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에 옳은 손은 없다

ft. 양손잡이

by 김정민

나는 왼손잡이다. 의식이란 것이 생길 무렵부터 난 남들과는 다른 이 정체성을 강요받아왔다. 수저를 들고, 글씨를 쓰고, 가위를 쓸 때도 주위 사람들은 불안하게 나를 바라봤고 실수라고 할 때면 거보라는 듯이 그러니까 왼손이 아니라 오른손으로 해야지 라고 말했다. 그럼에도 나는 왼손을 사용했고 왼손잡이라는 말은 반항과 부적응의 꼬리표처럼 나를 따라다녔다. 왼손은 교정의 대상이었다. 왼손으로 연필을 잡으면 손 날로 글씨를 훑어 공책을 더럽혔고, 가족과 선생님의 잔소리는 끝없이 이어졌다. 결국 글씨 쓰는 손만은 오른손으로 바꿨는데, 주변의 잔소리들과 나 자신 사이에 어떤 타협을 했던 것 같다. 그 후로 나는 글씨는 오른손으로 쓰고 나머지는 왼손으로 하는 두 방향의 몸으로 살아왔다.


글씨 쓰는 손을 바꿨음에도 삶은 여전히 불편했다. 오른손 가위를 오래 쓰면 왼손이 아팠다. 밥상머리에서 왼손으로 숟가락을 들면 옆 사람과 부딪힌다며 가족에게 핀잔을 들었고, 그렇게 나는 밥상 앞에서 눈치를 보는 사람이 되었다. 야구를 할 때 오른손에 낄 글러브는 없었다. 공을 받으면 왼손의 글러브를 벗고, 다시 왼손으로 던져야 했다. 체육시간에 농구나 배구 실습을 하기 위해 줄을 설 때도 나는 늘 반대편에 서 있던 소수였다. 모두 같은 쪽으로 움직일 때, 나는 혼자 그들의 시선을 받으며 어색하게 몸을 옮겼다. 그 순간들이 쌓이며 나는 느리고, 어설프다고 믿게 됐다. 초등학교 운동회에서는 반시계 방향의 곡선 주로를 돌고 나면 늘 뒤쳐졌고, 그래서 나는 달리기를 못한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중학교에서 처음으로 100 미터 직선 달리기를 했을 때, 그게 착각이었다는 걸 알았다. 내가 틀린 게 아니라, 방식이 나에게 맞지 않았던 것이다.


사람들은 가끔 말한다. “양손을 써서 좋겠다. 머리도 좋을 것 같다.” 하지만 그건 오해다. 나는 자발적으로 양손을 쓴 게 아니라 사회가 만든 기준에 맞추기 위해 한쪽 손을 억지로 쓰게 된 사람이다. 그게 장점이 되었는지, 결핍이 되었는지는 모르겠다. 다만 확실한 건 누군가를 '사회에 걸맞게' 바꿀 수 있다고 믿던 시대를 내 두 손이 여전히 증언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번진 글씨를 나무라기에 앞서 왼손으로 그린 그림을 칭찬해줬더라면, 밥상머리에서 왼손을 쓴다고 면박을 받지 않았다면, 왼손을 쓴다는 것이 조금은 특별하다고 말해 주었다면, 나는 조금 덜 움츠러들고 조금 더 나 답게 자랄 수 있었을까.


되돌아보면, 나는 일찌감치 경계의 시선을 받았던 것 같다. 왼손과 오른손의 경계. 나 다운 것과 세상이 옳다고 말하는 것의 경계. 그 위태로운 시선을 의식하며 경계를 벗어나지 않으려 손을 바꾸고 남들과 닮으려 애써 보기도 했다. 하지만 결국 '옳은 손', '바른 손'이란 없다. 압도적으로 많은 사람들이 쓰는 손이 있을 뿐. 그 부조리를 일찍이 몸으로 깨친 덕분에, 나는 오히려 세상이 옳다고 가르치는 바를 본능적으로 의심하게 되었는지도 모른다. 하나의 기준이 모든 것을 재단할 수 없다는 것. 그것이 강제로 손을 바꾸면서 내가 얻은 유일한 소득이었다면 과장일까.


나는 아직도 왼손으로 그림을 그리고, 오른손으로는 글을 쓴다. 왼손은 아직 날카로운 테마를 잡지 못하고 오른손은 여전히 아름다운 문장을 찾지 못한다. 내 몸은 사회에 맞춰 길들여졌지만, 내 감각은 끝내 길들여지지 않았다. 그래서 나는 양가적인 사회성을 가졌다. 하나는 어디에도 완전히 속하지 못하는 불편함, 그리고 다른 하나는, 남들과 조금 다르다는 자의식. 그 사이에서, 나는 옳지도 그르지도 않은 두 손으로 오늘도 나를 써 내려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