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으면 병나요
둘째 출산을 한 달 앞두고 사표를 냈다. 이번에는 뒷일 생각하지 않고 끝냈다는 말이 더 어울렸다. 둘째 아이를 낳고 얼마동안 키운 후 다시 일을 시작하고 휴직하는 동안 뭘할지 아무 생가없이 사표를 냈다. 그만큼 많이 지쳐있었다. 일어나 지하철 타고 회사에 도착해 책상 앞에 앉으면 잠시 화장실 다녀올 엄두가 나지 않을 정도로 모든 체력이 바닥난 상태였다.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그때 증상은 온 몸과 마음이 바닥까지 탈진한 '번 아웃'증상이었다. 막달 임산부가 사무실에 앉아 의자 바퀴를 굴려 이동하며 일을 하던 그때를 떠올리면 처절하고, 슬프다. 무조건 맹목적이었던 것 같다. 결혼해서 아이 낳고 육아하고 살림하면서 사는 여자로 전락하지 않으려는 노력이었다. 그렇게 모든 에너지를 소진한채 뒤돌아보지 않고 사표를 냈다. 미련, 아쉬움 같은 감정이 1도 들지 않은채 직장을 그만두고 몇주 계속 잠만 잤던 기억이 난다.
어느날 비디오 가게에서 비디오를 빌려는데 주인 여자가 유심히 나를 보더니 "혹시, 갑상선 있으세요? 목 앞이 불룩해서 물어보는거예요. 알고 계신가하구요. 병원가서 검진 받아보시는게 좋겠어요" 둘째 아이 출산 한달 앞두고 갑상선을 발견했고 출산과 약 복용은 연관이 없으니 안심하고 약을 복용하라며 신드로이드 한 알에 반 쪽을 쪼갠만큼 양의 약을 처방받았다. 갑상선 진단을 받고 깨달았다. 발아래로 꺼져들어갈 듯한 피로감 때문에 한발짝 옮기기 어려웠고 발바닥이 닿은 땅이 아래로 아래로 끌어내려 땅으로 꺼지는 것 같은 무거움이 이 병 때문임을 알게 됐다. 지하철 계단을 올라 사무실에 도착하면 의자에 엉덩이가 바닥을 뚫고 내려앉는 듯한 이유도 알게됐다. '그동안 정말 많이 힘들었구나' '몸과 마음이 지치면 아무일도 할수 없구나''애썻어'
'일하는 여성' '일과 육아'를 병행하는 여성이 되기 위해 결혼 후 부터 하루도 쉬지 않고 집안 일과 자기계발을 위해 달려오느라 누적된 피로가 켜켜이 쌓여 무기력으로 내려앉았다는 걸 그제서야 느낄수 있었다.
요즘 젊은 여성들부터 40,50대 중년여성까지 나이 상관없이 갑상선 질혼이 늘고 있다는 보도가 있다. 2010면 국가암등록 자료를 보면 암발병 1위가 갑상선암이라한다. 지난 30년간 갑상선암 발병률이 30배 증가했다고 보고한다. 정보와 함께 심한 스트레스, 자가면역이상, 불규칙한 식습관, 운동부족 등 다양한 원인이 복합적으로 작용하는 것으로 알려져있다. 특히 극심한 스트레스는 갑상선 질환의 가장 큰 원인이다. 이건 인터넷에 검색하면 누구나 찾을 수 있는 일반적인 병의 원인이다.
출산 후 10여년 갑상선 약을 복용하면서 일반적인 병의 원인이 스트레스 때문인것 알게 되었지만, 나에게 이 병이 발병한 원인이 뭔지 궁금했다. 그래야 근본치료가 가능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원했던 건 '치료'가 아니라 '치유'였다. '갑상선이 나에게 어떤 필요를 알리기 위해 증상으로 생겨났을까?' 갑상선은 조금만 피로해도 피로감이 크기 때문에 일명 '왕비병'으로 알려져있다. 몸의 피로감에 맞춰 일, 활동량을 줄여야 일상생활을 편안하게 이어갈 수 있다. 최근 탈렌트 이승연이 갑상선 이상으로 몸이 엄청 부었다가 다이어트로 뺐다는 기사를 읽었다. 몸에 살이 빵빵하게 붙는다. 딴딴하게 켜켜이 쌓인 살이라 절대 빠지지 않는다. 갑상선 증상이 있는 상태에서 다이어트를 하려면 주의가 필요하다.
