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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쫑알쫑알 대는 사람 Jun 02. 2023

엄마는 1호 팬

ㅡ지금도 이글을 보고 계신 ㅡ

몇 년 전부터 운영 중인 블로그를 하는 재미가 꽤 쏠쏠하다. 누군가와 일상을 공유하는 즐거움도 즐거움이지만, 더 큰 재미는 사실 센스 있는 이웃 블로거 분들의 댓글에 있다. 웃기기도 하고 혹은 이럴 수도 있구나 하는 놓친 어떤 감정을 일깨워주는 댓글들. 덕분에 매일 아침 출근길은 간밤에 이웃 블로거 분들이 남겨준 댓글을 하나하나 읽고, 부족하지만 나름의 정성을 담아 회신을 남기는 것으로 시작하곤 한다.


오늘도 역시 같은 루틴으로 출근길을 나서는데 문득 어디선가 많이 본 듯한 아이디가 눈에 띄는 것이다. 익명성이 가장 큰 매력인 인터넷 시대에 누가 봐도 키보드를 영문으로 바꿔 두고 한글로 실명을 적어 내려간 것 같은 조합의 아이디.


'오잉?'


눈을 비비고 다시 봐도 익숙한 아이디이다. 독수리 타자로 수줍게 처음 컴퓨터를 배우기 시작했던 그 시기, 독수리 타자를 대신해 내가 직접 만들었기에 절대 잊을 수 없는 아이디. 이럴 리가 없는데? 종종 블로그 포스팅에 ‘좋아요’ 하트를 누른 적은 있지만, 이분이 댓글에 직접 등판하셨다니…?! 하던 생각 중 문득 떠오르는 목소리 하나.  



“댓글이 이렇게 많이 달리면, 블로그 인기가 더 많아져?”


지난 주말 소파에 누워있는 내게 넌지시 물어보는 목소리가 있었다.


“블로그 이웃도 많고, 이웃들이 좋아요나 댓글을 많이 남겨주면 좋지!?”


나른한 기분에 영혼 없이 대답하는 나를 보며 잠시 돋보기를 고쳐 쓰고 ‘끄덕’ 하는 엄마였다. 이래 서였나 보다. 가끔 의외의 행동으로 딸들을 놀라게 하는 엄마지만 오늘은 조금 더 놀랍다. ‘괄괄’한 성격의 딸과는 전혀 다르게 내성적인 덕분에 다른 사람에게 질문 하나 하려면 단어를 열댓 번은 더 고르며 연습하는 엄마다. 코가 닿을 만큼 핸드폰을 뚫어져라 살펴보며 어떤 말을 쓸까 한 참을 고민하면서, 한 글자 한 글자 오타 없이 쓰려고 수십 번 쓰다 지운 뒤 남았을 짧은 한 문장.


“어머, 나도 막국수 좋아해요.”


평소 습관대로 맞춤법까지 딱 맞춰서 남긴 댓글. 누가 보면 절대 얼굴 한번 본 적 없는 이웃 블로거분들 마냥 거리를 유지하려 노력한 엄마의 댓글에 괜스레 ‘찡’한 느낌이 드는 것이 약간 과하다 싶기도 하지만, 이상하게 감동이다. 코끝이 시큰하다.  



그러고 보니 어린 시절에도 그랬다. 종이 신문이며 홈페이지이며 한편에 실린 나의 수줍은 글들은 엄마 손길에 모두 반듯하게 오려져 파일첩에 꽂히곤 했었다. 크기도 종이도 제 각각이던 그 옛날의 글을, 나를 애지중지 모아두셨다가 이따금씩 꺼내 보곤 하는 나의 1호 팬. 하고 싶은 것이 많아 먹고 싶은 것도 많겠다 핀잔을 아끼지 않지만, 등뒤에서는 애정 듬뿍 담긴 눈길로 보고 또 보는 나의 소녀 팬이다.


소심하지만 정 많은 나의 1호 팬을 위해서 고심 끝에 특별한 댓글을 준비했다.


“격하게 사랑합니다~ 이웃님 (하트) (하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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