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전세 원룸에 사는 김부장 이야기

by 김정민

요즘 비슷한 이름의 드라마가 종영되면서 SNS에는 감상과 비평이 쏟아진다. 나는 아직 보지 않았고, 아마 끝내 보지 않을 것 같다. 재미있는 드라마라면 장르를 가리지 않지만, 내 현실이나 기억과 너무 근접한 서사는 마치 인간과 로봇 사이의 ‘불쾌한 골짜기(Uncanny valley)’를 마주하는 것처럼 꺼려진다. <응답하라 1994>가 추억과 동시에 젊은날의 아쉽고 씁쓸했던 기억을 데려올 것 같았듯, <서울... 김부장 이야기>는 내 현실 저편에 묻어둔 어두운 감정을 기어이 길어 올릴 것만 같다. 화면 속에서 생생하게 복원된 나의 초라함을 마주할 용기가 내게는 없다.


​나는 서울 강남의 원룸 전세에 살고 있고, 대기업을 다니는 7년 차 김부장이다. 이 두 문장의 조합은 언밸런스해 보일 것이다. 큰 투자 실패가 있었던 것도, 가족의 빚을 떠안은 것도 아니다. 그저 쉰을 바라보는 나이에 미혼이라는 점, 부동산이나 내 집 마련에 둔감했던 무심함이 쌓여 5년째 강남지역에서 원룸 생활을 하고 있을 뿐이다. 하지만 동년배들의 대화에서 주식 수익률과 대형차 구입과, 아파트 평수 이야기가 오갈 때, 나는 문득 섬처럼 고립된다. 모두가 어디론가 바쁘게 향하고 있을 때, 나는 제자리걸음을 하는 것이 아니라 서서히 뒤로 밀려나고 있다는 서늘함. 그것은 타인의 지적이 아니라 스스로에게 던지는 질문이다. ‘나는 실패했는가, 혹은 비정상인가.’


​아마도 드라마 속 김부장은 ‘몰락’한 자신을 용기 있게 인정하고 가장의 무게를 짊어진 채 새 삶으로 나아갔을 것이다. 하지만 나는 그 ‘몰락’이 여전히 두렵다. 성취를 지향하지 않는데도 몰락이 두려운 까닭은 나도 알 수가 없다. 다만 성취에 투자할 용기도, 몰락을 마주할 배짱도 없는 나약함이 지금의 나를 이 비좁은 원룸에 가두고 있는지도 모른다. 진취적인 이직도, 과감한 투자도 낯설기만 한 사이, 내가 선 자리는 조금씩 아래로 미끄러진다. 이 미끄러짐의 끝에는 단단한 평지가 있을까. 매일 밤 은행 계좌를 들여다보며 숫자가 주는 안도감을 가늠해 보지만, 가보지 않은 곳에 대한 정보는 불확실하기만 하다.


​적절한 비유는 아닐지 모르지만, 나는 때때로 이름도 없이 경기장에서 사라질 글래디에이터가 된 기분이 든다. 하루하루를 살아내는 것이 목표인 삶. 그런 글래디에이터에게 호사스러운 집이나 장밋빛 내일이 무슨 의미가 있을까. 퇴근 후 현관문을 열면 한눈에 들어오는 원룸이라는 극히 기능적인 대기실이, 지금의 나에게는 가장 정직한 옷처럼 어울린다. 가정을 책임지는 무게를 느끼면 삶의 방향이 선명해질까 생각한 적도 있다. 하지만 내 안에도 없는 길을 타인에게서 찾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을까. 그렇게 20년이 넘게 매일 전장에 나섰지만 그 하루하루가 내일의 희망을 붙들 수 없는 날들이었다는 슬픈 역사를 안고, 도망치지도 뛰어오르지도 못한 채 서서히 미끄러지는 나를 느낀다.


그러나 확실한 것 하나는, 나는 오늘도 어쨌든 살아서 이 좁은 방으로 돌아왔다는 사실이다. 살아서 돌아온 자에게는 희망을 붙들 의무도, 그것을 잠시 미뤄둘 자유도 있다. 몰락을 두려워하는 마음은 역설적으로 내가 아직 삶을 완전히 포기하지 않았다는 가장 미약한 증거다. 내일이 두려운 것은 내가 여전히 고개를 들고 내일을 향하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나는 지금 행복을 정의하지도, 그곳을 향해 달려가지도 못한다. 하지만 아직 돌아서지도, 절망하지도 않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