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수해야 끝나는 일도 있다

by 진진

판사가 불러서 짧게 기소요지를 읊었다. "피고인은 위험한 물건인 망치로 피해자들을 때려 다치게 했습니다."


전후 맥락이 중요한 건 아니다. 죄라는 것은 요리처럼 구성요소가 맞아 떨어지면 완성되는 법이니까. 딱 떨어지게 맛을 내려면 이런저런 조미료도 필요하지만, 닭도리탕은 닭이랑 양념장만 있으면 결국 되는 거 아니겠어. 특수상해라는 게 망치로 때리면 되는거지 구구절절한 사연 따위가 필요한 건 아니니까. 공소장일본주의라고 알아?


변호사가 엉거주춤 섰다. 앉은 것도 아니고 일어서는 것도 아닌데 형사사건의 변호인들 중 판사를 우습게 보는 변호사들은 일어서기엔 자존심이 상하고 앉아 있기에는 건방져보여서 이런 방식을 택한다.


"사실관계는 인정합니다. 피고인은 장기간 고시공부를 하던 중 지속된 층간소음을 해결하려고 여러차례 방법을 찾았지만 어떤 수단도 층간소음을 해결해 주지 못하자 우발적으로 범행을 한 것을 참작해주시기 바랍니다. 피고인이 범행 오래 전부터 층간소음 때문에 정신과 상담 받은 자료랑 층간소음 해결하고자 신고했던 내역과 소송 자료 등을 양형 자료로 제출하겠습니다."


하여튼 죄짓는 놈들은 다 무슨 사정이 참 많다니까. 고시공부하고 층간소음 나며 다 때려 죽이나. 무슨 망치 휘두른 놈이 말이 많지.


"피고인도 같은 의견이신가요. 소송도 하셨다고요."


"네. 참아보려고 했는데 방법이 없었습니다. 층간소음 해결해준다는 뭐 관공서나 무슨 센터나 다 신고해봤고 경찰도 불러봤고 소송도 냈습니다. 다 소용 없었습니다."


다 소용없었다는 말은 범죄자들이 주로 쓰는 말이지. 그럼 자기가 무슨 신인가. 세상엔 해결 안 되는 일도 있고 그런거지. 하여튼 나쁜놈들. "일단 증거 제출해주시고요." 판사가 물었다. 증거를 제출했다.


"증거 의견 어떠시죠."


"모두 동의하고 입증 취지만 부인하겠습니다."


변호사가 딱봐도 의욕이 없는 거 보니 빨리 끝나겠군. 사건 빼야될 게 많단 말이야 요즘은 쉽게 가자.


"더 하실 거 없으면 변론 마치겠습니다. 검사님 구형하세요." 판사가 기록을 건성으로 훑어보면서 말했다.


"피고인에게 징역 3년을 선고해주십시요." 내가 판사였으면 저런 놈들은 그냥 6년 7년 보내버리는거다. 그거 좀 시끄럽다고 망치를 들어 참. 썩은 놈들. 하여튼 법이 물러. 불편한 거야 참.


"변호인 최후 변론하세요."


변호사가 일어섰다. "네 피고인은 오랜 시간 꿈꾸던 직업인 법조인이 되기 위해 고시공부를 해왔습니다. 사법시험이 폐지되기 전 마지막 시험을 앞두고 수년동안의 공부의 성과를 내야만 하는 상황이었습니다. 그런데 올해 초 윗집으로 이사온 피해자들이 쿵쿵 하는 소리를 유독 밤 늦은 시간에 냈습니다. 경비실을 통해서, 편지로, 문자로 전화로 조용히 해달라고 했지만, 자신들의 생활 시간이 밤중이라 어쩔 수 없다고 하며 오히려 자꾸 말하면 주거침입으로 신고하겠다고 모욕을 줬습니다. 층간소음을 중재해주는 여러 기관에 의뢰했지만 소음 측정방식도 까다롭고 실질적으로 도움을 받을 수도 없었고 경찰도 그저 참으라는 말이난 방법이 없다고 했고, 소음 발생 금지를 청구하는 소송도 냈지만 법원에서 배척했습니다. 시험이 얼마 앞으로 다가온 범행 당일 계속되는 낮고 묵직한 진동음들과 시끄러운 대화소리에 그만 이성을 잃고 범행을 저지르게 된 것입니다. 피고인 행동은 범죄이지만 계획적으로 벌인 것도 아니며 그동안 정신과 치료를 받으며 층간소음을 이겨내려 한 점 등을 참작해주시기 바랍니다."


길기도 하다. 범죄라는 건 저렇게 설명이 길어지는 순간 결국 나쁜놈이란 거 아냐. 나쁜짓 한 놈들 보면 다 저마다 이유가 있다니까.


"피고인도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말 하세요."


"판사님, 검사님 층간소음 겪어보셨나요? 윗층 사는 사람은 모릅니다. 어떤 고통인지. 한번 귀가 트이면 막을 수가, 참을 수가 없어요. 그냥 고통이 계속되는 거에요. 밤이 오는 게 두려울 정도에요. 그런데 해결할 방법이 없어요. 영원히 계속되는 고문입니다. 이사를 가고싶어도 못가죠. 판검사님들은 돈이 있어서 될지 모르겠네요. 복수하지 않으면 결국 안 끝납니다. 잘못한 일이지만 후회하지 않습니다. 지금은 소리가 안 납니다."


검사와 판사가 피고인 석을 의아하게 쳐다봤다. 변호인은 짧게 한숨을 쉬었다. 판사는 고개를 젓더니 2주 뒤에 선고한다고 했다. 이미 결론이 난 듯했다. 재판 내내 비웃듯 쳐다보던 검사는 어느새 다른 사건 기록을 들여다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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