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남정하 Oct 07. 2022

죽다 살아나 시작한 오토바이크

그림을 그리다

남편이 바이크 고치러 을지로에 갔다가 만난 사람과 번개 모임을 한다고 나간다. 송파에 사는 40대 젊은 바이커로부터 자신 집 옥상에서 여는 바비큐 파티에 초대받았다. 바이크 동우회에 나가 함께 타러 다니라 권할 때 혼자 타는 게 편하다고 움직이지 않더니 웬일인가 싶었다. 한 달 전 처음으로 젊은 바이커와 한계령을 다녀왔는데 밥 값을 내려했더니 사양하면서 바이커들의 규칙이라며 더치페이로 밥을 먹었다 한다. 젊은 사람들 문화가 역시 깔끔하다는 생각이 든다. 더치페이가 역시 부담 없고 편하다. 지인 하나는 몇 년째 사이클링 하는 취미를 갖고 있다. 매주 타러 다닌다. 지방 사이클링도 열심이다. 요즘은 젊은 세대를 모임에 가입해 사이클링을 다닌다 한다. 비슷한 나이 또래들과 사이클 후 밥 먹고 어울리는 건 좋지만 사이클보다 술 마시고 밥 먹는 목적이 큰 것 같아 부담스러웠다. 젊은 세대들 모임에 가입하고 나서 만족스럽다고 한다. 먹은 만큼 더치페이하고 술을 권하지 않는 문화여서 사이클링 자체를 즐길 수 있어서 좋다.

남편은 그날 모임에서 세 명의 젊은 바이커들과 합석했다. 한 명은 30대 후반 어머니와 함께 사는 회사원이고 바비큐 파티에 남편을 초대한 40대 바이커는 아내한테는 바이커 한대만 있다고 안심시키고 자신 회사 지하주차장에 5대가 더 있다는 비밀을 털어놓았다고 한다. 바비큐 파티에 가면서 와인이랑 향초를 선물로 가져갔다. 무슨 얘기 나누었는지 물으니 바이킹에 대해 많은 정보를 얻었고 바이크 타는 즐거움, 어디 가면 좋은지, 응급상황 대처법에 대해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얘기했다고 전한다. 단양에서 정기모임 정모가 열려 이번에 같이 참여하기로 했다고 한다.



나도 '풍경스케치' 강좌 후 함께 참여한 사람들과 2달 정도 후속 모임을 했던 기억이 난다. 그림에 대한 열정이 한창 불지펴진 상태여서 서울 도심 북촌, 인사동, 창덕궁 주변에 모여 그림을 그린 후 밥 먹고 차 마시고 놀았다. 혼자 그리면 쉽게 사그라들 열정이 후속 모임 덕분에 길게 이어졌다. 다양한 연령이 섞여 있고 서로 얼굴도 모르던 사이였지만 각자 그린 스케치를 보고 감탄해주는 자체가 응원이 되었다. 공동 취미 하나로 이렇게 많은 이야기를 나눌 수 있다는 사실이 정말 신기했다. 그 사람만의 장점이 꼭 있다. 한 사람의 그림에 대한 열정은 다른 사람에게 전해져 더 그리고 싶은 마음을 불러일으킨다. 한 번은 똑같은 그림은 다 같이 그려 카톡에 공유했던 장면이 떠오른다. 똑같은 곳을 그리는데 모두 다 다르다. 잘 그리고 못 그리고는  보이지 않는다. 그 사람만의 색감, 묘사가 눈에 먼저 띄어 서로의 그림을 감상하는 재미가 있었다. 취미 하나로 연령불문, 다양한 사람들과 만날 수 있으니 이 또한 기대하지 못한 즐거움이다. 혼자 하면 오래가지 못하지만 함께 하면 오래 할 수 있다. 나이 들면서 좋아하는 일을 함께 공유하는 느슨한 공동체, 새로운 사람들과의 만남은 삶이 확장되는 신선한 경험이다. 멋지고 아름다운 일이다. 특히 나이 들어가는 사람들에게 젊은 세대들과 연결은 삶의 활력소가 된다. 어디서 젊은 세대들과 어울릴 수 있겠는가? 적극적으로 찾을 일이다.



