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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남정하 Oct 16. 2020

나이 50 넘어서야 페미니스트

내가 나를 위해 말해야 하는 이유/ 시어머니 사표는 없나요?



‘불평등의 시대( 이철승 )’라는 책에 나온 글이다. “386 세대 여성들은 남성들과 달리, 애초부터 소수만 상층 노동시장에 진입했거나 진입했더나도 장시간 생존하지 못했던 것으로 보인다. 출산과 육아시스템이 갖춰지지 못한 상황에서 일과 육아를 병행하기 힘들었고, 가부장 문화가 지배적인 386세대의 남성들이 육아에 동참하지 않았기에 벌어진 세대의 한계다. 이 세대의 여성들은 육아를 어느 정도 마친 후 40대 다시 재취업했더라도 원하는 지위로 재진입하지 못했다.” 구구절절 맞는 말이다. 특히 지금 중년을 맞고 있는 386 세대들의 남성들, 우리들의 남편들은 겉모습은 진보적인 듯 보이지만 속을 들여다보면 가부장적인 가치관을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다, 생각과 가치관은 시대 흐름을 앞서가는 것 같지만 가정에서의 역할분담이나 남녀평등, 육아 돌봄 등에 대해서는 윗세대인 부모세대들과 비슷하다, 출산과 육아시스템이 갖춰지지 못한 시절 직장을 다니면서 일과 육아를 병행하기는 지금 보다 훨씬 힘들었다. 남편은 집안 일과 자녀양육을 충실히 하면서 자기 관리, 자신의 일을 계속해나가길 바랬다. 우선순위는 무엇보다 엄마, 아내 역할이 중요하고 그러면서도 자기 계발의 끈을 놓지 않길 바랬다. 남편을 힘들게 하지 않는 한에서 집안일을 하고 나머지 시간은 하고 싶은 대로 자유롭게 살라는 얘기였다. 아이들 다 키워놓고 살아온 인생을 돌아보니 일과 육아를 병행하지 못한 아쉬움이 크게 남는 건 아니다. 아이를 키우면서 일을 놓지 않고 짬짬이 해왔고 하고 싶었던 공부며 나 자신에 대한 탐구, 나를 이해하는 시간을 충분히 가진 시간들이었다. 비교적 엄마 역할에만 매이지 않고 나 자신을 찾고 정체성을 잃지 않으려고 노력하며 살아왔다. 





경상도 찐 가부장 문화에서 태어난 오리지널 K 장녀에 종갓집 맏딸로 자란 나는 어릴 때부터 가부장 문화에 익숙했다. 가족이 잘 지내기 위해서는 상대에게 맞춰야 한다고 배웠고 특히 남녀관계는 훨씬 더 가부장적인 문화에서 성장했다. 남녀평등에 대해 386세대 남성들이 가부장적이었듯 나 또한 속으로는 남녀가 평등하게 동등한 관계로 서로 협력하면서 살길 원했지만 기대대로 되지 않을 때 갈등을 접고 혼자 해결하는 방식으로 살았다. 아이들 다 키워놓고 가장 아쉬운 점은 서로 싸워서라도 원하는 것을 말하고 들어서 서로 협력하고 부족한 점을 채웠어야 했다는 후회가 있다. 상대를 위해 혹은 자신을 위해 누가 누구에게 맞춘다는 건 건강한 관계 맺음이 아니다. 육아와 집안일을 혼자 해 오면서 부부의 협력을 기반으로 한 서로의 믿음, 함께하는 기쁨이 흐르지 않아 부부관계는 급격히 형식적이고 메말랐다. 이후 자녀가 크면서 시간적인 여유가 생기면서 관계의 회복에 정성과 시간, 노력이 필요했다. 

사실 젊었을 때 페미니즘에 관심이 별로 없었다. 너무 대립적으로 여성과 남성을 분리하는 시각에 불편함이 있었다. 이제 아이를 다 키웠다. 엄마 역할, 아내 역할, 딸 역할에서 벗어나 나 자신이 나다운 존재로 살아가야 할 시간이 많이 남아있다. 백세시대를 운운하지 않더라도 평균 수명이 늘어난 요즘 시대 화두는 단연 수명, 돌봄, 남는 시간에 대한 고민이다. 딱 지금 나이가 인생에서 가장 여유로운 시간이다. 자녀들 결혼해서 손자 손녀 뒤치다거리와 아픈 부모님 돌봄을 마치면 이제 우리 차례다. 생로병사가 앞에 놓여있다. 이런 고민들을 하면서 최근 ‘페미니즘 앞에 선 그대에게 (강남순)’을 읽었다, 이 책에서 페미니즘은 여성차별에서 출발해서 ‘모두’가 인간인 세계로 나아가는 시작이란 말이 가슴이 와 닿았다. 





