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나를 위해 말해야 하는 이유/ 관계를 살리는 자기표현
우리는 살아가면서 좋아하는 것을 좋아한다고 말하고, 싫어하는 것을 싫어한다고 말하고 살 때 자유롭다.
자신이 느낀 그대로 이야기할 수만 있어도 편안하고 자유로와 진다. 자기표현의 핵심은 자기 보호를 위한 방어적인 표현이 아니라 자신의 생각, 감정, 욕구를 솔직하게 표현하는 것을 말한다, 친밀하게 서로 믿고 의지할 수 있는 좋은 관계는 불편하거나 내키지 않을 때, 상대가 힘들게 불안이나 곤란함을 느끼지 않고 이야기할 수 있는 관계다. 무슨 말을 해도 받아들여질 거라고 느낄 때 상대에게 믿음과 안전함이 생긴다. 일로 만난 인간관계가
힘든 이유가 여기 있다. 서로 불편해지지 않기 위해서는 자신을 숨기고 상대에게 맞추거나 자신의 뜻대로 해서 신경 쓰지 않거나 두 가지 중 하나의 방식으로 살아간다. 상대를 신경 쓰느라 에너지를 소진하기보다 혼자
일을 감당하는 게 오히려 편하다.
흔히 ‘솔직하게 말한다’고 할 때 솔직함에 대한 오해가 있다. 솔직하게 표현하라고 하면 듣는 사람들이 “ 에이, 말은 그렇게 하지만 솔직하게 말한 뒷감당은 결국 각자 해야 하는 거 아니에요? ” 한다. 표현해서 오히려
말하지 않은 것만 못한 결과로 이어지는 경우가 많다. 영어에는 솔직하다는 뜻의 단어가 있는데 그중 frank
프랭크와 honest 어니스트가 대표적이다. 둘 다 솔직함을 뜻하지만 의미는 다르다, 프랭크는 그야말로 자신의 불편함을 있는 그대로 말하는 것이다. 상대에게 상처를 줄 수 있고, 관계를 불편하게 만들 수 있다.
honest는 자신의 감정과 욕구를 잘 알고 관계를 불편하게 하지 않도록 잘 생각해서 상대가 기분 나쁘지 않도록 표현한다. honest 하게 자신의 마음을 표현하는 방법이 곧 핵심이다. 솔직함 자체를 말하는 것이 위험한 게 아니라 불편한 감정을 어떻게 표현하느냐가 중요하다. 화 자체를 내서 안 되는 게 아니라 화가 날 때 무엇 때문에 화가 났는지, 그 일로 어떤지, 뭘 원하는지를 상대에게 표현하는 방식이 중요하다. 상대가 기분이 상하거나 상처를 받는 것은 표현하는 방식이 서툴러서다. 그에 비해 어니스트는 상대의 기분을 고려한 부드러운 솔직함이다. 상대 기분을 감안해서 솔직하게 이야기했더라도 상대는 불편할 수 있다. 이것 때문에 표현하기 꺼려지고 두렵다. 최대한 말할 때 상대를 배려해서 말하지만 상대 기분까지 책임질 수 없다. 솔직한 자기표현을 할 때는 상대를 비난하거나 탓하려는 게 아니라 그 일로 인해 내가 그때 어땠는지 마음과 상황을 표현하는 것이 중요하다.
상대방의 이해를 받아야겠다는 마음으로 말한다면 말하면서 상대와 갈등이 생기거나 실망하기 쉽다.
자기표현을 하는 이유는 1차로 내가 자유롭기 위해 말한다. 내가 그 감정이나 생각, 그로 인해 생긴 판단,
오해로부터 편안해지고 싶어서 표현한다. 그래서 온전히 자신이 어떤지에 머무르면서 표현한다. 비폭력대화에서 솔직한 표현은 온전히 자신의 생각, 느낌, 욕구에 집중해서 말할 때 자기 자신을 지금보다 훨씬 잘 존중하고 상대도 배려하는 소통방식이라고 한다.
철학하는 여자가 강하다(저자 레베카 라인하르트)에 현대 여성을 개미와 파블 로브의 개에 비유해서 쓰고 있다. 파블로프 개는 종소리를 듣자마자 음식을 떠올려 반응하는 것처럼 여성들은 누군가 말하면 하던 일을 멈추고 "네'라고 대답한다. 여성들이 흔히 갖고 있는 신념 중 하나가 " 내가 네라고 해야만 만사가 풀린다"이다.
여성들은 갈등이 생길까 봐, 문제가 복잡해질까 봐, 먼저 참고 그냥 하고 만다. 알아서 미리 해결함으로써 부부관계, 엄마 역할, 딸 역할, 며느리 역할, 직장에서 충성을 다 한다. 다르게 반응하는 방식은 이기적이거나
여성스럽지 못하다고 생각하면서 조건 반사적으로 yes를 한다. 거절을 하느니 차라리 묵묵히 남의 일까지
다 해버린다. 갈등이 생길까 봐, 문제가 복잡해질까 봐, 상대가 싫어할까 봐, 관계가 멀어질까 봐 마음을 숨기고 상대에게 맞추는 습관은 당장 좋은 관계가 유지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불편해진다.
