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노 처방전/ 결국 문제는 기대, 기대대로 된다면 계속 기대해라
바지런하게 움직이길 귀찮아해서 집을 나설 때 최대한 동선을 고민한다.
" 어떻게 하면 나가는 길에 볼일을 보고올까?" 나가는 길에 볼 일도 보고 사람도 만나고 시장까지 보고 오려면 어디를 먼저 들렀다 오는 게 좋을까?" 나에게 효율성은 적은 시간 동안 최대한 많은 일을 해결하기이다.
출발 전 계획한 대로 무사히 일정을 마친 날은 만족감이 든다. 괜히 뿌듯하다. 생각대로, 기대대로 일을 마친 기쁨이 있다. 한데 일을 마치고 돌아오는 길에 버스가 늦게 온 날은 화가 난다. 어떨 땐 벼르고 벼르다 은행업무 보러 갔는데 주민등록증을 가져와야 한다고 하거나, 본인이 직접 와야 처리할 수 있다고 원칙을 말하면 짜증이 막 난다. 은행 행정이 까다롭다고 은행원에게 화풀이를 할 때도 있다. 규정상 갖추어야 할 서류를 요청한 것뿐인데, 오늘 처리하려 했던 일정에 대한 기대가 무너지면 화가 난다. 다시 발걸음을 해야 하는 귀찮음도 한 몫한다. 미리 전화해보고 올걸 후회가 들지만 그것보다 은행에서 제시하는 원칙이 무조건 짜증 난다.
가만 생각해 보면 아무 일도 아닌데, 나를 만족시키고 싶어 하는 효율성과 기대에 매번 걸려 넘어진다.
자녀에게도 마찬가지다. 저녁 차리는 잠깐 시간 동안 숙제를 하지 않고 TV를 보는 아이를 보면 화가 난다.
늘 하는 숙제니까 저녁 차리는 동안 잠깐 하면, 밥 같이 먹고 씻고 과일 먹으면서 맘 편하게 쉴 수 있을 텐데 하는 기대가 있으면 자녀에게 화가 난다. 자녀에게 거는 기대는 " 당연히 해야 한다"는 당연시하는 생각과 더해져
습관적인 화로 이어진다.
하루는 이런 나에게 지인 하나가 말한다. 행복해 지기 위해서는 " 매일매일 해야 할 일은 늘 자신이 할 수 있는 양보다 많다. 우리는 하루에 해야 할 일을 꽉꽉 채운다. 날마다 계획을 세우고 하지 못한 일로 후회한다. 여유를 가져라! 뭔가를 해야 한다는 부담감이 화로 돌아온다. 하루를 시작할 때 할 일을 반으로 줄이라" 고 권한다.
우린 날마다 비현실적인 기대를 설정하고 기대에 못 미치면 실망하고 좌절한다.
자녀를 키우면서 날마다 해야 할 일이 너무나 많다. 밥 세끼 챙기는 일이 만만치 않은데 간식에다 자녀 학원
챙기고 공부 돌봐주고 자녀 둘, 셋 뒤치다꺼리하고 나면 하루해가 후딱 지나간다. 표도 나지 않는 집안 일과
잠시만 손 놓으면 엉망이 되어버리는 자녀 돌보기이다. 해도 해도 끝이 없다.
스스로 알아서 해 줬으면 얼마나 좋으련만 입에 닳도록 잔소리를 하다 꼭 화를 내야 움직인다.
엄마들은 자녀에 대한 기대를 내려놓아야 행복해진다고들 하는데, 더 이상 내려놓을 기대가 어디 있냐고 한숨을 쉰다.
후배 중에 나이가 40대 후반인데 자녀 셋에 큰 아이, 작은 아이 연령 생이고 막내가 이제 막 초등학교 입학한
학부모가 있다. 여행 좋아해 바람처럼 사는 걸 좋아했던 후배는 30대 후반이큰 아이를 중국에서 4살까지 키우고 한국에 들어왔는데 한국어를 제대로 못해 언어능력이 뒤쳐져 초등학교
를 보내고부터 마음고생을 했다. 늦은 나이에 연령 생 둘, 유치원 다니는 막내를 안고 키우느라 고생하는 후배는 집에서 잠시도 바닥에 앉을 여유가 없다. 집안 청결에 유달리 예민한 탓에 걸레를 손에 들고 다닌다. 아이들밖에 나갔다 들어오면 손, 발 닦고 간식 챙기고 다시 나갔다 들어오면 씻기는 일로 하루가 다 간다.
말이 느리고 행동이 굼뜬 큰 아이에게 잘 해야 하면서도 늘 짜증 난 말투에 화가 섞인 대화가 오갈 수밖에 없다. 주눅 들어 있는 아이를 보면 또 화가 난다. 아이 잘 키우기 위해 깨끗한 환경과 안전에 신경을 쓰는데 늘 전전긍긍 불안하다. 밖에서 논다던 애들 소리가 안 들리면 가슴이 철렁 내려앉는다.
