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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Ranny May 22. 2023

피아노 치는 날

그림자 선생님

새끼 선생님이라는 용어가 있다. 큰 선생님께 레슨을 받고 나서 레슨 받은 걸 연습시켜 주는 사람이다. 큰 선생님들은 교수님을 생각하면 된다. 당연히 어린아이들의 눈높이에 맞게 설명해 주시지 않는다. 친절하게 설명해 주신다 하여도 아이들은 어려울 수밖에 없다. 물론 고등학생이나 대학생들도 연습선생님께 따로 배우는 학생들이 있다. 어쨌든 우리 아이들에게는 필요하다. 배운 내용들이 무엇인지, 어떻게 연습해야 하는지, 지겨운 연습을 즐겁게 함께 해 줄 동반자이면서 기댈 수 있는 어른이 필요하다.


스카이 캐슬이었나? 제대로 보진 않았지만 드라마 속 그들만의 세상이 어디에든 존재한다. 어린 전공반 아이들의 그사세 속 새끼 선생님. 그림자 선생님이다. 어떤 분야라도 열정페이는 존재한다고 생각한다. 그래 열정페이. 그 열정페이가 피아노에선 작은 선생님, 그림자 선생님이다.


아이들과 가장 밀접하게 많이 붙어서 가르치고, 연습시키고, 연구도 한다. 아이에 맞게 연구해서 악보를 함께 읽어주고, 익숙해질 때까지 어르고 달래며 연습시킨다. 큰 선생님께서 주문하시는 대로 곡을 만들고, 하기 싫다고 드러누우면 갖은 방법으로 꼬신다. 나중의 영광은 아이의 몫이고, 감사는 큰 선생님이 다 받는다. 어쩔 수 없지. 난 유명하고 능력 빵빵한 선생님이 아니니까.


강사시절 7살부터 가르친 아이가 있었다. 악보 보는 법도 내가 알려주고, 연습도 몇 시간씩 함께 했다. 악보가 손보다 느린 아이라서 건반으로 곡을 가르쳐 외워서 콩쿠르를 내보냈다. 큰 선생님께 레슨 한번 안 받고 나갔다. 첫 콩쿠르에 2등을 했는데, 그 아이의 할머님까지 찾아오셔서 큰 선생님께만 고맙다고 하시고 갔다. 아직 침도 가끔 흘리는 어린아이를 달래며, 내 저녁식사로 싸 온 과일 먹여가면서 연습시켰는데.... 아무도 나한테는 고마워하지 않았다. 물론 아이도...


이런 썰만 풀어도 한 트럭은 된다. (나중에 기회가 된다면 한번 풀어 봐야지) 내 이름을 사사 "***"에 올려보는 게 소원이었다. 아니, 나는 당연히 올라가야 한다고 생각했다. 내 자식도 아닌 아이를 위해 밤새 곡 편곡을 하고 핑거링을 하고. 내 저녁식사도 먹을 시간 없이 일하면서 사비로 간식도 챙겨주고. 참 바보같이도 이뻤다. 아이들이. 한창 엄마랑 있고 싶을 저녁시간에 연습실에서 연습하는 아이들이 안쓰럽고, 뭐라도 더 해주고 싶었다.


하지만 그건 멍청한 내 착각이었다. 고마워해 주지 않는 것도 모자라 아무도 기억도 못한다. 저렇게 끼고 가르쳤던 아이들 모두 지금 잘 들 산다. 내 이름은 물론 나라는 존재는 잊고 말이다. 어차피 기억 못 하는데 사사에 이름 한번 올려보고 싶었다. 원장이 되고 나서 그 소원을 이뤘다. 별거 없었다. 똑같이 가르쳤고 사랑해 주었다. 그 팸플릿을 받아 들고 혼자 어찌나 감격스러웠던지. 공감능력이 마이너스에 가까운 남편이 그때 아주 짜증 났었다. 좀 축하 좀 해주지!!


아무렴 어떤가. 혼자서도 좋았다. 그래서 난 강사선생님들께 한 번도 손 많이 가는 학생들을 맡긴 적이 없다. 귀찮고 일 많은 건 내가 했다. 그리고 아이들한테 꼭 인사를 시킨다. 선생님께 인사하라고. 오고 갈 때 인사든 감사인사든...

나 같은 강사는 없었으면 좋겠다. 일한 만큼은 꼭 대우를 받았으면 한다. 물질적이든 마음으로든 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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