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노 처방전/ 자녀의 행동은 자극일 뿐, 화 난 이유는 자신에게 있다
큰 애가 초등학교에 들어갔을 때 엄마인 내가 학교 가는 것처럼 준비물 챙기고 시험 준비를 함
게 했다. 주말에 숙제를 시키려고 가방을 열었는데 숙제할 책을 안 가져왔다. 숙제하지 안
으면 불안할 법도 한데 큰 애는 태연하다. 아무렇지 않게 휴일을 뒹굴뒹굴하는 아들을 보면서
다급 해지는 건 엄마다. 아들을 앞세워 학교에 책을 가지러 갔다. 경비 아저씨 말이 교실마다
안전방범 장치 세콤이 달려있어서 못 들어간다고 말했다. 엄마는 발을 동동 굴리며 이 방법 저 방법
궁리를 하는데 아들은 숙제가 남의 일이다.
잘 참다가 집에 들어오는 현관문에서 결국 터졌다. 교과서가 없어 숙제를 못 했는데 아무 걱정없
는 것, 챙기지 않으면 혼자 알아서 하지 못하는 아들에 대한 불만이 한꺼번에 분출됐다.
결국, 혼이 났고 뭘 잘 했는지 심술을 부리면서 밥을 먹지 않겠다고 버티는 아들에게 매를 들고 말았다.
큰 애에게 매를 들면서 내 화가 생각보다 거세고 크다는 걸 알았다. 때리면 때릴수록 화가 났다.
처음엔 아이가 미워서 화가 났는데, " 엄마 잘못했어요. 다음부턴 잘할 게요!" 잘못을 빌지 않는
아들에게 화가 났다. 나중엔 아무리 애를 써도 내 뜻대로 기대대로 되지 않는 좌절감 때문에
내 마음속에서 숨겨진 화가 터져 나왔다. 그날 아이는 정말 나한테 많이 맞았다. 쓰면서 슬프다.
화나게 하는 진짜 이유는 다른 데 있다
분노는 우리 내면의 더 민감한 부분을 보호하기 위한 이차 감정이다. 이차 감정이란 겉
으로 드러난 감정이 화나 분노이지 먼저 생기는 감정은 분노가 아니란 말이다. 분노가 표
출될 때는 화를 내게 한 원인이 있거나, 다른 감정이 있다는 얘기다.
" 공부는 애가 하는 건데 교과서 가져오지 않은 아들 때문에 난 화가 왜 가라앉지 않는 거지? "
순간 화와 분노 밑에 잘 챙겨 보내지 못하면 엄마 노릇을 잘 못한다는 평을 들을까 두려
운 마음, 아이가 잘 못할 때 엄마 자존심이 무척 상했던 기억이 떠올랐다.
아하! 화가 난 마음 밑에는 진짜 이유가 숨겨져 있었다. 자녀가 과제물을 제 때 안 챙기면,
성실함과 책임감 있게 자라지 못할까 봐 걱정이 있었다.
자녀가 잘못하면 엄마 책임이라는 소리를 듣기 싫었다. 자녀를 잘 키우고 싶은 인정의 욕구와
다른 아이보다 못하다는 소릴 듣는 게 자존심 상했다. 이런 복잡한 감정들이 화가 난 1차 감정이었다.
밖으로 표출된 분노는 부모 자신의 정서적, 감정적 욕구와 깊이 연결되어 있다.
자녀의 행동과 말은 화와 분노를 일으키는 자극제 역할을 할 뿐이다. 화나게 하는 진짜
이유는 다른 데 있다. 우리는 "나를 화나게 한 이유가 뭐지?" 물어야 할 때 대부분 분노를 없애는
법을 알아내는데 집중한다.
큰딸이 열 살인데 딸한테 방이랑 거실 치우는 거 좀 도와달라 했더니 " 싫어요, 왜 내
가 해야 돼요?" 했다는 거다. 평소 같으면 " 네, 엄마" 하고 금방 나와서 치우는 아이인
데 싫다고 하니까 욱하고 화가 났다. 또 한 번 밥 먹을 건데 나와서 거실 좀 치워달라 했
더니 딸은 화를 내면서 소리를 질렀다.
" 싫어, 안 해, 엄마는 왜 한번 싫다고 했는데 계속시켜 "
싫다는 소리를 안 듣다가 들으니까 순간 화가 부채질이라도 하듯 머리끝까지 죽 올라왔
다. " 잠깐 나와서 거실 정리 좀 해 달라니까 뭐가 그렇게 힘들어? 응? "
종일 서서 밥하고 간식하고 시장 보고 너희들 챙기느라 잠시도 앉아있을 시간 없는 엄마
도 있는데! 말하면서 냉장고에 붙여둔 딸 시간표가 눈에 들어왔다. 화, 목요일이 학교 수
업이 가장 많고 학교 끝나고 학원 가려면 쉴 틈 없이 바쁜 날이다. 달력을 보니 목요일
이었다. 그러고 보니 학원에서 돌아온 지 30분도 채 안 된 시간이었다. 딸에게 필요했던
건 휴식이었다.
힘들고 피곤해서 꼼짝하기 싫은 날이었다. 딸이 평소와 다르게 엄마에게 반항하는 진짜
이유는 피곤하고 힘들어서였다. 딸이 화와 짜증으로 보내는 1차 감정을 들으려 하자 이해가 됐다.
" 학교에서 수업이 많았구나, 학원까지 다녀와서 엄청나게 피곤하겠어. 힘든 데 엄마가
거실 치우라고 시켜서 화가 났구나... 맞아? " 딸은 " 엄마, 지금 정말 녹초예요. 오늘
숙제도 열나 많아요. 짜증 나는 수학 숙제 때문에 골치가 아프거든요. "
딸이 거실 치우는 거 도와달라 했을 때 짜증 부린 이유를 알고 나니 딸을 향한 분노가
싹 사라졌다. 딸 마음이 이해가 되고 그런 줄 모르고 재촉한 자신이 미안해지는 걸
느꼈다. 부모 자신뿐 아니라 자녀가 진짜 화 난 이유를 아는 길은 화난 감정에 대한
공감이다. 화가 난데는 이유가 있을 거야. 네가 정말 원하는 게 뭐니? 물어본다.
화난 감정으로 표현될 뿐이지 화 속에는 진짜 화난 이유가 숨겨져 있다.
그걸 찾아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