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는 예년보다 일찍 장마가 시작되는 것 같다. 몇 년 전 장마철엔 내가 사는 동네 주변이 침수되고 우리 아파트를 비롯한 주변이 정전이 되기도 했는데, 한여름 밤의 정전은 꽤 당황스러웠다. 창문을 열고 전기가 들어오기를 기다려봤지만, 결국 더위를 버티지 못하고 우산을 들고 장마비 속으로 나갔다. 새벽 하늘에서 쏟아져내리는 장맛비와 발등을 넘쳐 흘러가는 빗물은 문득 잊었던 어린시절의 기억을 떠올렸다.
아버지가 운영하시던 헌책방은 여고 옆 건물 지하에 있었다. 기존의 작은 곳에서 나름 넓은 공간으로 옮긴 것이었지만, 문제는 장마였다. 긴 장마철의 어느 날 가게 바닥에 빗물이 들기 시작했다. 건물 벽에 생긴 균열을 타고 스며든 것이리라 짐작은 했지만 벽에 늘어선 책장을 뜯어낼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책장으로 빽빽한 벽을 타고 내려와 바닥으로 스멀스멀—뱀처럼 기어 들어오는 물줄기는 닦아내도 금세 다시 흘러나왔다. 비가 하루 종일 내린다 싶으면 어김없이 빗물이 바닥에 고였고, 비가 그칠 때까지 계속 대걸레로 닦아내는 방법 외엔 없었다. 궁여지책으로 낮엔 어머니가 계시고, 아버지가 밤을 새워 가게를 지키셨다. 주말만큼은 녹초가 된 두 분을 대신해 형과 내가 하루씩 교대로 밤을 새웠다. 나는 그 무렵, 고등학생이었을 것이다.
장마, 새벽, 지하의 공간, 그리고 헌책들이 만들어내는 특별한 정적. 누군가 벌컥 가게 문을 열고 들어올 것 같은 기분까지 더하면, 이것들이 뒤섞여 만들어낸 공기는 특별했다. 천장까지 쌓인 헌책들의 독특한 냄새와 분위기는 그것들대로 속삭이는 듯 비밀스러움을 전달하고 있었다. 미로처럼 복잡한 책장들과 천정까자 쌓인 헌책더미들 그 자체도 나에겐 지하 비밀 기지같은 공간이었지만, 혼자 지새는 그 여름 새벽의 공간은, 비일상과 비현실적인 분위기로 다가왔던 것 같다.
한편 한쪽 바닥에서부터 스며 나오는 빗물은 마치 영화 ‘파이널 데스티네이션’에서 욕실 타일 사이로 인간을 쫓아다니던 물줄기처럼, 혹은 죽지 않고 다시 나타나는 공포 영화 속 악당처럼 섬뜩했다. 마치 고요한 책들과 나만의 세계를 침범하는 침입자처럼 느껴졌다. 나는 잠이 들지 않기 위해 라디오를 틀어놓고, '해방전후사의 인식' 같은 어려워 보이는 책들을 들춰보거나, 또 가벼운 옷차림의 누나들 사진집을 보기도 하면서 주기적으로 대걸래질을 해야했다. 지칠줄 모르던 장맛비는 늦은 새벽즈음 잠시 그쳤고 아침에는 무사히 인수인계를 할 수 있었다.
그 일은 몇 년 뒤 마침내 건물주가 보수를 해줄 때까지 장마철마다 반복되었다. 그럼에도 아버지와 어머니는 그 지하 공간에서 이후로도 십 년 가까운 세월을 책들과 함께 살아냈다. 아침마다 문을 열고 무거운 책더미들을 나르던 어머니. 헌책을 닦고 책장을 넘기던 그 거친 손. 여름, 겨울 가리지 않고 자전거로 헌책을 산처럼 실어오던 아버지. 딱딱하게 굳고 갈라진 그의 손가락들. 지금도 장마가 시작되면 그 새벽, 지하 책방의 공기가 떠오른다. 무거움. 눅눅함. 숙연함. 그리고 어느 구석 낡은 책 속에 굉장한 이야기가 숨어 있을 것만 같은 희미하고 은밀한 흥분이 거기에 있었다. 그 모든 감각은, 그 여름 새벽 어른의 의무와 소년의 도피 사이 어느 경계선 위에 서있던 나의 모습이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