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You aint heavy Apr 09. 2021

결정장애란 말, 꼭 써야만 할까?

"뭐 먹으러 갈까?"

"글쎄... 네가 한 번 골라봐! 나는 결정장애가 있어서..."

"..."


 결정장애, 선택장애라는 말을 흔히들 사용하곤 한다. 브런치에만 해도 '결정장애'란 말을 검색하면 수백 개의 글이 쏟아진다. 최근에 생긴 신조어이긴 하지만 그만큼 많이들 사용하고, 별 거리낌 없이 통용되는 말일 것이다.


 결정장애라는 용어는 정신과적 병명이나 정식 장애명은 아니다. 그저 결정 혹은 선택을 잘하지 못하는 사람에게 재치있는 표현으로 사용하거나, 그러한 자신을 가볍게 비하하는 의미로 사용된다. 주된 예로 등장하는, 자장면이냐 짬뽕이냐의 고민은 예나 지금이나 늘 난제 중의 난제다. 선택해야 할 것들이 홍수처럼 범람하는 이 시대를 반영하며, 결정장애라는 말은 시작되었는지도 모르겠다.



사진출처 : EBS 세상의 모든 법칙 [나도 결정장애가 아닐까?]


 그런데 결정장애라는 말을 한 번 뜯어보고자 한다. '결정 + 장애'라는 말은 '결정을 + 잘하지 못하는 것'이란 뜻의 합성어이다. 앞에 붙은 '결정'이란 말은 동일하니, '장애'라는 말은 곧 '잘하지 못하는 것'이란 말과 동일한 뜻이 된다. 결국엔 장애는 무언갈 하지 못하는 상태 혹은 능력의 부재란 뜻으로 사용되는 것이다.



정말로 장애는 무엇인가를 해낼 능력이 없다는 뜻일까?



 "왜 결정장애란 말을 쓰셨어요?"
짧은 한마디였다. 그건 질문이 아니었다. 나의 잘못을, 더 정확하게는 혐오표현을 하지 말자던 사람이 결정장애라는 말을 사용하는 모순을 지적한 것이었다. 많은 장애인들이 참석해서 듣고 있던 자리에서 나는 내가 '장애'라는 말을 어떻게 사용하고 있는지 의식조차 못하고 있었다.
(중략)
 결정장애라는 말이 왜 문제인지 제대로 이해하기 위해 장애인 인권운동을 하는 활동가에게 전화를 걸어 물어보았다. 그는 우리가 일상에서 얼마나 습관적으로 장애라는 말을 비하의 의미로 사용하고 있는지에 대해 설명해주었다. 무언가에 '장애'를 붙이는 건 '부족함' '열등감'을 의미하고, 그런 관념 속에서 '장애인'은 늘 부족하고 열등한 존재로 여겨진다.
(중략)
 생각해보면 차별은 거의 언제나 그렇다. 차별을 당하는 사람은 있는데 차별을 한다는 사람은 잘 보이지 않는다. 차별은 차별로 인해 불이익을 입는 사람들의 이야기다. 차별 덕분에 이익을 보는 사람들이 나서서 차별을 이야기하는 경우는 별로 없다. 차별은 분명 양쪽의 불균형에서 일어나는 일이며 모두에게 부정의함에도 희한하게 차별을 당하는 사람들만의 일처럼 이야기된다.

-김지혜, [선량한 차별주의자] 중에서-


 혹자는 이런 불편함을 제기하는 목소리에 '예민하다'는 평가로 맞받아칠지도 모른다. 처음엔 나도 그랬으니까. 부끄럽지만 특수교사라는 직업을 가지고서도 '이건 너무 예민한 거 아닌가?', '뭐 이 정도로 차별적 표현이란 말인가?', '위트 있는 말 정도라 생각할 수도 있지 않을까?'라고 생각했던 적이 있었다. 하지만 들으면 들을수록 '결정장애'라는 말은 명치를 한 대 맞는 듯한 표현이었다. 알쏭달쏭했던 그 표현은 곧이어 명백하게 차별적인 표현으로 다가왔다. '(장)애자 같다.'는 말은 혐오적 표현이라 하면서, '결정장애'라는 말은 개인의 우유부단함을 위트 있게 나타낸 표현이 될 수 있을까? 의도야 어떻든 간에 누군가를 희화화 시키거나 낮춰서 부르는 말은 절대 위트가 될 수 없었다.


 이러한 제기를 예민하다고 반응하는 사람들은 분명 비장애인일 것이다. '장애'라는 특성이 '무능력'으로 평가당해지는 기분을 느껴보지 않았기에 할 수 있는 반응일 것이다. 만약 내가 가지고 살아가는 '특징' 혹은 '질병'이 '능력 결여'라는 뜻으로 널리 사용된다면, 과연 내 기분은 어떨까? 무언가를 해내지 못하는 상황을 나의 이름 혹은 직업, 특성으로 대신 부르는 것과 동일한 상황이라 생각한다.


"하는 행동을 보니 딱 교사(특정 직업) 같네요."

"김철수(개인 이름)라서 결과물이 이렇지."

혹은

"아, 암(질병명) 걸릴 것 같다."란 표현마저도 말이다.




 그 말을 쓰는 사람들은 사실 악의는 없을 것이다. 어쩌면 몰라서, 많은 사람들이 사용하는 신조어이니까, 웃자고 가볍게 사용하는... 정말로 별뜻없이 쉽게 사용하고 쉽게 소비할 것이다. 그러나 이렇게 사용되는 '결정장애'라는 그 용어로 인하여 진짜 '장애'를 가지고 살아가는 사람들의 마음이 불편하고, 상처를 받는다면... 그건 잘못된 표현이 맞다. 명백히 잘못된 것이다.


 나도 몰랐을 때는 정말 몰랐다. 그러나 이러한 사실을 알게 되고 깨달은 후에는 '결정장애'라는 말을 듣거나 보게 되면 불편한 마음이 먼저 생긴다. 이 불편한 마음은 죄책감과 같은 잘못된 것이 아닌, 인지감수성을 가진 건강한 불편함일 것이다. 이런 건강한 불편함을 우리 모두가, 그리고 사회 전체가 가지게 된다면 누군가의 특징으로 상황적 어려움을 표현하는 일은 없어지지 않을까?




'결정장애'라는 말은
위트 있는 표현이 아닌
명백히 차별적인 표현이다.


매거진의 이전글 특수교사는 '천사'라는 꼬리표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