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의 도서관은 가끔씩 뻥튀기 기계 옆이다

배우는 사람들 3

by 함께걷는제제




한 달에 두 번 오는 뻥튀기 장수는 아파트 앞 모퉁이에 자리를 잡았다. 재래시장으로 가는 주부들과 아파트 주민을 둘 다 노리기에 좋은 자리다. 그는 호루라기를 한번 불고는 크게 소리쳤다.


"뻥이요!"


작은 도서관에 상호 대차한 책이 도착했다는 알림 문자를 받고 막 도서관에 다녀오는 길이었다. 학교를 마치고 오던 학생 한 무리가 뻥튀기 아저씨를 빙 둘러섰다. 아저씨는 막 나온 튀밥을 아이들에게 한 줌씩 나눠주며 옆에 할아버지께 소리쳤다.


"책 그만 읽으시고, 이거나 어서 가지고 가세요."


아저씨가 강냉이 한 자루를 내미는 쪽에 양지바른 곳에서 할아버지 한 분이 낡은 야구모자를 삐뚜루 쓰고는 쪼그리고 앉아서 책을 읽고 계셨다.

그러고 보니 아까 도서관으로 갈 때도 저분을 본 것 같다.

그가 읽고 있는 책이 아이들용 삽화가 그려진 "톰소여의 모험"이었던 게 눈에 들어왔다.




우리 지역은 인구대비 어르신 비율이 높다. 이번 시즌에는 그분들을 위한 글쓰기 수업을 기획했다. 강사를 찾아서 학습자의 요구를 알리고 취지에 맞는 프로그램을 상의하여 프로그램을 완성해 가는 게 나의 일이다.


프로그램이 완성되면, 이제는 학습자를 찾는 일이 문제다. 지역 복지관 소속으로 독거 어르신들을 도와드리는 생활지원사들에게 홍보지를 돌리고 이 프로그램 취지를 알리며 필요한 어르신들의 소개를 부탁했다.


지역의 경로당을 찾아서 직접 홍보도 하였다. 어르신들의 식사 시간 직전에 가서 큰 소리로 설명을 드렸다.


관내 아파트에도 관리실에 공문까지 같이 가져가서 협조요청을 하고 홍보지를 부착하였다.


발품과 온라인 커뮤니티에 홍보 덕분에 우리가 설계한 인원이 수월하게 모집 완료 되었다.

프로그램을 만든 기획자로서 절반은 된 것이라서 벌써 뿌듯함이 차오른다.


그리고 기다리던 개강 날이 되었다.


그날, 뻥튀기 아저씨의 그분, "톰소여의 모험"을 읽던 어르신이 오신 것이다.

강사님은 한 명씩 학습자들에게 자기소개를 부탁했다. 이 또한 앞으로의 수업 방향에 대한 학습자의 수준을 알고 기대를 파악하는데 꼭 필요한 과정이다.


그분은 크고 작은 노트에 좋은 글들을 필사를 하고 계시다고 했다. 중고서점에서 책을 사는데 그 책을 여러 번 읽고 너무나 소중해서 필사를 하시고 계셨다. 혼자 사시다 보니 심심해서 집에 칠판을 놓고 예전에 배운 시도 적어보고, 노래도 써보고 계시다고 했다.


강사는 어르신 자기소개에 습관처럼 두 손을 모으고 감탄을 연발하였다. 그러자 그분은 쑥스럽게 웃었다.


"책이 너무 비싸서 1년에 한 두 권 밖에 못 사요."


"도서관에서 빌리면 되는데요?"


다른 학습자가 조심스럽게 끼어들었다.


'아, 저분은 도서관을 모르셨구나!'


강사가 자기에게 맡기라는 듯 나를 바라보았다.

수업 후 강사는 조심스럽게 어르신께만 친절한 설명을 해드렸다.


"우리 시에는 크고 작은 도서관이 있고, 혹시 원하는 책이 먼 도서관에 있으면 가까운 도서관으로 가져다주는 상호대차제도도 있어요....."


짐작한 대로 어르신은 아직 도서관을 모르고 계셨다. 더구나 공짜로 책을 빌려준다는 이야기에 깜짝 놀라셨다. 당신이 늘 가던 뻥튀기를 튀기던 곳에 도서관이 있다는 말에도 무척 반가워하셨다.




두 번째 시간이 되었다. 그날 주제는 '내 인생 가장 찬란한 날'이었다.


" 제 인생 일흔 두 해만에 처음으로 도서관에 가봤습니다."


그는 도서관 카드를 만들고 명심보감과 건강을 위한 지침서를 빌려 오셨다고 그 이야기를 썼다. 사서 선생님께서 과월호 잡지는 마음껏 가져가셔도 된다고 하셨다고 흐뭇하게 덧붙였다. 우리 글쓰기 수업으로 도서관을 알게 되고, 책도 빌리게 되신 어르신의 하루하루는 이제 심심하지 않으시다고 했다. 적적해서 책을 가지고 길거리로 나섰는데 이제는 책이 여러 권 있으니 하루가 더 풍성해지셨다고 좋아하셨다. 도서관을 가는 날이 그분 인생의 찬란한 날이었다.


"혼자 있는 게 너무 조용해서 뻥튀기 튀기는 소란스러움 속으로 책을 보러 가셨구나!"


다른 학습자가 합평에서 공감해 주셨다.


수업에 오실 때마다 그분의 배낭은 불룩하였다. 일주일간 쓰신 필사본 수첩과 노트를 넣고, 혹시 다른 학습자가 놓치고 올까 봐 필기도구를 챙겨 오시면서, 봉지봉지 뻥튀기를 가져와 학습자들과 골고루 나누어 주셨다.

학습자들도 수업시간에 서로서로 작은 먹거리들을 나누곤 하였다.



프로그램은 12회 차로 끝났다. 강사님은 그분을 포함해 개근하신 몇몇 학습자들에게 어른을 위한 그림책을 정성스럽게 골라서 선물해 주셨다. 상을 받고 아이처럼 쑥스러워하시던 모습이 소년 같았다.


종강 후에도 아직은 도서관에만 앉아서 책 읽기가 쑥스럽다는 그분을 뻥튀기 아저씨 옆에서 종종 만났다. 그분의 옆에는 이제 책이든 검은 배낭이 불룩하다.


그의 도서관은 가끔씩 햇볕이 잘 드는 뻥튀기 기계 옆이다.


#배우는 사람들 #72년 만에 간 도서관 #필사 #독거어르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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