육아서를 덮고 자녀를 바라봐라

분노 처방전/ 아는 것과 느끼는 것의 차이

by 남정하

공감 모임에서 자녀를 키우면서 한 번도 화를 낸 적이 없다는 예지 엄마를 만났다. 큰 아이

예지를 미숙아로 출산해서 남들보다 많은 공을 들여야 했다는 예지 엄마는 아이를 낳고

건강과 안전한 환경에 관심이 많아졌다. 예지가 세 살 되면서부터 TV, 컴퓨터 모두 없애

고 거실에 책을 들여놓았다. 먹거리도 직접 만들여 먹였다. 밥 세 끼뿐 아니라 간식 하나

하나 유기농 재료로 직접 만들여 먹였다. 애쓴 보람이 있어서 예지는 건강하게 초등 3학

년에 다니고 있다. 이제 안심할 만했는데 걱정거리가 생겼다.

예지가 3학년이 되면서 친구들 영향을 받기 시작됐다. 엄마 말이라면 뭐든 “ 알았어요”

하던 예지가 친구들과 문방구에서 불량과자를 사 먹고 오는 걸 알면서부터다. 아무리 예지에게

주의를 주고, 당부해도 소용없었다. 친구들과 함께 먹으라고 간식까지 싸줬지만 먹지 않고 그냥

갖고 오는 날이 많다. 그뿐 아니다. 집에 TV가 없어서 잠깐씩 컴퓨터 검색을 하게 한 후로 부쩍

엄마와 다툼이 생겼다.

“예지야, 숙제 다 했니? 얼른 하고 밥 먹어야지”하면 “알았어요. 금방 끝나요 “ 문을 열어보면

컴퓨터로 사극을 보고 있다. 친구들 사이에 한창 인기 있는 사극이다. 예지는 한 번에 한, 두 편 연이어

보느라 요즘 시간 가는 줄 모른다. 아무리 엄마가 얘기를 해도 넋을 놓고 사극을 본다. 처음엔 그러려니

하다가 슬슬 잔소리가 시작됐고 급기야 컴퓨터 코드를 뽑는 일이 생겼다. 순식간에 일어난 일이었다.

엄마도 놀라 속으로 어쩔 줄 모르고 서 있는데 예지가 벌떡 일어나서 노려보기 시작했다.

그러더니 옆에 있는 벽에 머리를 쾅쾅 부딪히면서 울기 시작했다. 그때 생각만 하면 예지 엄마는 지금도

가슴이 쿵쾅거린다. 얼른 안아서 진정시켰지만 예지가 왜 그런 행동을 했는지 이해할 수 없어 고민이다.



한번도 소리치거나 화 낸 적이 없어요. 육아서대로 했거든요.
도대체 뭐가 문제죠?


예지 엄마 고민을 함께 들으면서 공감 모임에 참여했던 사람들 사이에 잠시 침묵이 흘렀다. 한 번도

화낸 적이 없이 최선을 다해 키웠는데 왜 딸이 그러는지 납득이 가지 않는다는 답답함이 이해가 됐다.

동시에 머리를 벽에 부딪히면서 뭐라고 말하고 있는 예지의 답답함도 느껴졌다.

육아서에 적힌 대로, 부모교육 강의에서 들은 대로 자녀에게 적용하면 실패 없이 자녀를 키울 수 있을까?

육아서를 덮고 자녀의 마음을 들을 수 있어야 한다. 자녀가 부모에게 무엇을 원하고 있는지 말과 행동

이면에 있는 메시지를 들어야 그게 소통이다. 진정한 소통은 육아서에 적혀있지 않다. 자녀 속에서 찾아내

읽어야 한다. 자녀를 느낄 수 있어야 읽을 수 있다.

이런 답답함은 나에게도 있었다. 두 아들을 키우면서, 부모교육 강사로 일하면서 느꼈다.

