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제크나인 Apr 27. 2021

어린아이에게 인생의 기본을 배웠다

'인사'는 모든 인간관계의 기본이다.

아침 8시가 넘어 눈을 떴다.


일어나자마자 대충 옷을 챙겨 입고, 새벽부터 칭얼대던 반려견 '설이'를 데리고 산책을 나왔다. 이사온지 얼마 되지 않아 아직 적응 기간인지 시원하게 일을 못 보고 있어서다. 실내 배변 훈련도 하고 있지만 안타까운 마음에 아침, 저녁으로 설이와 산책 겸 동네 마실 겸 사부작사부작 걷고 있다.


아파트 단지 내 산책로로 가기 위해 출근을 재촉하는 두 대의 차량을 보내고 설이와 길을 건넜다. 건너편에는 유치원 버스를 기다리는 어린아이 예닐곱 명과 곁에 있는 것만으로도 든든한 엄마들이 함께 있었다. 아이들의 재잘대는 소리가 마치 아침을 깨워주는 싱그러운 새소리 같았다. 


아이들을 쓱 둘러보고 그 사이를 지나가려는 찰나에 제 몸만 한 노란색 가방을 멘 여자 아이가 나를 보고 크게 소리쳤다.

“안녕하세요~!!


그러자 다른 아이들도 덩달아 내게 인사를 하기 시작했다.

“안녕하세요~”


한 아이는 설이를 보며 “와~ 귀엽게 생겼다~”라고 친근감을 나타내기도 했다.


깜짝 놀란 나는 “응~ 그래. 안녕~” 하고 머쓱하게 화답했다.

아이들처럼 시원하게 인사하지 못한 것 같아 아쉬웠으나 그래도 인사를 주고받으며 소통했다는 것에 위안을 삼았다.


엘리베이터 안에서 다른 주민을 만나면 인사를 주고받는 것이 이젠 어색한 일이 아닐 정도로 자연스러워졌지만 어른이 아닌 어린이와 그것도 폐쇄된 공간이 아닌  트인 야외에서 인사를 나눈 것은 처음이었다.


입가에 흐뭇한 미소를 지으며 설이와 산책을 이어갔다. 단지 내 조성된 산책로를 따라 크게 한 바퀴 돌면 30분에서 40분 정도 걸린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아침, 저녁으로 쌀쌀한 감이 없지 않았으나 이제는 반팔 셔츠도 어색하지 않은 듯하다. 제일 끝에 위치한 동까지 갔다가 내려오는 길에 초등학생쯤으로 보이는 남자 아이와 여자 아이가 학교 가는 모습이 보였다.


풀냄새, 꽃냄새를 맡던 설이를 재촉하며 그 옆을 지나가는데 아이 두 명이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안녕하세요~”라며 나에게 인사를 했다. 고개를 돌려 아이들을 바라봤다. 초롱초롱하고 은 눈망울이 인상적이었다. 마스크를 쓰고 있었음에도 환하게 웃고 있는 표정이 보이는 것 같았다.

아침부터 여러 아이들에게 인사를 받으니 가슴속에 무지개가 걸린 것 마냥 들뜨고 벅찬 감정이 파도처럼 일렁였다.


“그래~ 안녕~ 학교 가는구나? 조심히 잘 다녀와~”

아까보다는 한층 안정적인 톤으로 인사를 건넸다.

“네~~”


분명 처음 보는 사이였고 더욱이 누군지 전혀 알지도 못한다. 그럼에도 아이들은 먼저 다가와 고사리손을 내밀었다.

낯선 사람에게 인사하는 것은 어른들도 쉽지 않다. 요즘처럼 흉흉한 세상에는 더욱 그렇다. 그럼에도 오늘 처음 본 그 아이들은 밝은 인사와 함께 활기차게 하루를 시작했다.


어린아이들이 건넨 짧은 인사에 나도 모르게 마음이 스르르 녹아버렸다. 새롭게 이사 온 이 곳의 만족도 또한 하늘을 찌를 만큼 높아졌다.


학창 시절, 버스를 탈 때마다 기사님께 인사하던 나를 떠올렸다. "안녕하세요~" 외치면 치열하고 고된 노동으로 일그러져 있던 기사님의 표정이 잠시나마 펴지면서 미소를 짓는 모습이 참으로 보기 좋았다.

인사를 하면 받는 사람도 기분 좋을뿐더러 하는 쪽도 상쾌한 기분이 든다.


모든 인간관계에 있어 기본 중의 기본은 인사다. 어떨 때는 특별히 다른 말 필요 없이 가벼운 인사만으로도 서로의 마음을 확인할 수 있다.


“안녕하세요~”

“좋은 아침~”

“잘 다녀와~”

“수고했어~”

"잘 지내?"

“잘했어~”

“맛있네~”

“잘 자~”


인사를 하는 방법과 문구는 각 상황에 따라 천차만별이다. 중요한 건 '표현하느냐, 하지 않느냐'다. 부모님께, 아내에게, 친구에게, 동료들에게, 우리의 소중한 사람들에게 말이다. 말하지 않고 표현하지 않으면 서로의 감정을 절대로 알 수 없다.


'인사를 할까? 말까? 어색한데.. 안 받아주면 어떻게 하지? 에이, 타이밍 놓쳤네.. 하지 말자.' 이러면서 어물쩍 넘어간 적도 있다.


물론 아는 사이, 친한 사이가 아니라면 굳이 인사할 필요는 없다. 다만 그렇게 되면 관계의 발전은 기대할 수 없다. 딱 거기까지다. 함께 엘리베이터를 타면 말없이 깜빡이며 움직이는 숫자만 볼뿐이다.


그동안 잠시 놓치고 있었,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것을 해맑고 순수한 어린아이들을 통해 배웠다. 인사는 모든 관계의 시작이다. '당신에게 관심을 가지고 있어요. 당신은 혼자가 아니에요.'라는 뜻이 내포되어 있다.


다음번에는 내가 먼저 큰 소리로 인사를 건네야겠다.


"안녕~ 얘들아~" 하고.

매거진의 이전글 맵부심의 DNA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