얕은 독서일기

by 김정민

책을 꾸준히 읽는 편이다. 다독은 아니고, 하루에 조금씩 읽어간다. 작년엔 17권을 읽었고, 올해도 그 수를 넘어설 것 같다. 이런 습관이 오래된 건 아니다. 대략 5년 전쯤, 인간관계가 희미해지고 내 안이 비어 있다고 느껴졌을 때, ‘책이라도 부지런히 읽어보자’는 생각으로 시작했다. 퇴근 후 카페에서 한두 시간씩 읽는 분량은 많지 않다. 어릴 적엔 해가 지는 줄도 모르고 책에 빠져들곤 했지만, 그런 집중력은 이제 도무지 끌어낼 수 없다. 비문증도 심해져 눈이 쉽게 피로해지니, 장시간 독서는 힘들다. 요즘은 전자책으로 꾸준히 읽는 사람들도 많지만, 나는 잘 안 된다. 책 한 권을 한 번 읽는다고 해서 온전히 흡수되지 않기 때문일까. 아니면, 독서 후에 실물 책을 방 안에 두며 그것이 ‘읽었다’는 증거가 되어주길 바라는 마음 때문일지도 모른다.


아마도, 어릴 적 아버지가 운영하던 헌책방의 기억이 남아 있어서일 것이다. 천장까지 닿은 책들의 미로 속을, 나는 보물을 찾듯이 돌아다녔다. 아버지는 더위와 추위를 견디며 고물상에서 책을 골라와 먼지를 털고, 연필자국을 지우고, 가격표를 떼어냈다. 그리고 그 책들을 복잡한 책장 어딘가에 던져 올려두었다. 손님이 흥정을 시도하면 아버지는 퉁명스러웠다. “흥, 거지 같은 놈들 같으니.” 어머니는 그런 아버지를 걱정스런 눈빛으로 보며 “그렇게 말하지 말고 좀 팔라”고 했지만, 아버지는 좀처럼 책을 팔 생각이 없어 보였다. 자정까지 헌책을 닦고 정리하던 그의 모습은 고집스럽고 고요했다. 배우지 못했던 아버지에게 그 헌책들은 어쩌면 위로 같은 것이었을 것이다. 그리고 나는, 내 방에 쌓여가는 책더미를 볼 때마다 그 헌책방의 냄새를 문득 떠올린다.


꾸준히 책을 읽다 보면 매일 손이 가는 책이 있는가 하면, 좀처럼 읽히지 않는 책도 있다. 그럴 때면 쓴 약을 삼키듯 꾸역꾸역 페이지를 넘긴다. 시작한 독서를 도중에 멈추는 건, 내 삶의 많았던 포기들 위에 또 하나를 쌓는 일처럼 느껴진다. 그래서일까, 책과 씨름하다 보면 결국 무엇이라도 내 안에 남을 것이라는 막연한 믿음이 생긴다. 반면에 마음에 드는 책을 발견하고 그 책을 읽는 시간만큼 즐겁고 또 그 끝이 아쉬운 것도 없다. 그렇게 책을 읽다 마음에 드는 문장을 만나면 무의식 중에 손가락으로 그 글을 더듬는 나를 발견한다. 사랑하는 이의 얼굴을 만져보는 것처럼.


퇴근 후 책을 읽는다고 하면 사람들은 어떤 책을 읽느냐고 묻는다. 그럴 때면 늘 난처하다. 양으로 따지면 인문학 부류를 많이 읽지만, 그렇다고 소설이나 시를 멀리하는 것도 아니다. 가끔은 만화책도 본다. 인문학 서적 가운데 대중서로 나온 책들은 읽기 쉽지만, 내용이 평이해 맥이 빠질 때가 있다. 마치 0:0으로 끝난 스포츠 경기를 끝까지 본 느낌이다. 반면 인문학의 고전들은 난해의 미로에 가깝다. 절반이 주석으로 채워진 페이지를 넘기다 보면 내가 어디를 읽고 있었는지도 잊게 된다. 그들이 인용하는 레퍼런스나 미묘한 언어의 뉘앙스 차이를 모르는 나 같은 무지한 독자에게는 결국 대중교양서가 제격이지만, 그래도 가끔은 다시 고전을 펼쳐보고 싶다. 이해하지 못하더라도, 언젠가 그 문장들 사이에서 길을 잃고 싶을 때가 있다. 역시 아버지의 그림자일까. 내 안에 채워지지 않는 무언가를 느끼며, 방안에 높아져 가는 책들을 보며 조금은 안도하는 나의 모습. 그 책들은 아마도 내가 닿을 수 없는 세계를 나 대신 오르고 있는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