남편은 굉장히 규칙적인 사람이다. 칸트가 일정한 시간이 되면 어김없이 산책을 했던 것처럼 대체로 정확한 사람이다. 정해놓은 틀에서 벗어날 필요를 별로 느끼지 않는 타입이다. 봄이 왔다 여름이 올 때가 되면 날씨에 따라 반팔을 꺼내 입고 선선할 때 긴 팔을 갈아입는 나와는 달리 정해진 자신만의 루틴이 있다. 반팔을 꺼내 입는 시기도 정해져 있다. 5월 말까지는 아무리 더워도 긴팔을 입고 다니다가 6월 1일에 짧은 팔, 엷은 바지를 꺼내 입는 식이다. 이런 남편이 은퇴하면 하고 싶은 일은 오토바이크 타고 미대륙 횡단이다. 그 말을 10년 하면서 상상으로 바이크를 타고 다녔다. 그렇게 말만 하고 살다가 코로나로 죽다 살아났다. 코로나가 한창이던 2020년 겨울, 그러니까 겨울이 시작되더니 코르나 감염자가 1000명을 훌쩍 넘어 병상이 모자라서 난리가 난 바로 그 시점에 덜컥 코로나가 걸렸다. 그때가 12월 첫 주 김장날이었다. 감기몸살 기운이 있어 병원에 갔다가 열이 난다고 하니까 병원 문전에서 거절당했다. 보건소에서 한 코로나 검사에서 1차 음성 판정을 받았다. 코로나가 아니라고 생각하고 감기몸살 약을 먹고 3-4일 버틴 게 문제였다. 지금은 음성이다가 양성으로 판정받는 사례가 많지만 초반에는 흔한 일이 아니었다. 감기인 줄 알고 3-4일 버티는 동안 폐렴으로 병을 키웠다. 2차 검사에서 코로나 양성 판정을 받고서야 병원에 입원하게 됐다. 그날이 김장날이었다. 그때만 해도 코로나 판정을 받으면 사람들이 피해를 받을까 봐 말도 못 꺼내던 시기였다. 남편은 폐렴인 상태에서 병원에 입원해 곧바로 호흡곤란 증상을 겪었다. 입원 2-3일 만에 폐가 반이나 하얗게 죽어 숨쉬기 힘든 상태로 악화되었다. 정말 한 순간 일어난 일이다. 그나마 화상통화로 목소리를 들을 수 있었는데 호흡이 곤란해지면서 통화조차 어려웠다. 병원으로 찾아갈 수도 없고 환자 상태를 확인할 수도 없었다. 간호사들 전달 사항에 의존해야 하는 상황이었다. 입원 한주가 지난 어느 날 여의사가 상태가 위험하다고 이전에 치료해본 적 없는 질병이라 손 쓸 방법이 없다고 전화가 왔다. 마음의 준비를 하라는 의미였다.

다행히 한 달을 입원하고 겨우 퇴원을 했다. 한 발짝 옮겨 화장실 다녀오는 일도 호흡곤란으로 힘들어했다. 이후 3개월 이상 집에서 몸을 회복하는 시간을 갖고서야 직장으로 돌아갈 수 있었다. 남편은 그 일을 겪고 나서 곧바로 바이크를 샀다. 지난해 4월 어느 날이었던 것 같다. 지하 주차장에 바이크 타고 왔으니 내려와 구경하라는 전화를 받았다. 드디어 오토바이를 샀구나. 다른 와이프들은 오토바이 산다고 하면 난리가 난다 하는데 난 반대였더. 칸트같이 규칙적이고 정확한 사람인 남편이 좀 자유롭게 살았으면 하고 늘 바랬다. 안전한 곳 아니면 가고 싶어 하지 않는 남편 때문에 아내인 내 숨통이 늘 답답했기 때문이다.



좋아하는 일. 취미라 해야 하나? 요즘은 취미를 넘어 덕질이란 단어도 있던데. 자신을 위해 좋아하는 일 하나쯤이 아니라 여러 개 가질 필요가 있다고 주장하는 일인이다. 좋아하는 일은 자신을 틀에 가두고 있는 한계에서 벗어나게 하는 마력이 있다. 안된다는 생각보다 된다는 생각을 더 많이 갖게 돕는다. 좋아하는 일이 주는 삶의 기쁨은 자신도 행복하게 살아도 된다는 응원을 듣게 된다. 자신이 행복해지면 주변도 덩달아 행복해진다는 놀라운 변화를 경험한다면 다른 사람의 행복 기준에 맞춰 살아가는 어리석음을 버리게 된다. 좋아하는 일을 찾은 사람들은 행복하다. 자신이 좋아하는 일이 뭔지 모르는 사람들이 더 많다. 좋아하면 사랑하게 되고 사랑하면 더 좋아하는 일을 찾게 된다. 자신의 행복을 찾아 나서게 되면 더는 무기력하지 않다. 바이크, 그림 그리기로 초면의 사람들과 교류할 수 있다니 얼마나 멋진 일인가 말이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