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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Ranny May 16. 2023

피아노 치는 날

어쩌다 원장님?!

'어쩌다 원장님?!'

요즘 유행하는 TV 프로그램 이름을 살짝 빌려 보았다. 절대 원장이 되지는 않겠다고 생각했던 때도 있었는데 이게 무슨 일인가.... 빼박 K 장녀로 살면서 그놈의 일을 자꾸 찾아내서 했었다. 더 이상은 내가 책임지는 자리에 오르지 않으리라 생각했건만...



타고난 마음약함이 문제다. 으휴.... 결국은 최종적으로 부모님을 탓해야 하는 건가?

사회 초년생 때도 그놈의 '마음 약해서' 덕분에 고생고생 하다가 병까지 얻어서 요양(?)을 했더랬다. 절대 다시는 선생님으로 돌아오지 않겠다 하면서도 바보처럼 선생님 구하기 힘든 몇 아이들 레슨을 하고는 있었다.


선생님 안 하면 뭐 하나 고민하며 이것저것 시도 아닌 시도를 해보는 백수였다. 그러다가 지금의 학원을 만났다. 다른 일 찾는 동안 알바라도 해본다며 간밤에 선생님 구인 사이트 몇 군데에 올린 이력서가 바로 반응이 올 진 몰랐다. 지금 생각해 보면 정말 대충 올린 형편없는 이력서였다. 엄마와 운동삼아 집 뒷산을 등산하고 있는데 면접 보러 오라는 전화가 왔다. 어휴... 배도 고픈데 밥도 못 먹고 부랴부랴 샤워만 하고 달려갔다. 뭐지? 면접 보자마자 그날부터 근무시작. 이게 시작이었다. 원장님이 며칠 후 밥을 사주시며 도망가지 말고 자기 꼭 도와달라고 부탁을 하셨다. 그렇게 인연의 시작되었다. 어떤 포인트가 맘에 드셨는지는 모르겠다. 아마도 부려먹기 쉬운 타입이라서?


하는 일은 점점 많아지는데 월급은 몇 년 동안 똑같았다. 이게 뭐야... 내가 일 한 만큼은 보상받고 싶었다. 남자친구랑 다른 일을 해보겠다고 당차게 사표를 날렸다. 절대 돌아오지 말걸....


아끼던 전공반 학생이 장문의 카톡을 보내서 돌아왔다. 무슨 초등학생이 글을 그렇게 잘 쓰는지. 결론적으로 보고 싶다는 내용이었다. 몇 달 만에 놀러 온 학원은 초토화. 원장님이 내가 나간 뒤로 수업이 많이 취소되고 반도 많이 깨지고. 마음이 약해져 시간제로 또 도와드리러 오게 되었다. 그 정도 거리만 유지할걸...

편찮으시다는 그 말에, 우리 애들(전공반) 다른 사람한테 못 맡기겠다는 그 말에, 학원 하면 잘할 거라는 그 말에, 부모님의 딸내미가 원장님 하면 좋겠다는 그 말에, 9년 만난 남자 친구가 이제 우리 꼭 결혼하자는 그 말에... 주위 사람들의 그 말들에 넘어가 버렸다. 내가 정말 하고 싶은지 철저히 고민하지도 않고. 한번 결정하면 추진력이 좋은 탓에 휘리릭 처리가 되었다. 잠깐이었던 것 같은데 이미 원장님이 되었다. 그 김에 결혼도 해치웠다. 이것도 추진력인가? 인생의 중대사를 1년 안에 고민하고 결정하고 실행했다. 정말 번개 같은 1년이었다.


전임 선생님이든 시간제 선생님이든 특강 선생님이든 대우는 최선으로 했다. 내가 강사 때 느꼈던 것들은 주고 싶지 않았다. 잡일도 혼자 다하고, 선생님들은 수업만 하게끔 했다. 까다롭고 가르치기 어려운 학생들은 도맡아 했고, 학부모님들도 혼자 다 상대했다. 직책은 원장으로 바뀌었는데 하는 일은 그대로였다. 단지 하는 일 그대로에 책임감과 스트레스만 더 얹힌 느낌이랄까?


자리에 어울리는 사람은 아닐지 모르지만 내 방법들이 틀렸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내가 홀대를 받았다고 누군가에게 그렇게 할 수 없다. 그냥 지나치지 못하는 내 마음이 나를 여기까지 데려다주었다. 바보천치처럼 운영하는 내 방식이 꼭 성공해서, 지금의 어려움을 이겨내서, 나 같은 대우를 받는 강사들이 없어지길 바란다. 학벌에 상관없이 능력이 된다면 정당한 대우를 받는 그런 영역이 늘어나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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