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우는사람들 2
"네 엄마 혹시 너희 집에 있냐?"
밤 12시에 결혼한 지 반년도 안된 딸네 집에 전화하실 아버지가 아니셨습니다. 친정은 멀리 있어도 된다며 일 년에 사위 생일 한 번만 보면 된다고 말씀하시던 충청도 양반이신 아버지께서 무례를 무릅쓰고 전화를 거셨습니다.
그날 밤, 엄마는 가출을 하셨습니다. 그 밤에 밤새 유원지에 앉아계셨답니다.
8년 간 치매였던 할머니의 병간호를 집에서 도맡아 했던 엄마는 할머니 장례를 치르고 나서 집에 있는 시간을 힘들어하셨습니다. 직장에 다니시는 아버지도, 학교에 다니던 동생들도 장례를 치르고 나자 다 자기 일에 돌아갔습니다. 엄마는 할머니를 간병하던 집을 싫어했습니다. 장례식을 마치자마자 먼저 올라온 우리는 도배장판을 바꾸고 새로운 환경에서 엄마를 맞았지만 엄마는 혼자 있는 시간마다 할머니가 생각나서 그 집이 싫다고 했습니다. 그렇다고 하루아침에 집을 팔 수도 없고 가족들은 걱정에 쌓였습니다.
두 패로 나뉜 고모들은 서로 자기네 종교로 오기를 권했지만 엄마는 그도 싫어했습니다. 어쩔 수 없이 우리는 자주 엄마께 전화를 걸고 교대로 찾아가며 보이지 않게 엄마를 돌보게 되었습니다.
어느 날 엄마를 뵈러 친정에 들렀을 때 라디오에서는 트로트 가수의 노래가 흘러나오고 엄마는 집안일을 하면서 하이톤으로 그 노래를 따라 부르고 계셨습니다.
"나는 노래를 부르면 속이 뻥 뚫리는 거 같아!"
나는 부모님이 사시는 지역에 노래교실을 찾아보았습니다. 마침 길 건너 동사무소에서 노래교실이 열리고 있었습니다. 딸의 설득에 엄마께서는 노래교실에 흥미를 보이셨습니다. 이 나이에 무언가를 배우러 가는 게 겁은 나지만 비용도 최소한의 회비 정도였고 거리도 가까우니 혼자서 가실 수 있겠다고 합니다.
일주일에 한 번 노래교실을 가시는 엄마는 얼굴빛이 차츰 밝아지셨습니다. 거기서 친구도 생기셨고 약속도 만드셨습니다. 우리 가족은 다시 일상으로 돌아가 각자의 일에 집중하게 되었습니다.
얼마나 지났을까요?
"네가 똑똑하니까 좀 알아봐 줄래?"
노래교실을 찾아낸 나는 엄마께 '똑똑한 사람'이 되었습니다. 노래교실을 다니다 보니 엄마는 당신이 못 배운 것이 티가 날까 봐 조마조마하시다고 했습니다.
"허우대도 멀쩡하니 사람들이 반장을 하래잖니? 내가 글도 모르고 셈도 못한다고 누가 생각을 하겠니? 졸업장이라도 떳떳하게 내놓을 수 있어야지....."
노래교실 반장에게 졸업장을 내놓으라고 하지 않겠지만 엄마의 떳떳함을 채워드려야 할 때가 된 것 같습니다.
우리 엄마는 초등학교 4학년으로 공교육을 중퇴하셨어요.
한학자였던 외할아버지께서 초등학교 운동회에 가셨다가 다리를 들었다 내렸다 하며 포크댄스를 추는 여학생들이 남사스럽다고 딸들에게 학교를 못 가게 하셨답니다. 엄마께서는 학교에 가고 싶어서 책 보따리를 담장으로 넘겨두며 몰래 학교를 다니시다가 할아버지께 걸려서 끝내 학교를 그만두셨던 이야기를 우리 가족은 정말 많이 들었습니다.
남존여비가 심했던 시절이라 외삼촌들은 당연히 학교에 다녔습니다.
5학년 나이부터 부엌일을 도우며 살면서 엄마는 동생들의 공부를 부러워했답니다.
그래서 딸자식을 낳으면 꼭 중학교는 마치도록 공부시키겠다고 결심을 하셨다고 했습니다.
그때만 해도 엄마의 눈에는 교복을 입는 여학생들이 중학교를 마치는 것이 부러우셨대요.
엄마의 이 결심 덕분에 우리 5남매는 어려운 형편에도 대학을 졸업할 수 있었습니다.
엄마의 바람대로 중학교뿐만 아니라 대학교까지 마친 딸들은 마치 우리나라 최고의 명문대를 나온 것처럼 엄마의 자랑이었습니다.
활달한 성격에 자칭 머리도 좋으신 엄마께서는 외삼촌이 영어를 외우면 영어를 따라 하셨대요.
지금도 그때 외운 영어 인사를 술술 외우신 후 외국인을 만나면 말을 걸어보고 꼭 써먹으실 정도로 용감하십니다.
그런 엄마께서 공부를 하기로 결심하셨습니다. 나는 얼른 지역 평생학습관에 알아보고 등록을 해드렸습니다. 우리 엄마께서 이제 초등학교 공부를 시작하셨습니다. 아버지께서 과외 선생이 되셔서 방과 후 공부를 봐주셨습니다. 마침내 엄마는 초등학력인증 시험을 보시고 초등학교 졸업장을 받으셨습니다.
초등학교 졸업장은 어머니께 날개를 달아드렸습니다. 노래교실 반장도 떳떳하게 나서고, 경로당 회장도 하십니다. 이제는 '똑똑한 딸'을 거치지 않고도 여러 가지를 신청하고 배우십니다. 요즘은 노인대학을 다니시고 계시는데 교수님이 연세 있는 분들이 다니는 대학이라고 '연세대'라고 부르시라 했답니다.
우리 자식들은 연세대 다니시는 엄마가 자랑스럽습니다. 글쓰기 대회에 나가셔서 시장님 상도 받으셨습니다. 학교 장기자랑에서는 도맡아 초대가수가 되시는 동영상을 보내오십니다.
8년전, 아버지께서 갑작스러운 병으로 돌아가셨을 때, 엄마의 마음은 다시 흔들렸습니다. 하지만 배움은 엄마를 단단하게 잡아주었습니다. 연세대생 우리 엄마는 노래하고, 글 쓰고, 운동하며 혼자서 잘 지내십니다.
엊그제 내가 담근 김장김치와 입맛 없을 때 밥 대신 드시라고 누룽지, 간식으로 드실 대봉감 홍시를 가져다 드릴 겸 엄마께 들렀습니다.
엄마께서는 언제나처럼 경우 바르게 된장이며 간장, 찧어둔 마늘을 다복다복 싸주시며 제게 생일 용돈도 주십니다. 이제는 봉투에도 꼭 덕담 한마디를 써주십니다.
'똑똑한 딸'은 평소처럼 오자를 바로 잡아서 알려드립니다. 엄마는 얼른 받아쓰기 노트를 찾으시더니 귀여운 변명을 하시네요.
"그런데 말이다, 공부처럼 안 하면 바로 표 나는 것도 없어. 오메~ 얼마 안 써봤다고 금방 다 까먹어.
허망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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