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사랑한 노래들

세상을 건너는 노래

by 김정민

대학 시절 대부분의 시간을 노래패에서 보냈다. 과 신입 OT에서 ‘아침이슬’을 부르자 선배가 진지한 표정으로 노래패에 들어가보라고 권했고. 그렇지 않아도 수험 생활 동안 노래에 목말라 있던 나는 그 길로 대강당에 있던 중앙노래패 동아리방을 찾았다.


대학 신입생이 된 나는 80년대의 격렬함이 썰물처럼 빠져나간 텅빈 자리에 서 있었다. 민주화는 이루어졌지만 캠퍼스의 열기는 식었고, 그 자리를 채운 것은 개인과 경쟁 그리고 세계화라는 낯선 단어들이었다. 우리는 지나간 이념과 남겨진 현실 사이, 집단과 개인 사이의 어딘가 놓인 '경계인'이었다. 뜨거운 시대 정신은 멀리 있었고 대학생의 낭만과 흥청거림은 가벼워 보였다. 과 신입 OT에서 선배들은 어깨를 맞대고 스크럼 짜는 법을 가르쳤지만 무엇에 저항해서인지는 알려주지 않았다. 내가 노래패에 안착한 것은 어쩌면 그 경계에 서있는 불안함을 조금이라도 해소하고자 했던 것일지도 모른다.


노래패에서 알게된 민중가요라는 장르도 나에게 새로운 것이었지만, 그 외에도 많은 가수들을 알게되고 그들의 노래를 듣고 따라 불렀다. 그 시절 우리가 사랑했던 가수들은 저마다의 방식으로 시대의 공기를 담아냈는데, 그 중에서도 김광석은 통기타 하나로 1000회 공연을 기록한 대표 가객이었다. 96년 아쉽게 세상을 떠났지만, 동아리방에선 늘 누군가 그의 노래를 부르고 있었다. 그의 노래에 담긴 절절함과 허무함은 단순히 개인의 서정을 넘어, 풍요 속에 방황하던 90년대 청년들의 공허함을 건드렸다. 홀로 밤을 새우는 듯한 쓸쓸함으로 노래하는 그의 목소리는, 어디에서도 온전히 속할 수 없던 나 같은 경계인에게 위안이 되어주었다.


오늘도 너를 느낀다 작은 설레임으로 / 어두운 곳에서 너만은 변함이 없구나 / 네 숨결이 널리 내게로 들려올 것 같으니 / 진정 너의 그 향기는 날개가 있구나 -김광석, ‘맑고 향기롭게’


세상은 온통 변해가는데 '어두운 곳에서 너만은 변함이 없구나'라고 노래하는 이 구절은, 변화의 혼란 속에서 붙잡고 싶었던 순수한 가치, 혹은 나 자신의 가장 깊은 곳을 향한 다짐처럼 들렸다


나는 김민기 님의 노래를 자주 불렀다. 그는 그 특유의 저음과 아름다운 노랫말을 통해, 잊혀 가던 삶의 자리와 사람에 대한 애정을 되새겼다. 그의 노래는 우리가 발 딛고 선 현실을 외면하지 않게 하는 뿌리였다. 지나간 이념과 마주한 현실 사이에서 부유하던 우리에게, 그의 노래는 잠시나마 발 딛을 땅이 되어주었다.


검푸른 바닷가에 비가 내리면 / 어디가 하늘이고 어디가 물이요 / 그 깊은 바닷속에 고요히 잠기면 / 무엇이 산 것이고 무엇이 죽었오 / 눈 앞에 떠오는 친구의 모습 / 흩날리는 꽃잎 위에 아른거리오 -김민기, ‘친구’


안치환 님은 까마득한 동아리 선배였다. 메이저 무대에도 오르고 있어 우리에게 자랑이었고, 그의 일침 같은 노래들은 부르는 쾌감이 있었다. 그는 노동자와 약자의 현장을 떠나지 않고 부조리한 현실을 노래했고 우리는 기꺼이 그의 편에서 노래하고 싶었다. 그의 노래를 부르는 순간만큼은, 회색 지대의 경계인이 아니라 선명하게 약자의 편에 설 수 있었다..