‘ 철학하는 여자는 강하다 ’을 읽으면서 다행스러우면서 슬펐다. 특히 유교문화가 강한 동양권 우리나라에서 겪는 여성들의 자기표현 문제라고 생각했는데 지구촌 현대 여성들이 일반적으로 겪고 있는 어려움이라는 글을 읽고 마음이 아팠다. 나만의 문제가 아닌데 개인의 문제라고 생각해 자신을 비난하고 자책하면서 가족을 위해, 소속한 공동체를 위해 “네”라고 해야 만사가 편안한 여성들을 위해 이 책을 쓴다. 정신과 의사 문요한의 책 ‘관계를 읽는 시간’에 이렇게 쓰고 있다. 관계와 집단 안에서 자기표현을 솔직하게 하지 못하는 것은 단지 개인의 특성만은 아니다. 개인의 개별성을 존중하지 않는 집단주의와 권위주의 사회에서 솔직함은 잘난 척이나 이기적인 모습으로 오해받기 쉽다. 특히 냉전이나 군사독재 시절을 거친 우리나라에서 자신의 생각을 솔직히 이야기하는 것은 위험한 일이다. 그냥 조용히 있는 것이 무난한 처세술로 꼽힌다. 자기표현의 문제는 자신의 삶에 대한
자기 결정권, 자신에 대한 존엄성, 자기 존중, 자신의 삶에 주인이 되는 선택, 주도권과 관련된 중요한 권리이다. 아이를 다 키우고 중년을 맞고 나니 내 나이 중년의 시기가 무척 중요하다는 걸 느낀다. 중년기 나에 대한 정체성 회복은 자녀의 결혼 여부, 남편의 은퇴와 맞물려 중요한 의미를 가진다. 우물쭈물하다 노년을 맞게 된다. 자신이라는 사람이 누군지 진정 원하는 삶이 뭔지 살아보기 전에 다시 아이들이 결혼해 손자 손녀 봐주고 자녀 뒷바라지하다 시부모님 병구완에 남편 은퇴 후 다시 발목이 잡힐 수 있다. 여성들에게 자기표현의 문제가 중요한 이유는 여성이 가정의 중심이기 때문이다. 중년의 여성에게 자기표현을 통해 자기 존중과 자기 사랑을 찾고 만나는 일은 가정뿐 아니라 사회변화에 큰 의미를 갖는다고 생각한다. 여성이 자신을 회복해야 가정의 모든 구성원들이 자기 자신으로 깨어날 수 있다. 아들을 가진 부모라면 시어머니가 자기 존중과 자기 사랑을 회복해야 며느리와 여성으로 연대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내 마음조차 모르는데 어떻게 다른 사람 말을 알까. 상대에게 내가 원하는 것을 구체적으로 이야기하는 것은
상대에 대한 배려이며, 관계를 건강하게 만들어 가는 토대가 된다. 중요한 것은 문제가 아니라 원하는 것에 초점을 맞춰 이야기하라, 결혼한 지 얼마 되지 않았는데 시어머니가 계속 찾아와 살림을 가르치려 한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 표현해야 한다. 당신이 표현하지 않는 이상 상황은 달라지지 않는다. 불편함을 감수해야 하고 감수할지 말지는 당신 몫이다. 당신이 적절하게 표현한다면 불편함은 당신이 염려하는 것보다 심각하지 않을 수 있다. 일시적으로 불편하겠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회복할 수 있는 문제이다. 상대를 통제하거나 바꾸려고 초점을 맞추어서는 안 된다. 중요한 것은 원하는 것에 초점을 둔다. 어머니 저희 살림에 신경 쓰지 않으셨으면 좋겠어요. 가 아니라 " 어머니가 자꾸 와서 뭐라 하시니까 힘들어요"는 더더욱 아니다. " 어머니 저는 결혼 전부터 살림은 꼭 제 스타일에 맞춰해보고 싶었어요. 부족한 게 많지만 제 방식대로 해보고 싶어요" 한동안 기분 나쁠 수 있지만 시간이 지나면 " 쟤는 저렇구나!" 하고 받아들인다. 물론 원하는 것을 이야기한다고 해서 상대방이 덜컥
받아주지 않는다. 무시하거나 공격할 수 있다. 감수해야 한다. 상대의 감정이 격해진 것은 당신이 솔직하게
자기표현을 했기 때문이 아니라 상대가 타인을 존중하지 못하고 자기감정을 조절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 감정을 다시 원상태로 바꿔줄 책임이 당신에게 이다고 느낀다면 당신의 바운더리는 똑같은 상태에 머무를 수밖에 없다. 상대를 비난하거나 도발해서 안된다, 당신이 할 일은 시시비비를 가리는 것이 아니라 당신의
욕구를 표현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