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우는 사람들 6
2020년 세상은 갑자기 멈췄습니다.
모임은 금지되었고 당연히 학습을 위한 집합도 금지되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코로나 팬데믹 시절에도 평생교육 운영을 멈추지 않았습니다.
각자의 집에 유배 아닌 유배 생활에서 한줄기 빛은 바로 줌(ZOOM) 교육이라는 비대면 연결이었습니다.
비대면 교육을 위해 운영 방법을 익히고 활용 역량을 기르는 일은 강사님과 학습자에게 다 필요했습니다.
줌이라는 비대면 방법을 충분히 익히고 안내해 드려서 대면하는 수업에 버금가게 학습 참여를 가능하게 돕는 일은 운영자에게는 큰 보람이었습니다.
우리의 평생학습 프로그램이 코로나라는 큰 위기에도 불구하고 끊기지 않고 운영된다는 것은 큰 화제가 되었습니다.
통영에 있는 강사는 맥주를 통한 세계문화를 강의했고, 마산에 강사는 영화로 전국 팔도를 둘러보는 국내 여행을 인문학적 관점에서 다루어 주셨습니다. 각자 집에서 동네 로스팅 커피를 드립 해서 마셨고, 클래식을 들었으며, 도슨트와 세계 미술관을 구경했습니다.
그 때는 우리 시 우선 등록권은 있었지만 서울, 부산 등 다른 시도에 사시는 학습자 분들까지 수강신청이 가능했습니다.
학습자들의 후기는 만족 그 자체였고 힐링이 되는 시간이라고 고마워했습니다.
줌 수업이 시작되면 학습자들은 운영자와 한 가지 약속을 합니다.
프로그램 강사와 쌍방향 소통을 위해 화면과 마이크를 켜는 것입니다.
그러지 않고서는 강사의 일방적인 강의처럼 될 것이 뻔하고 동영상 일방 강의와 다를 바가 없어서 우리의 평생학습 방향과는 맞지 않기 때문입니다.
비록 줌이라는 인터넷 공간에서 만나지만 실시간 소통으로 묻고 답할 수 있는 수업을 지향했습니다. 이러한 방식은 강사에게도 좋은 영향을 주고 분위기를 활기차게 만들어 주었습니다.
운영자로서 한 사람 한 사람의 상황을 살피면서 댓글이라도 관리해 주고 강사와 학습자의 원활한 소통을 돕는 일도 우리의 일이었습니다. 인터넷 공간에서 혹여 생길 수 있는 불편함을 미리미리 방지하면서 지켜보는 일은 대면 수업보다 긴장감을 유지해야 하는 일이어서 쉽지는 않지만 비대면 수업의 선발대로서의 자긍심을 갖기에 충분했습니다.
그런데 그 모든 걸 불가능하게 만든 그녀를 만났습니다.
그녀는 수강 신청 개인정보로는 40대 가정주부였습니다. 그녀는 일단 수업에 제시간에 입장을 하지 않았습니다.
들어와서도 이름을 바꾸지 않고 O학년 O반 아무개라는 아마도 자녀인듯한 학생이름으로 놔뒀습니다. 강사님이 학습자와 소통하기에 복잡한 일이기에 수정을 요구하지만 답이 없습니다. 그녀는 어둠 속에 앉아 있었습니다. 화면을 켰지만 역광으로 앉아서 얼굴 표정이 잘 보이지 않았습니다.
다른 학습자가 비밀 댓글로 묻습니다.
'화면 안 켜도 되는 거였어요?'
이크, 이러다가는 너나 할거 없이 화면이 어두워지겠지요?
운영자의 조치가 필요해 보입니다.
그녀를 만난 것은 시 쓰기 수업에서였습니다. 시인의 시 한 편이 화면에 띄워지고 강사는 학습자 한 분을 지목하여 낭독을 요청합니다.
그때 어디선가 활발한 에어로빅 음악이 들려옵니다. 마이크가 켜진 그녀에게 메시지를 보냅니다. 다행히 음악은 금방 꺼집니다.
"오늘 수업에서 정지용 시인의 시낭송을 들었어요!"
운영자 월례회의에서 동료가 아찔했다고 말합니다.
명상을 하는 수업이었다고 하네요.
"우리 수업이었는데요?"
"그분 김 OO 수강생 아니에요?"
동시에 두 분의 운영자가 맞장구를 칩니다.
"맞아요!"
김 OO님은 우리와 같은 시간에 3개의 수업을 동시에 듣고 계셨습니다.
거기서 끝이 아니라 한주에도 8개의 강의를 수강하셨고 확인해 보니 겹치는 요일에 두세 개의 강좌를 동시에 듣는 일이 다반사였습니다.
"아무리 평생교육을 좋아해도 그렇지 이건 의미 없는 일이에요! 동시에 3개의 프로그램을 돌린다는 게 무슨 의미가 있어요? 듣고 싶어도 수강 신청 못하신 분이 얼마나 많은데요."
우리는 그녀를 설득하기로 했습니다.
상담을 한 동료 말씀이 그녀는 최근에 어머니께서 돌아가신 후 우울증을 앓고 있었다고 했습니다.
프로그램을 8개나 신청했지만 우려했던 대로 하나에도 집중하지는 못했습니다.
노트북과 핸드폰, 데스크톱으로 세 개의 수업을 켜놓고 쇼핑하듯이 수업을 들었다고 해서 공분을 사기도 했습니다. 당연히 화면을 어둡게 해놓고 있었던 이유가 있었던 것입니다.
결국 그녀는 세 개의 학습만 남기고 다른 수업은 수강 포기를 했습니다.
그 수업들은 다행히 대기자들이 들을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녀는 우리 수업 대신에 심리에 관한 수업으로 가셨고 더 집중해서 수업에 참여한다는 담당자의 말씀을 들었습니다. 다행이었습니다.
그 후 우리 센터에는 하나의 수강 규칙이 더 생겼습니다.
한 학습자에게 3개의 프로그램만 허락합니다. 혹시 몰래 수강신청을 해도 우리의 동료들이 반드시 걸러냅니다.
더 좋은 학습을 더 많은 학습자에게 누리게 하려는 선한 의도입니다.
학습자에게도 온전한 수업 향유가 되도록 돕는 방법인 것은 말할 것도 없습니다.
우리는 더 이상 '어둠 속의 그녀'를 허락하지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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