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니까 A가 먼저 잘못한 거야

by 진진

2만원쯤 주고 산 전자 체중계에 숫자가 사라졌다. 잠시 서있으면 숫자가 정신없이 올라가다가 갑자기 멈추고는 'ERR' 이라고 표시된다. 에러라는 뜻이겠지. 에라이.


"왜 그래?"


체중계 앞을 왔다가 갔다 하는 나에게 A가 물었다. A는 쇼파에 앉아 리모컨을 움직였다. 시선은 TV에 고정된 채였다. 그는 나를 보지 않는다. 나를 보지 않기 시작한 건 아마 체중계를 사고 나서였다.


"체중계가 고장이 났나봐."


"..그래."


A에게 갑자기 한마디 쏘아붙이고 싶다가 참았다. 그래라니. 그래? 하고 묻는 것 같지는 않다. 그렇구나, 하고 이해한다는 듯한 묘한 분위기에 기분이 상했다. 어제 먹고 냉장고에 넣어둔 바나나푸딩이 생각났다. 비마트로 미리 사서 수납장에 둔 햇반과 미리 녹여둔 고기는 잊지 않았다.


"뭐가 그래?"


가만히 물어도 A는 눈동자만 돌려 나를 잠시보더니 다시 TV로 시선을 회수했다. "아니야." 건조한 말과 TV에서 나오는 웃음 소리가 뒤섞였다. TV로 유튜브를 보는 A는 웃지도 않고 채널을 옮겨다녔다. 웃음 소리는 계속 나왔지만 말이 이어지지 않았다. 유튜버들이 한마디를 다 끝맺기 전 채널을 돌렸으니 말이다.


냉장실에서 알맞게 녹은 삼겹살을 봉지에서 꺼냈다. 한켠에 놓인 저울에 고기의 무게를 달아보았다. 기계식 저울의 눈금이 두바퀴쯤 돌아 멈추었다. 멈춘 지점이 고기의 무게를 가리키는지, 중량을 견디지 못해 멈춰 버린 건지는 알 수 없었다. 냉장고에서 바나나 푸딩을 꺼내 한 숟가락 퍼 먹었다. 푸딩에 덮혀 있던 하얀 유리접시는 빠르게 제 모습을 드러냈다.


"지금 아침 9시야." A가 말을 건넸다. "일어났으면 먼저 좀 씻고 그래." A가 TV를 끄고 일어나더니 부엌으로 왔다. 고기 담긴 봉지를 집더니 냉장고 안에 다시 집어 넣었다. 하얀 접시를 들어 싱크대 볼 안에 집어넣었다. 거센 숨을 쉬는 나를 흘깃하고는 다시 쇼파에 앉았다. "이제 좀 그만 먹어."


..


그러니까 내가 하고 싶은 말은 A가 먼저 잘못했다는 것이다. 나는 그냥 고장 난 체중계가 신경이 쓰였고 다이어트를 한다고 아침에 먹을 준비를 해놨을 뿐인데. 갑자기 지겹고 구역질 난다. 구역질을 하고 나니 배가 다시 고프다. 햇반은 미리 데워놓는다. 고기는 구워먹는 게 좋지만 오늘은 삶아 먹어야겠다. 바나나푸딩은 다 먹었으니 초콜릿케잌을 꺼내왔다. 디저트로 꺼냈는데 한 숟가락 퍼먹어 보니 식욕이 돋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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