“부모 자녀 간의 대화법”이란 주제로 강의를 듣고 나면 일주일 길게는 이주일은 편안하다.

“자녀가 이럴 때 이렇게 말해보세요 ”자녀와 갈등 상황에 말하는 방법과 실제 어떻게 말해야

하는지를 알려주는 소통기술은 효과가 있어 집에 오면 유용하게 쓰였다. 말하는 방법을 바꾸면

자녀 반응이 달라진다. 문제는 매번 상황이 달라진다는 데었다.

그러다 보니 매번 벽에 부딪힌다. 뭐라고 말해야 할지 답을 찾아다닌다. 육아서를 읽고 부모교육

강의를 들을 때 어떻게 말해야 할지, 방법에만 관심이 있다.



자녀를 아는 것과 자녀를 느끼는 것의 차이는 뭘까?


자녀와의 소통은 공감능력에 있다. 자녀 얼굴을 보고 말을 하는데, 자녀가 애절하게 말하고 있는데

알아들을 수 없고 아무 느낌이 없다. 자녀가 내 뜻대로 잘 움직이지 않을 때 서점 가서 육아서를

읽으면서 답을 찾으려 했다.

감정을 느끼는 일은 머리로 이해하는 것과 다르다. 몸을 통해 감각을 느낀다고 한다.

눈, 코, 입, 귀, 피부를 통해 감각을 받아들이고 이를 통해 전해진 느낌을 가슴으로 느낀다.

자녀의 마음을 읽고 감정을 느끼는 일은 자녀의 눈빛, 입모양, 얼굴빛, 행동, 말투 등을 몸의 감각을 통해

느낌으로 읽는 걸 말한다. 생각의 영역과 사뭇 다른 영역이다.

잘 느끼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자녀의 느낌, 내 느낌을 느낀다는 게 어떤 걸까?

아는 것과 느끼는 것의 차이는 뭘까? 이런 고민들을 하면서 육아서를 덮었다.

그리고 자연에서 많이 느꼈던 것 같다. 산에 올라 바람에 살랑거리는 소나무를 한 나절 보거나,

바람이 전하는 이야기를 들으면서 강변을 산책하면서 홀가분함과 비워짐을 느꼈다. 자연을 느끼면서

뭔가를 느끼는 느낌이 이런 거구나! 배웠던 것 같다. 자녀와 소통할 때 자연을 느끼면서 익혔던

느낌이 많은 도움이 됐다.

머리로 판단하면서 자녀와 마주 앉아 있는 것이 아니라 내 몸의 감각으로 자녀가 말하고 싶은 걸 느끼는

교류가 중요하다. 육아서를 덮고 자녀 이야기를 자연을 느끼듯 느끼려고 했을 때 아이들과 소통할 수

있었다. 내 말을 멈출 수 있었고, 이 아이에게 어떤 도움이 필요한지 물어보고 대화할 수 있었다.



나도 이렇게 육아서를 쓰고 있지만 책은 방법에 대한 안내일 뿐, 부모의 삶 속에서 자신의 화를 어떻게

보듬어야 할지, 자녀에게 지속적으로 올라오는 화 속에 담긴 메시지가 무엇인지 책 속에 있지 않다.

책 속의 안내를 등불 삼아 자신의 감정을 만나야 한다.

그 여정 속에 부모 자신의 화라는 감정 속에 담긴 수많은 상처와 기대, 힘들었던 기억을 만날 것이다.

그때마다 부모로서 부족하고, 미숙하다고 자신을 비난하지 말고 충분히 화를 보듬으면서

“괜찮아”“화 내도 괜찮고, 좋은 엄마가 아니어도 괜찮아”“ 지금 그대로 애쓰고 있는 그대로 괜찮아 “

다독거려주고 사랑해 주길 바란다. 자녀 감정을 읽어주고, 그 감정에 함께 머무른다는 건 자녀에게

이런 사랑을 주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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