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해 여름

무덥고 무겁던 그 여름에 부쳐

by 김정민

팔 차선 횡단보도 앞에 이르자 붉은 신호였다. 묵직한 보따리들을 두 발 옆에 내려놓았다. 땀방울이 흘러 들어 맵싸해진 눈자위를 닦아냈다. 젖은 손바닥은 옷자락에 함부로 문질렀다. 맞은편에서 완강하게 붉은빛을 내쏘고 있는 신호등을 노려보았다. 고개를 꺾어 하늘 한복판에서 작열하고 있는 태양을 올려다보았다. - 한강 「어둠의 사육제」 중에서 -


한강 작가의 장편 하나를 읽었다고 하자, 이 작가의 필력은 초기 단편에서 확인할 수 있다고 후배가 호기롭게 말했다. 그 길로 나는 한강 작가의 단편집 「여수의 사랑」을 읽었다. 책 띠지에는 소설이 93년에서 94년까지 쓰였다고 적혀 있었다. 그리고 책 속 문장들 사이로, 지독히도 무더웠던 1994년의 여름이 튀어나왔다. 단편 속 사건들은 조용해 보였지만, 그 속에는 언제 터질지 모를 트라우마와 감정의 잔해들이 가라앉아 있었다. 모두가 무언가로부터 상처 입었고, 고통은 말없이 흐르고 있었다. 마치 침묵하는 고통의 연대기 같았다. 순탄치 않았던 한국의 현대사가 우리들 내면에 깊은 상처를 남겼다고, 작가는 말하고 싶었던 것이 아닐까. 1994년은 최근까지 가장 무더운 여름과 최장기 열대야로 기록된 해였다. 나는 그해 고 3 이었고, 숨 막히는 여름 더위 속에서 책상에 붙어 있어야 했던 기억이 되살아났다. 누군가는 그 무더운 여름날 땀을 흘리며 자신 만의 글을 써 내려갔구나, 불확실한 걸음을 한발 딛었구나 생각하니, 작가와 같은 시대를 살고 있다는 사실이 새삼 와 닿았다.


김일성 사망 소식을 들은 건 7월 초 토요일 오전 수업을 마친 하굣길이었다. 우린 잠깐, 수능이 취소될지도 모른다는 터무니없는 희망을 품기도 했다. 그리고 곧, 기록적으로 더웠던 그해 여름이 찾아왔다. 이례적으로 짧은 장마가 끝난 뒤, 기록적인 열대야가 시작되어 전국이 부글부글 끓기 시작했다. 당시 에어컨은 아직 보급률이 높지 않았고, 학교 독서실에서는 저녁이 되면 그마저 꺼버리곤 했다. 밤엔 오히려 집 안보다 마당이 더 시원해서, 나는 스탠드 전등을 끌고 나와 평상에서 공부를 하곤 했다. 공부가 잘되진 않았다. 1년 전부터 시작된 수능 전형은 선생님들도 아직 혼란스러워했고 각 대학의 본고사 전형은 알아서 준비해야 했다. 모의고사에서 1 지망에 지원한 학과들은 번번이 떨어졌지만, 11 월에 있을 수능 전까지는 할 수 있는 걸 해봐야 했다. 새벽마다 무거운 책가방과 도시락 두 개를 들고 시내버스를 탔고, 경사가 높은 학교 언덕을 걸어 올랐다. 아침부터 땀에 젖어 도착한 교실엔, 시체처럼 엎드린 아이들이 있었다. 그리고 그 사이에는 미리 열어버린 반찬 냄새, 시큼한 땀 냄새와 함께 좌절이라는 공기가 있었다.


그나마 음악은 수험이란 사막의 오아시스 같았다. 1학년 때는 학교 합창부에 들어갔지만 학업에 방해가 될 걸 염려한 가족의 반대로 그만 둔 이후, 난 노래에 목말라 있었다. 당시엔 서태지의 노래가 한창 인기였지만, 나는 친구가 들려준 김광석의 노래에 빠져들었다. 틈이 나면 기타를 들고 그의 노래를 불렀다. 자기 전에 라디오에서 들려주는 가요와 팝송을 들었고 주말엔 독서실을 핑계로 집에서 나와 교회 성가대에 서곤 했다.


여름 방학을 맞아도 갈 곳은 학교 독서실 밖에 없었다. 독서실은 내신 석차대로 자리가 배정돼 있었고, 안쪽 구석부터 문과 1등과 이과 1등이 마주 보고 앉았다. 도서실 자리만 봐도 우린 누구의 내신 석차를 알 수 있었다. 중간, 기말고사 석차에 따라 매번 자리는 바뀌었고, 내신 석차로 그어진 보이지 않는 선은 독서실 안쪽과 바깥쪽 자리 사이에 항상 긴장감을 만들었다. 나와 마주 앉은 문과 녀석은 그러거나 말거나 러닝 바람으로 소설이나 만화책을 읽곤 했는데, 그때마다 나는 복잡한 감정을 느꼈다.


밤 10시가 되어 학교 독서실 문이 닫히면 우린 가방을 메고 우르르 교문으로 몰려나왔다. 늦은 시간이었지만, 과목당 백만원이 넘는다는 본고사 대비반 학원차는 내신 석차 높은 아이들 몇을 태우고 사라졌다.

“전쟁 같은 거 안 나는 거야?”

누군가 툭 던졌지만, 우리는 터벅터벅 말없이 언덕을 내려갔다.

숨 막히던 그 여름 밤의 무게. 성공과 실패라는 이분법으로 우리를 가르던, 지금은 익숙해진 그 현실에 대한 나의 본능적인 불편함과 회의감은, 아마도 그 여름의 공기로부터 시작되었을 것이다.


모두 그것을 미친 여름이라고 불렀다. … 마치 밤이 왔으므로 이제는 모든 것을 용서받았다는 것처럼, 더 이상 죄지을 필요도 뉘우칠 필요도 없다는 것처럼, 등과 어깨를 겹겹이 포갠 그들은 옆과 뒤를 살피지 않고 앞 만을 향해 피로한 미소를 지으며 지하보도를 흘러가고 있었다. - 한강 「어둠의 사육제」 중에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