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남정하 Oct 26. 2021

예민한 사람이 살아남는 법

가볍게 자기표현으로 자주 감정을 환기해야

캐럴라인 뎁의 '명랑한 은둔자'를 읽으면서 안도감을 느꼈다. 캐럴라인은 자신의 예민한 감정을 솔직하게 고백하고 있다. 책 속의 그녀 내면은 뒤엉킨 전선처럼 복잡하고 센스티브하다. 전선배선이 얽혀 어디부터 손을 대야 할지 모를 두꺼비집을 열어젖히고 감정 배선을 하나하나 살핀다. 그녀에게 예민함은  '고독과 고립'의 차이를 놀라운 관찰로 설명하고 있다. 자신의 내면에 대한 고백을 담고 있는 '명랑한 은둔자'는 그래서 많은 이들이 위로를 받는다. '나만 이렇게 예민한 게 아니었어'. 캐럴라인 뎁은 '명랑한 은둔자'로 유명하지만 유명 작가여서 그녀의 예민함이 더 예술적으로 느껴지는지 모르겠다. 보통 예민하다 하면 ‘성격 까탈스럽다. 신경질적이다’라는 말로 통한다. 예민하다는 말이 뭐 좋게 들리지 않는다.

오래전부터 내가 가진  예민하고 센스티브한 감정때문에  힘들다. 평생 예민함과 함께 동거하느라 동굴 속에 박혀산가는 느낌이 들때도 있다. 때로 감정 소모가 커서 센스티브한 감정 배선을 때로 몇 군데 끊어버리고 싶은 중동에 휩싸이기도 한다.

'멍에에서 벗어나기 위한 여정(장성숙)'에서 예민한 사람들의 특징을 이렇게 말하고 있다. 예민한 사람들은 대개 마음이 여리거나 소심한 사람을 가리키는데 꽝꽝 바깥으로 성질을 내지 못하고 속으로 삭히면서 이 생각 저 생각 오만 생각을 다한다. 속이 복잡한 만큼 바깥으로 드러나는 모습은 우유부단하게 보일 수 있다. 장성숙 교수는 자신이 예민한 사람인지 파악하는 방법으로 주변이 시끌시끌할 때 '나 때문인가? 나를 무시하나? 내 탓인가?' 끊임없이 궁리하는 부류라면 예민한 과에 속한다고 말한다. 사람들의 반응과 주변 상황을 그냥 넘기지 않고 끊임없이 생각하느라 삶의 에너지를 소진한다면 예민한 편에 가깝다.

예민한 사람을 '욱하는 사람' '잘 삐치는 사람'으로 부른다. 욱하는 사람은 평소 자기 할 소리를 못하고 눌러두다가 어느 순간 자신도 모르게 폭발하는 경향이 있다. 자신의 감정을 누르고  눌러두는 만큼 더 복잡해지고 생각이 많아진다고 봐야 한다. 잘 삐치는 사람도 마찬가지이다. 이런 사람들이 예민함에서 벗어나려면 가볍게, 가뿐하게 표현하는 연습을 해야 한다고 말한다.

장성숙 교수 말에 따른다면 우리 부부는 둘 다 예민한 부류에 속한다. 남편은 자주 삐쳐서 말문을 닫고 자신의 감정 속으로 들어가는 편이고 나는 평소 감정을 눌렀다가 욱하고 폭발하는 부류였다. 감정을 폭발하면 남편은 삐치고, 삐치면 서로 말을 하지 않는다. 말하다 더 싸울까 봐 거리를 두고 감정을 식히는 시간을 갖는데 그 자체 단절로 이어졌다. 우리 부부에게 가장 필요했던 건 가볍게 자신의 감정을 표현하는 자기표현이었다.


자신의 감정을 가볍게, 가뿐하게 표현한다 함은 쌓이기 전에 무슨 일 때문에 불편한지, 화가 나는지 그때그때 이야기하는 거다. 상대를 배려한다고 그때 말하지 않고 그냥 지나가고나서 또 똑같은 일을 겪으면 감정이 몇 배 커진다. 감정이 쌓여있으니 곱게 보이지 않는다.  '나를 무시해서 이렇게 행동하나?' 이런 생각이 든다. 상대는 자신이 왜 삐쳤는지 모르는 상황에서 표현을 하지 않으면 계속 같은 실수를 되풀이할 가능성이 높다.

이미 화가 난 상태에서 기분이 나빠지게 되고 표현을 해야겠다고 마음을 먹고 상대에게 말할 때는 표현이 무겁고 진지해지기 쉽다. 말의 톤이 무겁게 표현되는 이유는 쌓은 감정이 함께 실려서 표현되기 때문이다. 쌓은 감정을 상대가 전해 들을 때 자극을 받을 수 있다. 그때그때 가뿐하게 표현할 때는 가볍게 들을수 있다. 표현하는 사람도 상대가 기분 나빠할까 봐 말 못 했는데 이렇게 말해도 괜찮네! 말한다고 관계가 깨지는 게 아님을 확인할 수 있다. 정색하지 않고 가뿐하게 표현하면 상대도 가볍게 받을 수 있다. '미처 몰랐는데 그럴 때 불편해하는구나'하면서 미안하다는 사과를 받으면 표현한 사람은 자신의 감정에 대해 신뢰하게 돼서 이렇게 표현하는 게 잘못된 게 아니구나 자신감이 생겨서 자기표현이 편안해질 수 있다.

자기를 표현한다는 건 자주 창문을 열어 환기를 시켜주는 일과 비슷하다. 자주 환기를 시켜줄수록 숨 쉴 수 있고 쾌적함을 유지할 수 있다. 표현하는 방식은 이렇다. "아까 당신이 그렇게 말할 때 그 말이 좀 불편했어" 불편했다는 감정을 표현이 걸린다면 상대가 무슨 말, 어떻게 행동할 때 기분이 좋지 않았는지 본 대로, 들은 대로 말한다. 상대 말이나 행동을 평가하는 말이 들어가면 가뿐하게 환기가 되지 않는다. 가볍게 "당신이 그렇게 말할 때 쫌 그렇더라. 살짝 신경이 쓰였어" 뭐 이 정도 표현하면 상대가 알아듣는다. "아! 그래? 난 별 뜻 없이 한 이야기인데 미안해"하고 받아주면 쉽게 풀어진다. 무슨 말을 해도 상대가 잘 받아준다고 믿게 되면 자기를 표현하는 일이 자유로와진다. 자기표현을 못한다는 말은 표현했을 때 잘 받아주지 않거나 혼나거나 비난받은 경험이 많기 때문에 표현에 대한 두려움을 갖기 때문이다. 가뿐한 자기표현을 위해서는 자기를 받아줄 수 있는 사람에게 자주 표현하는 연습을 할 필요가 있다. 쌓아둘수록  표현은 비장해지고 상대는 난데없는 표현에 상처받을 가능성이 높다. 서로에 대한 신뢰가 있는 사이라면 잠깐 서먹해지더라도 다시 관계가 회복될 것이다. 표현하지 않아서 멀어진 관계는 단절로 이어지지만 표현하고 나서 멀어진 관계는 언제든 다시 만날수 있다. 마음에 남은 찌꺼기가 없기 때문이다.



작가의 이전글 갑상선과 부정적감정표현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