만인을 위해 내가 싸울 때 / 나는 자유 자유 자유! / 피 흘려 함께 싸우지 않고서야 / 어찌 나는 자유다! 라고 노래할 수 있으랴… – 안치환, ‘자유’


그러나 당대의 모순을 가장 날카롭게 해부한 이는 정태춘이었다.


강물 위로 노을만 잿빛 연무 너머로 번지고 / 노을 속으로 시내버스가 그 긴긴 다리 위 / 아, 흐르지 않는 강을 건너 아, 지루하게 불안하게 / 여인들과 노인과 말 없는 사내들 그들을 모두 태우고 건넌다 / 아무도 서로 쳐다보지 않고, 그저 창 밖만 바라볼 뿐 / 흔들리는 대로 눈 감고 라디오 소리에도 귀 막고 / 아, 검은 물결 강을 건너 아, 환멸의 90년대를 지나간다 / 깊은 잠에 빠진 제복의 아이들 그들도 태우고 건넌다… - 정태춘, ‘건너간다’


그만큼 90년대를 냉정하게 노래한 가수가 있을까? 삼풍백화점, 성수대교가 무너지고 IMF 사태에 서민들은 추락하고 있었지만, 라디오에서 나오는 명랑한 노래들과 함께 버스나 지하철은 우리들을 낯선 세계화, 신자유주의 어딘가로 실어 날랐다. 정태춘은 그 균열을 정면으로 응시하고 ‘환멸의 90년대'를 노래했다. 우리는 그의 노래들을 음미하며 어느 평론가의 비평보다 날카롭고 뉴스 기사보다 생생한 현실을 직시할 수 있었다. 그의 노래는, 사회의 빛과 그림자 그 경계를 흐릿하게만 의식하던 우리들에게, 시대의 가장 정직한 지도였다.


매주 월요일 동아리 총회가 끝나면 어김없이 뒤풀이가 있었다. 뒤풀이는 꼭 노래를 부를 수 있는 장소여야 했지만, 그런 곳은 많지 않았다. 그마저 우리가 합창이라도 하면, 술집 주인 분들은 정색을 하곤 했다. 우리는 왜 그렇게 열심히 노래를 불렀을까. 옆 테이블의 낯선 손님들이 의아한 얼굴로 바라볼 때도, 우리는 그들조차 우리들의 노래에 공감할 수 있으리라 믿었다. 감정 표현에 서툴렀고 관계도 낯설었던 우리는, 노래를 통해서 솔직해질 수 있었다. 노래는 나에게 사람과 사람 사이 경계를 건널 용기를 주는 무엇이었다. 우리가 부르던 노래의 가사들은 분노와 냉소, 그럼에도 버릴 수 없었던 희망, 찢어질 듯한 외로움이 담긴 날것을 담고 있었다.


이제 우리는 그때처럼 노래하지 않는다. 돌아보면, 그 시절의 진심은 노래 속에 가장 잘 담겨 있었다. 노래는 우리를 이어주는 언어였고, 서로의 낯선 섬을 잇는 다리였다. 노래는 많지만 진정성이 사라진 시대. 우리가 더 이상 목청껏 노래하지 않게 된 것은 어쩌면 자연스러운 귀결일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지금 시대의 언어는 무엇일까? 광장이 해체되고 플랫폼이 그 자리를 대신한 시대, 진심 어린 공명이 '좋아요'라는 숫자로 대체되는 시대에 분노와 희망 같은 날것의 감정을 표현하고 시대의 균열을 정직하게 비춰주던 그 노래들의 역할을 과연 무엇이 대신할 수 있을까? 어쩌면 이 글이 그 사라져버린 노래를 대신하려는 나의 가장 서툰 몸짓인지도 모른다. 지금 내가 부를 수 있는 유일한 노래이기에.


내 타전소리가 누구의 마음 하나 울릴 수 있을까? / 누구의 가슴 위로 실려갈 수 있을까… - 안치환, ‘귀뚜라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