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상호 검사가 방심한 게 분명했다. 그러니까 저녁 조사를 하던 중이었다.
"치즈버거라고?" 김 검사는 '저녁으로 뭐 먹을꺼냐'는 질문을 했고, 그의 앞에 앉은 싱은 '치즈버거'라고 분명히 말했다. 뭐라고 물어봐도 제대로 말도 안 하던 싱이 거의 처음으로 제대로 대답했다.
"너네는 치즈버거, 아니 그러니까 그 소고기는 못 먹는 거 아니야?" 대학 시절에 여기저기 외국에서 살아본 경험이 있는 그는 인도인들이라면 절대로 먹지 않는 소고기가 들어있을 햄버거를 먹고 싶다는 싱의 말에 왠지 놀랐다.
"먹고 싶어요. 햄버거 안 먹어봤어요. 잘못했어요. 이제 달라요 저는. 돌아갈 수 없어요 뒤로."
"말 잘 하는 구만. 그러니까 다시 예전으로 돌아갈 수 없다는 거야?" 김 검사는 옆에 앉은 정호식 수사관을 보면서 고개를 갸웃했다. "야 그러니까 죄를 지었으니 다 틀렸다. 이런 거야?"
싱은 고개를 들어 천장을 바라보며 한동안 아무 말을 안 했다. 수갑을 풀어줬는데도 한동안 습관이 됐는지 두 손을 탁자 위에 모아 올려두고 있었다. "엄마, 아빠. 난 이제 끝났어요. 이제 없어요 아들." 싱은 눈을 깜빡이며 말했다.
"먹고 싶다는 데 시켜줘라. 우리도 햄버거 먹지 뭐 이것저것해서 같이 시켜줘." 김 검사는 ㅁ메모하던 볼펜을 책상에 던져놨다. 노트북도 접어놓고 의자를 뒤로 기울이며 기지개를 폈다.
"김 검사님 뭐 드실꺼에요."
"아무거나 그냥 시켜. 아. 새우버거는 말고."
정 수사관은 핸드폰을 주머니에 꺼내며 조사실 밖으로 나갔다. 김 검사는 싱을 가만히 바라보면서 얘기했다. "야 너 지하철에서 카메라 찍고 그랬다고 인생 끝나냐? 너 어차피 인도로 돌아가면 여기 기록 하나도 안 나올 거 아냐. 벌 받고 돌아가서 새 생활하면 되지. 마음이 약해 생긴건 아주 사람도 죽이게 생겼는데."
골격이 단단하고 다부지게 생긴 싱은 키는 작지만 눈매가 굵고 턱뼈가 두꺼웠다. 이목구비가 또렷하고 눈썹이 짙었다. 검은 머리카락이 조금 어정쩡하게 자라고 있었다. 수의를 입은 싱은 김 검사를 똑바로 쳐다봤다. 그리고 다시 책상 위로 시선을 옮겼다.
"야 핸드폰 조사 다 끝나고 우리가 기소, 그러니까 법원 갈 준비 하면 금방 끝날 거야. 너는 외국인이잖아. 한국사람 아니잖아. 그래서 너 구치소 간거야 감옥. 도망가면 못 찾잖아. 그래서 잡아둔거야. 걱정하지 말고 몇달만 있으면 집에 갈 수 있을 거야."
김 검사는 싱이 알아듣기 쉽게 설명해줬다. 지하철 에스칼레이터에서 휴대폰으로 여자 다리와 엉덩이를 찍던 싱이 붙잡혔고, 체류 기간도 지난 데다 거주지도 확인되지 않아 구속하게 됐다. 싱은 자기가 살던 집은 잘 모르겠다며 말하지 않았다. 조사 내내 별 말이 없었다. 싱은 1년 전 유학생으로 다니던 강원도의 어느 학교에서 갑자기 사라졌다. 그때 여성 유학생 몇 몇도 함께 사라졌다. 단체로 취업하러 잠수를 탔다고 여겨졌는데 싱이 나타난 것이다.
"새끼 무슨 햄버거를 먹고 싶다고. 너 힌두교 맞아? 햄버거에 소고기 있는 거 알지. 소고기 왜 먹어?"
"맞아요. 힌두교 소 안 먹습니다. 근데 이제 모릅니다. 다 먹습니다. 저는 힌두교 안 됩니다. 인간 아닙니다. 벌 받습니다."
김 검사는 웃어넘겼다. 경찰에서 송치할 때 휴대폰 포렌식이 어렵다고 해서 싱의 혐의는 불법촬영 현행범 뿐이다. 휴대폰 포렌식이 가능한지 다시 확인해봤는데 얼마 전 도입한 이스라엘 프로그램이 가능하다고 했다. 휴대폰 포렌식만 마치면 구공판처리하면 끝이니까.
그때 문이 벌컥 열렸다. "검사님!" 정 수사관이 문을 열고 들어왔다. "햄버거 벌써 왔어?" 김 검사가 고개를 돌렸다.
"아니 저 저 싱 핸드폰에서.."정 수사관은 김 검사를 보고 이야기하다 싱에게 눈을 돌렸다. 싱은 어느새 자리에 일어나 있었고, 손에 볼펜이 들려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