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5월에서 7월 사이, 브런치에 집중적으로 올린 서른 편 남짓의 글을 묶어 원고를 만들었고, 9월 초부터 출판사들에 투고하기 시작했다. 지금까지 서른 곳이 넘는 출판사에 메일을 보냈다. 처음엔 이름이 알려진 유명 출판사들로 시작했고, 점점 중소형 출판사로 옮겨갔다. 어떤 곳은 정중한 거절의 메일을 보냈고, 어떤 곳은 검토에 몇 주에서 몇 달이 걸린다는 답신을 보내왔다. 하지만 대다수는 아무런 응답이 없었다. 어떤 메일은 열리지도 않았다. 마지막으로 투고한 지 이제 3주가 지났다. 아마 한두 주 더 기다려보다가, 크지 않았던 출판의 기대를 완전히 내려놓게 될 것 같다.
브런치에 글을 올리는 일은 나쁘지 않다. 플랫폼 자체가 좋아서 꾸준히 글을 쓰게 만드는 힘이 있다. 하지만 문득 의문이 들었다. 과연 이 글들이 정말 ‘누군가에게 닿고 있는가.’ 서른 편을 넘기자 하루에 한두 편 정도가 검색을 통해 읽히곤 했지만, 그게 전부였다. 예전에 새 인스타그램 계정을 만들어 아이패드로 그린 그림을 올렸을 때도 비슷했다. 그림을 올린 순간에는 집중적으로 ‘좋아요’를 받았지만, 대부분은 나처럼 그림을 올리는 사람들이었다. 자신들의 리그 안에서 서로 품앗이를 하는 것이었다. 그리고 조회수는 침묵했다. 연결되어 있으나, 실은 아무에게도 닿지 않는 세상. 네트워크로 연결된 세상의 과실은 내 것이 아니었다. 브런치도, 출판시장도 다르지 않은 듯하다.
물론, 출판업계를 탓하기 전에 내 글을 먼저 돌아봐야 한다. 이제 겨우 알량한 일기 같은 에세이 삼십 편을 써놓고, 그 글들이 곧바로 대중의 공감을 얻길 바란 건 어쩌면 오만이었다. 로또 한 장을 사고, 내가 고른 여섯 개의 숫자에 어떤 계시와 의미가 깃들어 있다고 최면을 거는 경험처럼. 사적인 글들을 써놓고 이 세상 누군가와의 극적인 조우를 기대했던 마음은 풍선처럼 부풀었다가 이내 꺼졌다. 나는 다시 묻는다. 진정 나만의 경험과 사유, 그리고 공감의 기술을 만들어냈는가. 아니면 그저 세상의 소음 속에서, 조용히 사라지는 문장들을 남겼을 뿐인가.
물론 글쓰기가 내게 주었던 긍정의 작용까지 부정하진 않는다. 나는 분명, 삶의 어두운 터널을 글쓰기를 통해 벗어날 수 있었다. 그 사실만큼은 다시 고백하고 싶다. 다만 불안하다. 타인의 공감과 피드백 없이 계속해서 작업을 이어갈 수 있을지, 나는 그만큼 글쓰기에 진심인지, 그 자신이 없다. 세상 누군가의 그림과 노래, 글들이 지금 이 순간에도
어딘가에서 외로움과 불안 속에 피어나고 있을 것이다. 그 사실을 떠올리면, 나는 부끄럽고 동시에 숙연해진다. 검게 타들어가는 그들의 가슴과, 그럼에도 다시 피어나는 재능, 굴하지 않는 노력들에 마음 깊이 경의를 표하며—
오늘의 나는 잠시 술잔을 들어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