둘째 출산 이후 더는 치열하고 바쁘게 살수 없게 됐다고 마음 먹게 한 갑상선 증상에 대한 나의 이해는 이렇다. '마음으로 몸을 고친다(도솔)' 책에 목 관련 질환에 대해 이렇게 설명하고 있다. 목은 현실을 삼키고 느낌을 표현하는 머리와 다리 사이의 역할을 하는 곳이다. 목이 조이는 듯해 이완의 필를 느낄때 이렇게 질문할 필요가 있다. '자신의 느낌들을 귀담아들어 줄 필요를 느끼는가?' '생각을 줄이고 더 많이 행동할 필요를 느끼지 않는가?'. 신체 중 목 관련 증상은 자신의 생각과 마음의 느낌 사이 상호소통이 대립될때 생기는 '표현에 대한 불일치'와 관련있을 수 있다. 눈 앞에 펼쳐진 현실과 자신의 내면에서 올라오는 감정 사이에 지성과 감정의 대립과 분열이 원인일 수 있다. 우린 화가 났을때, 슬플때, 분노할때, 짜증날때, 행복할 때, 즐거울때 등 여러 감정이 생길때 우린 감정을 분출하고 싶어한다. 기쁠때 환호를 지르고 싶듯이 화가날때, 분노할때 상대에게 부정적인 감정을 쏟아내고 싶어한다. 감정이 목젖까지 차오르지만 관계를 생각해서 참는다. 말하지 않고 억누른다. 분출했다간 갈등이 생길게 뻔하니 그 순간 참고 넘긴다. 그럴때 침을 꿀꺽 삼킨다. 입을 열어 말을 하면 싸움이 날까봐 말을 삼킨다. 말에 담긴 부정적인 기운을 밖으로 분출하지 않아 상대에게 불똥이 튀지 않도록 멈추는 일은 현명하다. 일이 더 커지지 않도록 멈추는 역할을 하니까. 그때 침을 꿀꺽 삼키고, 말을 삼키는 일이 잦을때 목 관련 증상이 생길 확률이 높다는 내용이었다.
약 복용을 10년 이상 하고 4개월 마다 정기검진을 하면서 죽을 때까지 살아야 하는 모든 질병을 앓고 있는 사람이라면 매번 고민한다. 약을 평생 복용해야 할까? 끊어볼까? 약 말고 다른 치료법은 없을까? 이런 고민을 할 무렵 갑상선 증상이 '부정적 감정에 대한 자기표현' 문제일 수 있다는 정보를 읽고 답을 찾은 기분이었다.
충분히 그럴수 있다. 주변 지인들 중 갑상선 질환을 앓고 있는 사람이 10명 중 6명 이상은 되는 것 같다. 여동생은 갑상선 암으로 수술을 했고 친정엄마도 갑상선 질환이 있다. 혹이 더 커지지 않도록 검진을 받고 있는 상태이다. 여성으로 살면서 부정적 감정을 표현하는 일에 자유로운 세대가 얼마나 있을까? 시대가 달라졌지만 요즘 젊은 여성들은 남녀가 평등하게 살길 원하고 일의 영역에서 남자들과 동일한 스트레스를 감당해야 하는 세대인것 같다.
나에게 갑상선 질환이 발병한 원인이 '부정적 감정에 대한 자기표현'일지 모른다고 이해하고 나서 내가 어떻게 느끼고 있는지 나를 이해하는 작업을 하기 시작했던 것 같다. 부모교육 강사를 할때 감정능력 분야에 관심이 있었으며 감정을 인식하고 이해하고 표현하는 일이 개인의 자유로운 삶과 행복에 중요하다는 생각을 갖게 되었다. 이런 노력이 갑상선 치유로 이어졌다. 자신의 생각과 느낌을 말을 통해 표현을 하고 산다는 건, 내 몸안의 독소, 부정적인 감정, 스트레스를 바깥으로 내보내도록 도와 몸에 쌓이지 않게 돕는 적극적인 행위라 생각한다. 삶의 생동감의 순환과 표현이 밀접하게 관련되어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