사가 성차별에 근거해 수발 노동을 맡길 때 단호하게 거절하고 직장을 그만두지 못한 책임임이 당자자에게 있다는 의미다.  성희롱, 성추행 가해자도 문제지만 똑 부러지게 거절하고 의사 표현하지 못한 피해 여성의 탓을 강조한다. 

최근 SNS에 젊은 아빠들 글이 눈에 띄는데 '고등교육을 받은 성인 여성이 왜 싫다는 말을 4년이나 못 했는지 이해가 가지 않는다'면서 자신들의 딸은 강하게 키워 스스로 보호할 수 있도록 키우겠다는 내용이었다. 피해 여성이 자신들의 딸이라면 바라보는 문제가  이렇게 달라진다. 반복되는 갑을관계 성폭력 사건이 일어나 피해 여성이 당장 부당함을 알리고 직장을 그만두지 못했다고 말할 때마다 ' 나라면 어떻게 했을까' 고민하게 된다. 

머리로는 당연히 단호하게 거절하고 사실을 폭로해야 한다고 생각하지만 같은 여성의 입장에서 왜 말하지 못했을지 마음으로 절절히 공감이 간다. 우리 시대 여성들 중 성희롱, 성차별, 부당한 행위를 겪지 않은 사람이 몇이나 있겠냐 말이다.  달라져야 한다. 더 이상 피해 여성의 성격이 약해서도 아니고 잘못 대처해서도 아니다. 자주 이런 일이 반복해서 일어날 때마다 여성이 거절하지 못하도록 길러진 문화 탓만 할 수 없는 노릇이다.





 박신영이란 분이 페이스북에 쓴 내용에 공감한다. “ 무엇보다도 육아 방법이 잘못됐다. 부당한 요구에 사표를 던지고 부당함을 알리기 위해서는 육아(育兒)가 아니라 육아(育我)에 힘써야 한다” 는 의견이다. 교육의 방향이 자신을 존중하고 보호하기 위해 한 사람 한 사람 개인의 존재를 소중하게 존중하도록 키워져야 한다. 친구와 싸우고 돌아오면 우리 아이가 뭣 때문에 속상했는지 묻지 않는다. 무조건 잘 지내야 한다고 가르친다. 자녀가 친구와 싸우고 돌아올 때 혼내기 앞서 자녀의 마음과 욕구를 먼저 소중하게 생각해서 공감해주고 이유를 물어야 한다. 존중은 아이 입장을 먼저 배려하고 돌보는 것이다. 다른 어떤 관계보다 자녀의 존재가 가장 소중하다는 걸 육아 과정에서 경험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자신의 존재를 소중하게 여겨 스스로 잘 돌볼 수 있는 힘을 길러주어야 육아(育我)다. 세상 어떤 일 보다 소중한 일이 자신을 지키고 보호하는 일이라는 걸 자녀가 느끼도록 키우려면 부모는 가르쳐야 자신을 지키기 위해 당당하게 거절할 수 있다. 당연히 여성이라면 고분고분하고 순종적이길 바라는 마음으로 딸을 키우는 세상의 부모들에게 이제 달라져야 하고 다르게 키워야 함을 말하고 싶다. 부모가 그렇게 자녀를 키우는 건 사회적인 순종적인 분위기를 거스르기 어렵다고 생각한다. 내 삶은 내가 몸담고 있는 사회의 문화적인 생활방식을 고스란히 담고 있으니 내 문제는 곧 사회의 문제이고 사회문제는 곧 개인의 문제이다, 





비폭력대화는 솔직한 표현을 통해 자신의 느낌과 욕구를 소중하게 바라보고 그걸 표현하는 방법이다. 비폭력대화에서 갈등은 다른 사람과의 다른 의견과 원하는 것 때문에 생기지만 가장 근원적인 갈등은 자신의 내적인 갈등이다. 자신의 느끼고 표현하는 것과 다르게 다른 사람의 기대에 맞추거나 자신의 속한 이해집단의 이익과 관계를 위해 자신을 숨기고 말하고 행동하는 데서 비롯된 갈등이 더 고통스럽다는 걸 알게 된다.

 자신의 소중함, 자기 존중, 자기 보호의 힘에 눈을 뜨면서 여성의 자기표현이 얼마나 중요한지 몸으로 깨닫게 된다. 직장처럼 자신의 생계를 위해 일을 해야 하는 사람들 모두, 부당함을 단호하게 거부하고 당당하게 직장을 그만둘 수 있는 사람은 드물다. 말이 쉽게 부당함을 당하면 당장 저항하고 맞서야 한다고 말한다. 모두 갑을 관계에 해당한다. 

갑을관계는 직장 상사와 부하뿐 아니라 어린 시절엔 부모와 자녀, 힘을 가진 친구와 약한 친구사이, 일을 주거나 평가할 권한을 가진 모든 관계, 시댁 식구와 며느리, 돈을 주는 입장과 받는 입장 등 무수히 많은 관계가 해당한다. 비폭력대화를 배우고 나서 제일 먼저 갑을관계에서 갑의 기대에 맞추며 살지 않겠다고 결심했다.

