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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제크나인 Feb 12. 2021

아내에게 운전을 가르친다고?

나무 사이로 따사로운 햇살이 쏟아지는 주말 오후.


아내와 빨래 거리를 정리하고 있을 때 친구 녀석에게 모처럼 전화가 왔다.

모임 관련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다 주제가 아내의 운전으로 바뀌었다. 장롱면허 소지자 5년 차인 그의 아내는 그에게 운전 연수를 부탁했고 운전이라면 자신 있던 그는 '나만 따라오라'며 어깨에 잔뜻 힘을 줬다. 자신감은 시동을 켠 지 1분도 채 되지 않아 걱정으로 변했고 걱정은 얼마 못가 다시 분노로 바뀌었다.


그는 죽을 맛이라고 털어놨다. 어쩌면 그렇게도 운동신경이 없고 반사신경도 느린지 그리고 차선을 바꿀 때 좌우 옆을 보지도 않고 들어가 따가운 시선을 한 몸에 받았다며 봇물 터뜨리듯 가슴속 응어리를 뱉어냈다. 자칫 사고라도 났으면 어쩔 뻔했냐며 목소리 톤을 한껏 높이기도 했다.

 



나는 아내에게 운전을 가르쳐본 적이 단 한 번도 없다.

아니, 가르칠 일이 없었다.


이유는,

나보다 운전을 더 잘하기 때문이다.


아내와 연애까지는 아니고 썸을 타던 때였다. 호감은 있지만 같은 업계에서 일하고 있었기에 선뜻 말하기 어려웠던 어느 날 우리는 저녁을 먹기로 했다. 각자의 집에서 어느 정도 중간 위치인 방이동 먹자골목에서 만나기로 약속을 잡았다. 겨울이 꼬리를 내린 3월이었지만 차가운 바람에 저절로 옷깃을 여미게 되는 아직 쌀쌀한 날씨였던 걸로 기억한다. 버스를 타고 간 나는 아내보다 먼저 도착했다. 차를 가져온다는 아내의 말에 근처 가까운 주차장을 찾은 뒤 그 주차장으로 오라고 얘기했다.


꽃샘추위에 발을 동동 구르며 아내의 빨간색 차가 오기를 기다리고 있을 때 저 멀리서 기다리고 기다리던 빨간 차가 미끄러지듯 주차장으로 들어왔다.

끼익~~

몇 번의 깔짝거림 없이 단 한 번에 주차를 마친 뒤 아내가 내렸다.

색 트레이닝 바지에 빨간 조끼를 입은 아내는 “많이 기다렸지? 미안해”라고 말하며 큰 걸음으로 나를 향해 걸어왔다.


멋있었다.


낯선 곳까지 군말 없이 달려와 거침없이 주차하는 모습이 너무나도 멋있었다.

아무 일 없다는 듯 차에서 내려 자신 있게 걸어오는 모습.

트레이닝복과 정열의 빨간색이 이렇게나 잘 어울리다니.


김치찌개를 먹고 당구장 데이트를 마친 그날,

그날부터 우리의 진지한 만남이 시작됐다. 본격적인 연애를 시작하게 된 거다. 아내는 버스 타고 가려는 나를 데려다주겠다고 했다. 한사코 괜찮다 했지만 “빨리 타라” 한 마디에 조수석에 얌전히 앉았다.

집 앞에 내려다 주고 떠나는 빨간 차의 뒷모습이 사라질 때까지 그 자리에 서 있었다. 가슴이 쿵쾅 뛰었다. 이런 여자는 처음이었다.


결혼한 이후, 함께 어디를 가게 되면 운전은 항상 내가 하려 한다. 힘든 일은 아니지만 잠시라도 아내가 편히 쉬었으면 하는 마음에서다. 그러다 급하게 가야 하는 경우가 생기면 아내는 말한다.


“오빠, 오늘은 좀 빨리 가야 되니까 내가 운전할게”


나는 옆 자리로 가서 앉는다. 멋쩍었으나 최대한 자연스러워 보이려 했다.

그래도 그 사이 내 운전 실력이 좀 늘었는지 요즘에는 급한 일이 생겨도 운전을 나에게 맡긴다. 아내의 기대를 충족시키고 싶어 안전하게 빨리 가려한다.




친구 녀석이 쏟아내는 한 트럭 분량의 푸념을 들은 뒤 말했다.


“건방진 놈. 그 정도도 예상하지 못하고 가르치려고 든 거야? 뭔가를 알려주고 가르치려면 다 내려놓고 마음을 비워야지. 특히 아내한테는. 처음부터 잘하는 사람이 어딨냐? 그럴 자신 없으면 전문가에게 맡기든지.”


나보다 능숙한 운전을 하는 아내가 새삼 고맙게 느껴진다.


“날씨도 좋은데 요 앞에 드라이브 갈까?”

전화를 끊고 외출복을 집어 들며 아내에게 말했다.


“아니. 오늘 말고 내일 가자. 오늘은 그냥 집에 있자~”

“그렇지? 좀 귀찮지? 그러자~”


청바지에 넣었던 왼쪽 다리를 다시 빼내고 바지를 곱게 개킨 뒤 아내 옆에 앉는다.

반려견 '설이'가 품에 들어와 쏙 안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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