예전에 여성에 초점이 맞았던 페미니즘은 여러 이론 중 일부에 불과했다. 그동안 가졌던 여성주의에 대한 오해가 풀렸다. 페미니즘은 모든 존재들이 소외되지 않고 존중받는 세상을 정치적, 제도적으로 만들어 나가야 한다고 주장한다. 중년의 나이가 되어 남은 노년을 어떻게 살아갈지 고민하게 되는 요즘 존재 자체로의 존중이 화두다. 기존 가부장적인 가치와 문화를 그대로 이어받는 집안의 어른이 되라는 압력을 받는다. 집안의 제사, 부모님 부양문제가 당장 발등이 곧 떨어질 수도 있다. 딸이 있다면 사위를 얻을 테고 아들이 있다면 며느리를 얻을 것이다. 손자 손녀가 생기면 정말 집안에 어른이 된다. 난 지금 시기가 한 가정의 문화와 가치관을 바꿀 수 있는 굉장히 중요한 기점이라 본다. 일방적으로 내려오는 전통을 이어가야 하는 책임과 의무로 가족행사를 치른다면 얼마나 행복할 수 있을까 싶다. 방송 아나운서 오상진 어머니는 며느리를 들이고 제사를 없앴다고 한다. 주변을 보니 시아버지가 살아계실 때는 제사를 지내다 돌아가시고 나면 자녀들을 위해 시어머니가 나서서 없애는 집이 늘고 있다. 이런 집안 행사에 대한 결정들을 자녀들과 의논하고 협의해서 가정이 좀 더 화목할 수 있는 새로운 방식으로 변화시켜가는 역할을 집안의 어른인 어머니들이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러려면 여성 자신이 달라지고 변화해야 한다. 가부장적인 문화를 이어가려 하면 할수록 젊은 세대들과 부딪히고 갈등이 생길 수밖에 없다. 서로 단절하고 왕래하지 않고 사는 가족이 늘고, 다른 시댁 문화와 시부모의 강요가 자식들 이혼사유가 되는 세상이다. 페미니즘이란 말이 급진적으로 느껴지는가? 급진적이란 말은 “ 가장 근원적인, 뿌리에 해당하는”이란 뜻을 가지고 있다고 한다. 이런 의미라면 우리나라 가정의 문화 또한 가장 근원적으로, 뿌리에 해당하는 부분이 변화할 필요가 있다. 그 변화의 중심에 지금의 중년 여성이 서있다. 중년의 정체성을 찾아간다는 건 자신 존재를 회복한다는 뜻이고 살아오면서 양육받고 교육받고 주입된 사회적인 가치에서 벗어나 본래 자신의 고유한 가치와 생각, 원하는 삶을 찾아가는 길이다. 자신의 정체성을 찾아가는 길목에 왜곡된 성역할, 성차별, 가족 안에서 길들여진 여성의 역할, 모성에 대한 강요 등에서 자유로와질 필요가 있다. 자녀들이 결혼해서 손자 손녀를 낳으면 다시 엄마 역할이 시작된다. 자녀들을 향한 부모의 헌신과 희생은 거의 전통에 가깝기 때문에 단호하게 거절하고 끊으려면 용기가 필요하다. 자신이 텅 비어있다면 자녀들을 다시 부모에게 의지하게 해서 독립을 막을 것이다. 부모가 자식에게 사랑을 얻는 일반적인 방식이다. 다시 자녀양육을 떠맡지 않으려면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을 적극적으로 찾고 충분히 자신의 삶을 누릴 수 있도록 자기 시간을 사용할 줄 알아야 한다. 이 모든 과정에서 상호성을 기반으로 한 자기표현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자기표현을 하기 위해서는 자신의 뭘 원하는지 욕구를 분명하게 의식할 필요가 있다. 그리고 자녀들과 가족을 위해 내어 줄 시간이 어느 정도인지 분명하게 말하고 그 안에서 자녀를 도울 수 있으면 좋겠다. 늙을수록 자기표현이 정말 중요하다. 거절을 할 때 엄마로서 해주고 싶지만 지금 어떤 일이 중요한지 말하고 그 일 이외 시간에 도울 수 있다고 말하면서 상호적으로 지원할 수 있도록 의논한다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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