나에게 일을 주고 비용을 지불하고 나를 평가하는 권한을 갖고 있는 대상이 모두 갑을 관계이다. 어떻게 갑을 관계에서 벗어나 서로 협력하고 지원하는 관계를 맺어갈 수 있을까? 그런 고민을 하면서 서로를 존중하면서 일을 하고 싶다는 마음이 컸다.

 첫 번째 시도가 출판사와의 관계였다. 첫 책을 출판하기로 한 출판사와 새롭게 관계 맺음하고 싶었다. 첫 출판에 대한 기대가 컸던 만큼 작가에 대하는 태도에 민감했다. 책을 낼 때 출판사 대표는 주변 사람들에게 물어봐서 알 거라고 하면서 책을 몇 권정도 소화할 수 있는지 물어봤고 책을 팔기 위해 작가 스스로 홍보하고 알려야 한다고 강조했다. 글의 내용에 대해서는 한마디 하지 않았다. 편집회의를 하기로 한 날 약속시간에 3시간 늦게 온 대표는 늦어서 미안하다는 말 한마디 없이 작가 인지도가 낮아 스스로 책 판매를 위해 해야 한다고 제안했던 일을 얼마나 했는지 물었다. 인지도 없이 책을 낸 초보 작가가 부딪혀야 익숙한 출판사 풍경이었는지 모르겠다. 

서로 협력하고 지원하는 갑을관계가 아니었다.  동등한 관계의 파트너십을 원했다. 마음이 불편했고 이대로 계약한다면 책을 내긴 하겠지만 계속 마음이 시끄러울 것 같았다. 무엇보다 약속시간에 늦게 왔는데 인사로라도 미안함을 표현하지 않은 점이 불편했다. ‘지금 내 감정과 원하는 것을 말하면 계약이 성사되지 않을지 몰라’ 가슴이 쿵쾅거렸다. 계약이 깨질 수 있다는 걸 염두에 두고 말해야 했다. 생사여탈권, 혹은 일을 줄지 말지 결정권을 가진 갑 입장에게 자신의 의견을 표현하는 일은 사실 위험하다. 

예상 못한 결과가 생기더라도 감수하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말할 건지 생각할 필요가 있었다. 일을 선택할 것인가 나에 대한 존중을 선택할 것인지 나에게 물어봤다. 책 계약이 파기되어도 나를 보호하고 존중하는 일터가 중요했다. 그렇게 살고 싶었다. “ 상대가 누구든, 설사 책을 내지 못하는 한이 있더라도 난 더 당당하게 살고 싶고 좀 더 동등한 관계로 일할 수 있는 환경에서 책을 내고 싶어 ”라는 답을 들었다. 

출판사 대표에게 늦게 와서 미안했다는 말을 듣고 싶었고 직원에게 지시한 일을 했는지 점검하는 듯한 말투 때문에 신경이 쓰이고 불편하다고 말했다. 서로 의견을 나누고 협력하는 관계로 일하고 싶다고 말했다. 대표는 내 말에 놀랐는지 아무 말없이 가만 있었다. 

대화는 끊어졌고 당황한 편집자는 긴장한 눈빛으로 안절부절못하지 못하고 있었다. 잠시 후 대표는 편집자와 이야기 나누라고 하면서 사무실을 나갔다. 일주일 후 직원을 통해 더 큰 출판사에서 책을 출판하길 바란다고 전화로 전했다. 예상했던 답이었다. 순간 그냥 참을 걸 그랬나 싶었다. 다시 출판사를 찾아야 한다는 부담감으로 마음이 무거웠다. 하지만 한편으로 홀가분했다. 뭔가 나를 무겁게 누르고 있던 억압에서 자유로와진 느낌이 들었다. 책을 내는 일보다 동등한 갑을 관계를 원하는 내 마음의 소리에 손을 들어주었다는 자부심이 컸다.

잠시 쉬었다가 출판사에 다시 기획안을 보냈다. 일주일 후 작가에게 어떤 부담도 주지 않고 쓴 내용 그대로 의견을 존중해주는 출판사를 만나 첫 책 출판을 하게 됐다.  내가 나를 위해 말해야 하는 이유가 여기 있다. 내가 나를 위해 말하지 않는다면 살아온 방식대로 앞으로도 살아가야 한다. 이 과정에서 느낀 점이 있다. 남들 눈에는 쉬워 보이는 거절이 입을 열어 표현하기 까지 얼마나 힘겨운지 모른다, 그게 모두 개인이 말하지 못해서 생긴 잘못이라고 비난해서 오랫동안 죄책감, 자책감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마음의 문을 닫고 살게 된다. 주변의 응원과 지원이 필요하다. 거절해도 괜찮고 자신을 보호하고 존중하기 위한 자기표현은 언제나 옳다는 지원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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