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나를 위해 말해야 하는 이유/ 관계를 살리는 자기표현
한 워크숍에서 만난 분 이야기다. 남편이 사업해서 출퇴근 시간이 자유롭다. 술 먹고 들어온 날은 느지막하게 일어나 출근을 해서 남편 출근시키느라 약속을 마음대로 잡을 수 없다. 어느 날은 점심을 집에 와서 먹겠다고 해서 부랴부랴 들어야 점심 준비를 했다. 은행일이며 잡다한 업무 처리를 전화로 부탁하면 그때마다 들어주는 착한 아내였다. 아이들이 사춘기가 되니 챙겨야 할 일은 줄었지만 신경을 써야 하는 일이 더 많아졌다. 바지런히 움직이지만 언제나 할 일은 쌓여있고 남편은 이런 나를 당연하게 생각한다. 남편과 아이들 챙기면서 즐겁고 행복했다. 알뜰하게 먹이고 입히고 살림하는 즐거움과 보람이 있었다. 힘들었다면 그렇게 하지 못했을 거다. 한데 어느 날부터 모든 게 귀찮아졌다. 사소한 일 하나도 스스로 하지 않고 “ 엄마 ”부터 부르는 아이들뿐 아니라 수시로 전화 와서 챙길 일을 당부하는 남편이 귀찮고 짜증이 난다. 할 일 있으면 미리 이야기하든지, 꼭 마감 닥쳐서 전화로 “ 아 참, 그거 잊어버렸네. 당신이 가서 좀 처리해 줘” 한다. 그 말을 들으면 짜증이 나고 화가 나서 참을 수 없다. 집에 있기 싫고 전화도 받기 싫다. 평소보다 짜증과 화가 늘어난 자신을 보고 남편은 왜 그러냐고 도대체 이해가 안 간다고 하면서 예전의 착한 와이프로 돌아오라고 한다. 모든 일이 허망하고 이런 자신이 스스로도 이해가 안 간다. 그렇게 열심히 살아왔는데 난 뭔가? 하는 생각이 들어 허탈하고 허망하다. “ 이런 제가 문제인가요? ”
아이들 다 키우고 나서 고민 이야기를 들어보면 대체로 시댁과 남편 일이다. 아이들이 좀 커서 편안해질 만하다 싶으면 남편과의 관계가 자리 잡는다. 남편 일은 주로 시댁과의 갈등과 연결되어 있는 경우가 많다. 결혼을 해도 안 해도 평생 갈등과 고민이 끊길 날이 없구나 싶어서 웃게 된다. “ 이럴 거면 왜 결혼했어? ” 이럴 거면 왜 결혼하고 사는지 답을 찾아야 노년이 행복할 것 같다. 이 집 남편은 주변 사람들 말에 따르면 정말 나무랄 때가 하나 없는 남편이다. 밖에 나가면 모두가 환영하고 다른 사람 일을 내 일처럼 걱정해 주고 관심 가져 준다. 성격이 좋아서 남 돕는 일을 즐긴다. 누구라도 챙겨주고 싶어 하고 도움이 필요하면 달려가서 돕는 사람이라 주변의 칭찬이 자자하다. 이런 남편이 집에서는 꼼짝하지 않는다. 남에게 백번 잘해주면 뭐 하냐고 잔소리를 하지만 소용없다. 집 계약할 때 차 살 때 모두 아내가 꼼꼼히 알아보고 물어본 후 결정했다. 어떻게 할까 물으면 마음대로 하고 싶은 대로 하라고 말한다. 남 챙겨주고 돕길 좋아하는 남편은 시댁 일이라면 누구보다 앞장선다. 동생들 결혼할 때 시댁 대 소사에 아내 몰래 금전적으로 도운 일이 많다. 아내에게 의논해 주길 바라는데 물어보지 않고 혼자 결정한다. 다른 사람과 잘 지내기 위해 누구보다 애쓰는 아내는 남편이 의논해 준다면 언제라도 흔쾌히 동의할 의사가 있는데 말이다. 이제 아이들 다 크고 살림할 일도 줄어들었다. 언제부터인지 모르게 남편이 너무 밉다. 남편은 자기 살고 싶은 대로 마음껏 사는데 자신만 힘들게 사는 것 같다. 모든 것이 남편 때문이라는 생각이 들면서 혼자 조용히 사라지고 싶다. 