이런 후배가 요즘은 아이들 방학하면 제주도 한 달 살이, 필리핀에서 방학 보내기, 동해안에서 3주 살기를
한다. 아이들 데리고 여행을 다닌다. 그렇게 하고 싶던 여행을 혼자가 아니라 애 셋이랑 다닌다. 그리고 마음의
여유를 되찾고 잔소리도 줄었다. 집안에 무신경하다고 이혼하고 싶다는 말을 달고 살더니 요즘은 행복하다고
말한다. 남편에 바라는 기대, 자녀에게 바라는 기대 대신 후배가 하고 싶던 여행을 하기 시작하면서 생긴 변화
다.
큰 아이를 초등학교 보내 놓고 난 자녀에게 기대하는 게 하나도 없다고 생각했다. 나만큼 자식에게 기대
안 하고 하고 싶은 대로 하도록 맘껏 응원해주는 부모가 어디 있는지 나와 보라고 큰소리쳤다.
큰 아이가 3학년 때이다. 담임선생님이 인성교육을 강조하는 인자하신 분이셨다. 아들이 준비물을 챙겨가지
않아서 학교에 가져다준 적이 있다. 슬쩍 건네주고 오려했는데 복도에서 눈이 마주쳤다. 인사를 하자
"재원이 어머님이시군요. 안 그래도 뵙고 싶었는데 잘 됐네요. 재원이 잘 하고 있어요. 걱정하지
마시고 그냥 잘 할 거라 믿어주시고, 잘 한다 잘 한다. 그 말만 해 주세요" 하셨다. 큰 아이가 학습에
부담을 느끼고 엄마 반응에 신경을 많이 쓴다는 얘기였다. 담임을 만나고 돌아오는 내내 그 말이 계속 떠올랐다. 부끄럽고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엄마인 나만 내 모습을 볼 수 없었던 거다. 공부하란 말만 하지 않았지 온통
나의 모든 신경과 관심이 큰 아이에게 가 있었다. 그게 얼마나 큰 기대인지 몰랐다.
그래서 그랬는지, 자녀에게 기대를 줄이란 말이 왜 그렇게 듣기 싫고 힘들었는지 모르겠다. 자녀에게 기대를 줄이란 말이 엄마인 나에게 '욕심을 조절할 줄 모르는 사람'이란 비난으로 들렸다. 부모 자격이 없다는 소리로 들리기도 했다. 어떤 말도 '기승전 부모 잘못'으로 들렸던 미숙한 부모였다.
아이에 대한 기대는 ' 부모 노릇에 대한 기대'를 나에게서 줄이면서 조금씩 줄여졌다. 신기하게도 내가 가진 효율성의 척도를 여유 있게 가지면서 아이에 대한 기대에 목숨 걸지 않게 됐다. 누구나 기대대로 행동하지 않는다. 다 크도록 누구의 기대대로 산다면 그건 잘못된 삶이다. 자녀가 자신의 삶을 살도록 해야 하고 나에게도 '부모의 삶'만 있는 게 아니라 '나의 삶'이 있다는 걸 홀연히 깨우치면서 자녀에 대한 기대를 줄일 수 있었다.
하지만 그러기까지 시간이 참 많이 흘러야 했다.
서두를 때는 길가에 피어나는 꽃을 보지 못한다.
서두를 때는 짜증 나게 하는 운전자가 훨씬 많이 보인다.
서두를 때는 주변 사람들에게 친절하게 말을 건네지 않는다.
서두를 때는 시간과 에너지가 들어가는 사람과 장소와 일은 피한다.
서두를 때는 슈퍼 계산대 앞에서 카트에 물건이 가득하고, 바로 뒤 사람의 물건은 몇 개 안돼도
그 사람을 못 본척한다.
사두를 때는 심장이 두근거리고 근육이 굳어지고 생각이 급해진다.
서두를 때는 온종일 아이들을 급하게 끌고 다닌다.
서두를 때는 사람들에게 어떻게 지내느냐고 묻지 않는다.
서두를 때는 경건의 시간이 기쁨이 아니라 일이 된다.
서두를 때는 더 쉽게, 더 자주 화가 난다
서두르지 않을 때는 음식을 더 음미하게 된다.
서두르지 않을 때는 더 많이 웃고 더 차분해진다.
서두르지 않을 때는 삶이 더 즐겁고, 스트레스가 적어 보인다.
서두르지 않을 때는 다른 사람들과 그들의 근황에 대해 묻는다.
서두르지 않을 때는 기도 시간이 더 의미 있어진다.
서두르지 않을 때는 남에게 더 잘해주고 배려하며 친절해진다.
서두르지 않을 때는 더 참을성이 생기고 상대방을 사랑하고 이해하며 용납하게 된다.
서두르지 않을 대는 더 창의적이고 자연스럽고 행복하다.
서두르지 않을 때는 웬만한 사소한 일에는 크게 신경 쓰지 않는다.
서두르지 않을 때는 화가 자주 나지 않는다.
분노 컨트롤 디모데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