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기표현, 개인 문제만은 아니다

내가 나를 위해 말해야 하는 이유/ 관계를 살리는 자기표현

by 남정하


최근 '자기표현이 어려운 이들에게 '란 제목으로 페이스 북에 글을 올린 문요한 선생님( 정신과 의사) 글을 읽고 잠시 불편했다. 글 내용은 이렇다. " 놀랍게도 상담을 하다 보면 성인임에도 불구하고 자신이 싫은 것은

싫다고 하고, 하고 싶지 않은 것을 하고 싶지 않다고 이야기할 수 있는 자기 결정권이 자신에게 있다는 것을

모르는 이들이 너무 많다." 자극이 된 말은 " 놀랍게도 "란 표현이다. 읽으면서 " 그게 그렇게 놀랄 일이구나, 성인이라면 누구나 삶의 자기 결정권이 자신에게 분명히 있고 싫은 것은 싫다고 하고, 하고 싶지 않은 것을

하고 싶지 않다고 이야기하는 사람이 대부분인가 보다. 와~ 근데 난 자기 결정권이 나에게 있고, 싫으면

싫다고 언제든지 이야기할 권리가 나에게 있다는 걸 인식하고 표현하는데 오랜 시간이 걸렸다. 난 뭘 하고

살아온 거지?" 자기 비난, 수치심, 허탈함이 밀려왔다. " 놀랍게도 "란 표현을 나에 대한 평가로 받아들였던 것 같다. 돌아서면서 이런 순간적인 반응이 바로 자존감 낮은 행동이구나 알아차렸다. 사실 자기표현에

대해 오랫동안 고민하면서 이 문제가 오롯이 나만의 문제인가 생각한 적이 많다. 분명 자기표현은 친정엄마에게서 대물림된 부분이 많다. 가족을 위해 헌신하고 희생하신 시어머니는 무슨 일이든 혼자 하고 말지 하다가

건강을 잃으셨다. 자기표현이 자기 결정권이 자신에게 있다는 걸 알고 있으면서도 하고 싶지 않은 것을 하고

싶지 않다고 말할 때 말이 나오지 않는 경험이 있는지 묻고 싶다.






" 화를 내는 사람은 미성숙하다. 화내는 엄마는 자녀를 망친다." 아이를 키우면서 이런 말을 들을 때 정말

힘들었다. 아이를 잘못 키울까 봐 너무나 두려웠다. 내가 부족하고 모자라서 아이를 잘못 키울지 모른다는

두려움, 죄책감은 대한민국 엄마들이라면 누구나 겪는 일이다. 육아서는 그렇게 엄마의 역할을 규정하고 수치심과 죄책감을 불러일으킨다. 화는 자연스러운 감정이다. 아이를 키우는 젊은 엄마들의 화는 대부분 엄마 자신을 잘 돌보지 못해 생기는 화인 경우가 많다. 그래서 억울했다. 엄마 자신을 잘 돌볼 수 있고 가족들이 육아를

분담하고 도와준다면 왜 화가 나겠는가 말이다. 그래서 화에 대해 탐색하고 공부하기 시작했다.

화내는 이유를 물어봐 주지 않고 화내는 자체를 잘못이라고 비난하는 오해를 풀고 싶었다. 일반적인 인식에

대한 ' 억울함 ' 이 나에 대한 존중의 길을 찾아 나서게 된 동기다. 아이를 다 키우고 나서 자존감의 문제든

존중에 대한 문제든 이렇게 정리하기로 마음먹었다. 내 문제이기도 하지만 내 문제는 나의 부모 또한 힘든

문제였고 개인뿐 아니라 동시대 사회를 사는 사람 모두 힘들어하는 문제이다. 개인 문제라고만 단정할 수 없다. 그 사람이 그런데는 분명 이유가 있고 그 이유에는 가족의 뿌리가 있다. 특히 성장과 발전, 효율과 성취가 강조되었던 시대를 통과해 살아온 사람들은 가족을 위해 자신을 희생하고, 공동체를 위해 개인이 헌신하였으며

국가를 위해 나보다 우리를 위해 살아야 했음을 탐색의 과정에서 확인했다. 결정적으로 가장 중요한 개인,

나라고 하는 사람이 비어있다. 우리 문화는 나에게 싫은 지 좋은지, 하고 싶은지 하기 싫은지 묻지 않았다.

나에게 내가 원하는 삶을 선택할 자기 결정권이 전적으로 있다고 말해준 사람이 없다. 내가 살아온 동안의 경험은 이렇다. 이걸 개인의 문제처럼 말할 때 예민해진다. 마음이 불편해진다. 이 불편함을 지극히 내 개인적인 나만의 감정이라고 이해하고 싶다.





이런 내 불편함은 문요한 선생님의 "관계를 읽는 시간"을 읽으면서 풀어졌다.

“ 유독 우리나라에 자존감 낮은 사람들이 많은 이유는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 사회가 성숙하지 못해서이다.

정말 필요한 것은 개인의 자존감이 아니라 인간에 대한 존중이다. 인간 더 나아가 생명이 존중되는 사회에서만 제대로 된 존중과 자신에 대한 존엄성을 유지할 수 있다. 날마다 쉼 쉬고 살아가는 사회가 괜찮은 곳이라는

느낌이 없다면 괜찮은 사람이라는 자존감도 취약할 수밖에 없다.” 이 글을 읽으면서 가벼워졌다.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 사회가 성숙하지 못해서란 말을 듣고서야 억울함이 사라진다. 마음이 돌보아지지 못한 책임은 개인이 미성숙해서 가 아니다. 우리는 마음을 어떻게 돌보고 자신의 감정을 표현해야 하는지 모른다. 나만 모르는 게

아니라 우리 모두 모른다. 사회가 함께 성숙해가야 할 문제이다. 표현문화도 마찬가지이다. 이제 여기서

시작하려고 한다. 자기표현을 통한 자기 결정권을 회복하려고 노력하는 동안 사람을 바라보는 관점, 다른 사람을 어떻게 이해해야 하는지,, 상대를 위로하는 따뜻한 말에 대해 배우게 됐다. 지극히 개인적인 억울함을 풀기 위해 출발한 여정이었는데 나 자신에 대한 회복과 함께 사람에 대한 연민, 따뜻함, 있는 그대로 수용하는 법을 배우게 됐다. 자기표현에 관한 글은 여기서 출발한다. 각자 자신의 삶에서 자신에 대한 존중과 자신에 대한

존엄성을 회복하고 자기 결정권을 가지고 가장 자기답게 살아갈 권리를 가질 수 있도록 자기를 표현한다.

이제 그럴 때가 됐다. 개인의 노력과 함께 사회 전체가 인간에 대한 존중으로 성숙할 수 있도록 발전해가야 한다. 앞으로는 자기표현의 시대가 될 것이기 때문이다. 개인이 전체보다 소중한 시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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