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노 처방전/ 세대가 달라져도 엄마들의 화가 줄어들지 않는 이유
최근 SBS에서 엄마들의 전쟁이란 다큐를 했다. 요즘 젊은 엄마들이 직장 생활하고 육아를
병행하면서 하루를 전쟁하듯 살고 있는 세태를 다룬 다큐였다. 동시에 자녀를 결혼시킨 후 손자 손녀를
키우는 부모세대 이야기도 나왔다. 다큐를 보면서 곰 감 가는 부분이 많았다. 나라면 자식들 다 키워놓고
자식 뒷바라지하느라 손자, 손녀를 다시 키울 수 있을까 고민이 됐다. 발 동동 구르면서 아이 때문에
고생하는 모습을 보면, 무심하기 어려울 것 같다. 그즈음이었다.
날이 차서 집 근처 찜질방에 가게 됐는데 그곳에서 50대 후반, 60대 자식을 결혼시켜 손자
손녀를 키우는 할머니들의 하소연을 듣게 됐다.
" 손자 손녀 절대 안 키워준단 말 하지 말아야 한다. 막상 낳아봐, 봐주게 돼요! 어떻게 나몰라라 해.
나도 절대 안 키워준다고 노래를 불렀는데 그게 아니더라고요!"
저 쪽에서 한 분이 말한다. 딸이 시집갔는데 애 둘 키워줬더니 셋째 아이 또 가졌다. 화가 나서 딸 한데
"네가 키워 이제" 잔소리했더니 삐져서 연락도 없다. 다음 주 둘째 손자 돌인데 가야 하나 말아야 하나
고민이라고 하니까 옆에 있던 분이 " 연락하지 말고 가만있어봐요. 지가 필요하면 전화 올 거예요
깊은 애교 다 떨면서."
그리고는 자기 얘기를 털어놓는다. 친구들이랑 월정사 놀려 가있는데 딸년한테 전화 왔다.
둘째 딸이 유치원에서 넘어져서 다쳤는데 갈 사람이 없어서 전화했다면서 " 엄마! 지금 어디세요?"
다급하게 찾았다. 친구들이랑 멀리 놀러 왔다니까 딸이 하는 말 "엄마는 날도 추운데 집에 가만히
붙어 있지 놀러 다녀요? 그러다 넘어지기라도 하면 누구 고생시키려고 그러세요?" 했다.
그 말을 듣고 한참을 기가 막혀서 말을 못 하였다고 한다. 물론 손녀가 다쳤다니까 급한 마음에 마음에 없는
소리를 한 걸 알지만 그래도 그 말 들으니까 허망해지더란 얘기였다. 잠시 말없이 수화기를 들고 있는데
" 그럼 난 어쩌라고! 애 다쳤다고 유치원에 오라는데 어떡하냐고!" 딸이 소리소리 지르길래
"엄마가 네 종이니? 엄마는 놀 시간도 없고, 놀면 안 되는 사람이니? 그리고 엄마는 안 늙냐" 한소리 했다.
옆에서 요즘은 아들도 도둑놈이다. 집에 와서 오리 조리 살피면 안 줄 수 없다. "엄마, 그때 그 김치찌개
맛있었는 데 있어요?" 하면 어떻게 안 해주냐는 하소연이다. 내 아들이 먹고 싶다는데 어떻게 부모만 먹고
귀찮다고 모른 체 할 수 있느냐는 반문이다. " 에구, 힘들어도 해 줘야죠. 엄마가 만든 김치찌개 먹고 싶다는데
어떻게 해요. 아들 위해 해 주는 거지 며느리 위해 해주는 거 아니에요." 한다.
그렇게 실컷들 하소연을 하더니 모인 어머님들은 결론을 이렇게 맺는다.
" 가만 보면 50,60대 엄마들이 더 문제예요. 애들한테 늙어서 돈 주고, 시간 주고, 손자 봐주고 그러고 힘들다
하니 말이에요. 나이 들어 아프면 자식들한테 짐 될 거 뻔히 알면서도 자식이라면 어쩔 수 없어하잖아요"
듣고 있으니 자식 가진 부모 마음 다 같을 것 같다. 심경적으로 공감이 충분히 갔다.
지새 끼 키운다고 발 동동 굴리면서 사는 걸 보면 부모 입장에서 어떻게 안 도와줄 수 있을까?
좋은 부모가 되고 싶고, 자식들한테 내가 희생하더라도 사랑을 주고 싶은 마음이 끝이 있을까 싶다.
나도 부모지만 자식 된 입장에서 헌신적이고 희생적인 부모님을 보고 " 부모님 좋아서 하시는 일이지 뭐.
저렇게 사시는 게 부모들 행복 이지 뭐 " 철없이 부모들의 자식사랑을 이렇게 생각했다.
자녀에 대해 기대를 줄이려면 거절할 줄 알아야 한다. 스트레스는 흔히 우리가 한계를 정할 줄
몰라서 생긴다. 좋은 부모는 뭐든지 헌신적으로 해주는 부모가 아니다. 자녀를 키우면서 어릴 때부터 관계에 선을 잘 긋고, 부모가 할 수 있는 일을 적극적으로 서포트한다면 화, 분노가 몰라보게 줄어들 것이다.
스스로 자기 일을 알아서 하는 주도적인 자녀가 되는 건 자연스럽게 따라오는 선물이다.
자녀에 대한 기대를 줄이고, 엄마가 할 수 있는 만큼 도와주고 적정선에서 거절하는 용기가 필요하다.
" 엄마가 지금 힘들어 " 네가 알아서 했으면 좋겠어! 엄마가 도와주고 싶지만 저녁 준비하고 내일 나갈
일 챙겨야 하거든. 네가 하다가 어려워서 엄마 도움이 필요할 때 얘기해줘"
이렇게 말하면 자녀는 거절로 듣지 않고 부탁으로 듣게 된다. 엄마 입장을 배려해 주고 싶은 마음이 생긴다.
부모 입장에서도 자녀에 대한 마음속 분노가 줄어들 것이다. 자녀가 늦을까 봐, 혼날까 봐, 성적이 떨어질까
봐 부모가 챙기지만 결국은 엄마 자신이 불안하기 때문에 마음이 편하기 위해서 챙기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