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아노 급수시험이라는 게 있다. 생각보다 역사가 오래된 제도인 것 같다. 나도 어릴 때 피아노 학원에서 급수시험을 보러 가곤 했었다. 근데 생각해 보니 그 급수는 어떻게 매기는 걸까?
오로지 연주만으로 채점을 한다.
각 급수의 지정된 곡을 연습해서 시험을 치르면 된다.
콩쿠르 같은 느낌이랄까? 전곡을 듣지도 않고 일정 부분까지 들으면 종을 친다.(연주를 그만하라는 의미)
그래서 대부분의 선생님들은 그 듣는 부분까지만 가르쳐서 연습을 시킨다.
물론 내 선생님도 그러했다.
과연 이것이 공부가 될까?
이왕이면 난 한 곡을 배우더라도 공부가 되는 것을 하는 것이 좋다고 생각한다. 물론 결과까지 따라주면 좋겠지만 그렇지 않더라도 학생이 발전하는 계기가 되길 바란다.
그래서 우리 학원에서는 그 흔한 피아노 급수시험을 치르지 않는다.
대신 ABRSM이라는 시험을 치른다.
이 시험은 1급부터 8급까지 있고 숫자가 올라갈수록 난이도가 올라간다.
이론과 실기 시험이 따로 있고 실기 5급부터는 이론시험을 통과해야만 도전할 수 있다. 그리고 음악 급수 시험이라 성악부터 각종 악기와 뮤지컬 부분까지 과목이 존재한다.
또 5급 이상부터는 국제학교와 유학을 준비하는 비전공 아이들이 필수적으로 준비하고 있다.
내가 이 시험에 아이들을 도전시키는 이유는 하나다. 비전공 아이들에게 음악을 배우면서 전반적인 상식을 골고루 발달시켜주기 위해서다. 시험에는 지정곡 중 3곡을 선택해서 연주해야 하고, 각 난이도에 맞게 스케일, 초견, 청음등이 포함되어 있다. 또 급이 높아지면 시대별 특징이나, 음악에 대한 설명도 할 줄 알아야 한다.
우리나라 교육 환경에서는 거리가 먼 느낌이지만, 막상 해 보면 재미가 있다. 연주봇처럼 외운 대로 연주만 하는 것이 아닌 정말 이해하고 연주하는 지를 묻는다. 코로나 이전에는 1년에 두 번 영국에서 심사위원이 와서 대면시험을 치렀다. 이후에 코로나로 대면시험이 연기되다가 온라인 시험이 생겨났다. 자기소개를 하고, 연주할 프로그램을 설명한 뒤 지정곡 중 선택한 3곡을 연주한다. 암보는 하지 않아도 된다. 이 모든 걸 원 테이크로 찍어서 영국 홈페이지에 업로드하면 된다. 만점이라는 개념은 없고, 100점 이상 Pass, 120점 이상 Merit, 130점 이상이 Distingction으로 최고점자 연주회에 참여 가능해진다.
우리 아이들은 매번 최고점자를 배출했고, 전원이 합격하고 있다.
단점이라 하면 응시료가 사악하다. 또 레슨 하기가 여간 까다로운 것이 아니다. 비전공 아이들에게 굳이 이렇게 까지 레슨을 해야 하나 싶기도 하다. 하지만 아이들은 생각보다 재미있어한다. 영국인 심사위원과 만나서 시험을 치르는 것도 꽤 흥미로운 부분이다. 언제 외국인 선생님과 음악에 대하여 이야기를 나누고 평가받아 보겠는가? 그래서 계속 도전시킬 생각이다. 이왕 배우는 거 제대로 높은 곳을 향해 배우는 것이 좋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나중에 우리 아이들이 국제 학교뿐 아니라 유학도 가고 큰 세상으로 가는 길에 도움이 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