이혼해서 혼자 살고 싶다는 생각을 한지 오래다. 다른 사람에게 그렇게 잘하면서 집에서는 자신 혼자 동동거리면서 아이들 돌보고 집안 살림하는 것 같아 외롭다. 이젠 남편에게 의지해서 위로받고 돌봄 받고 싶다. 사소한 것을 결정할 때 남편과 의논하고 남편도 의견을 듣는 기대로 의지할 상대가 되어 주길 바란다. 그 말을 듣고 “ 많이 외로우세요? ” 묻자 한참 자신의 감정에 머물더니 “ 네 많이 외로워요. 마음이 텅 빈 것 같고 어떻게 살아야 할지 막막하고 두려워요 ” 이제는 가족을 돌보는 엄마, 아내로 살고 싶지 않은데 그럼 어떻게 살고 싶은지라는 질문에 답을 할 수 없어 힘들다. 자녀들이 성장하고 집안일이 줄어들자 더 마음이 텅 비어서 뭘 어떻게 하고 살아야 할지 모르겠다. 여전히 자신에게 돌봄을 원하는 가족들이 귀찮고 밉다. 그래서 우울하다. 모르나 상황까지 겹쳐 한 발짝을 내디딜 힘이 없다. “ 그런 상황에서 자신이 원하는 게 뭘까요? ” 물었다. “ 나를 표현하면서 사는 거요. 내가 생각하고 느끼는 그대로 표현하고 살면 자유로울 것 같아요 ” 가족들을 위해 자신의 느낌과 욕구를 억누르거나 보지 않으면서 돌봄을 위해 헌신한 자신에 대한 답답함으로 전해졌다. “ 저 자신으로 살고 싶어요. 나답다는 말 있죠? 나답게 살고 싶어요 ” “ 부정적인 감정이 들 때 그 감정에 휘둘리지 않고 평화롭고 안정적인 나로 살고 싶어요. 그럴 때 살아있다는 느낌이 들고 남편이 어떤 말과 행동을 해도 영향을 받지 않고 살 것 같아요. 아! 그러고 보니 남편 때문에 힘든 게 아니네요. 제가 나답게 제 자신으로 살 수 없어서 힘든 거네요. ” 하면서 말끝을 흐린다. 그러면서 자신으로 나답게 살고 싶다는 바람이 이기적으로 느껴져서 제대로 잘 살고 있는 건지 모르겠다고 덧붙인다. “ 제가 제 자신으로 살아도 되는지 모르겠고 혼란스러워요. 제가 뭘 원하는지 몰라서 더 혼란스러워요, 이런 고민해도 괜찮은가요?”
우리는 내가 이렇게 말하면 다른 사람과 단절될지 모른다는 두려움에서 입을 다문다. 두려움 때문에 말하지 못하는데 오히려 말하지 못해 분리, 분노, 수치심, 두려움, 비난의 원인이 된다. 그런데 이런 것들보다 훨씬 고통스럽고 혼란스러운 단절이 바라 ‘자기 자신으로부터의 단절’이다. 남들이 어떻게 생각하는가에 휘둘리고 다른 사람의 기대와 욕구에 맞춰 살다 보면 ‘자기’라는 존재를 잃어버린다. 나라는 존재인 ‘ 진짜 나 ’를 잃어버리면 삶이 우울하다. 어떤 선택을 할 때 의무나 책임, 자신이 맡은 역할을 다하기 위해 하게 된다. 결혼해서 오랫동안 자녀를 돌보는 엄마 역할, 남편을 돌보는 아내 역할로 살 때 ‘ 자기 자신으로부터 단절’을 경험한다. 자신의 느낌과 욕구로 살기보다 다른 사람을 기쁘고 행복하기 위해 살게 된 대가를 자신과의 단절로 돌려받는다. 수치심 권하는 사회 ( 브레네 브라운 저자 )에서 우리는 ‘진짜 나’로 살고 싶어 한다. 반쪽짜리 진실, 솔직하지 않은 관계, 두려움 때문에 입을 다물기를 원하지 않는다. 누구나 자신이 누구이며 무엇을 믿는지 정확이 알고 싶어 하고 남들에게 당당하게 말할 수 있기를 바란다. 그 말을 통해 ‘내가 나인 것을 편하게 느끼고 싶다’ 자신으로 살고 싶은 첫걸음이 바로 자신의 느낌과 욕구를 말할 수 있는 자기표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