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형님 저쪽으로 가실까요?" 찬 바람이 불자 해가 드는 곳으로 자리를 옮겼다. 정수는 담배를 입에 물고 점퍼를 목까지 올려 잠궜다. 현우는 그런 정수를 보면 연기를 내뱉었다. "뭐가 그리 춥냐."
"아우 형님 저는 겨울이 싫어요. 뭔가 우울하고, 춥고, 해도 짧고. 여름이 그래도 뭔가 살아 있는 것 같잖아요." 정수가 웃으며 담배를 한 모금 빨았다.
"나는 여름이 싫어. 땀나. 여름만 되면 다들 신이 나서 즐거워 하는데 꼴보기 싫더라구. 밤만 되면 뭐가 야릇한 비릿내가 난다구 여름에는. 싫어. 일하기도 힘들고."
"형님은 어느 계절이 제일 좋으세요." 정수는 담배연기를 뱉으며 시선은 길건너 건물에 고정해뒀다. "그래도 겨울보다는 봄 가을이 좋죠?"
"가을이 좋기는 한데, 그 살짝 찬공기가 돌 때 있잖아. 그런 거 좋아하지. 9월. 딱 9월되서 공기가 갑자기 서늘해지잖아. 그런 거 좋아. 그때 미처 여름옷을 못 갖춰 입고 밤에 나와서 덥지 않고 시원하다고 느껴지는 그때가 좋지. 그래도 어느 계절이 제일 좋냐고 물으면 겨울이야."
정수가 노려보던 건물에서 한 남자가 걸어나왔다. 계절 얘기를 하던 정수와 현우는 담배를 버리고는 건물쪽으로 갔다. 건물에서 나온 남자는 길가에 세워둔 차 앞에 서 있었다. 정수 품안에서 망설임 없이 칼을 꺼냈다. 남자가 뒤를 돌아보는 순간 현우와 정수가 달려들었다. 현우는 달려가서 발로 차 쓰러트리고 정수가 다시 달려와 찔렀다. 현우 손에도 칼이 들려 있었다. 대낮이었는데도 골목은 한적했다. 정수와 현우는 누가 보고 있었더래도 아랑곳 하지 않은 듯 밟은 대낮에 남자를 죽여갔다.
정수는 손에 쥔 칼을 남자 옆에 던져 두고는 점퍼 안에서 작은 물병을 꺼내 한 모금 마셨다. 그리고 손에다 부어 묻은 피를 씻었다. 현우도 물병으로 손을 조금 씻어내고는 쓰러진 남자 옷에 손을 닦았다. 두 사람은 그대로 걸어나와 낯선 외국어가 적힌 간판 사이를 지나 한동안 걸어 나왔다. 거리에서 택시를 붙잡아 탔다. 휴대폰으로 공항 위치를 보여주니 기사는 알았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허름한 옷차림의 동양 남자를 택시기사는 크게 신경 쓰지 않았다.
"여름이나 가을에는 뭔가 작업하면 좀 찝찝하고 그렇잖아." 현우는 창문을 보면 말했다. 조금 차오르던 숨이 가라앉고 있었다.
"그렇죠. 한국 들어가면 바로 뜨끈한 국밥이나 한 그릇하시죠. 아직도 춥네요."
현우는 휴대폰으로 문자 한통을 보내면서 대답은 하지 않았다. 택시는 히터가 꺼져 있었고, 서늘한 기운이 돌았다. 국밥 생각이 나자 어느새 침이 고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