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의 가치
"아빠, 이건 아빠 팬티야?"
"응, 대충 저기다가 놓으면, 아빠가 수거해 갈게"
"아빠, 수건은 어떻게 접어?"
"응, 이렇게 반을 먼저 접고, 그거의 반을 접고, 한번 더 포개고, 마지막으로 반을 접으면 돼"
일요일 오전, 필자와 둘째 딸, 우리 둘은 빨래건조기에서 많은 빨래를 통으로 옮긴 뒤, 세탁물을 분류하고 포개는 일을 같이 하고 있었다.
물론, 둘째 딸을 공짜로 '부리는' 것은 아니다. 그녀는 나에게 노동의 대가로, 그가 유튜브를 볼 수 있는 '시간'에 대한 교환을 요구할 것임이 분명하다.
일요일 오전은 둘째 딸과 나만 남는 시간이다.
와이프는 단시간 근로를 위해 집을 비우고, 첫째 딸은 재작년부터 독실한 기독교 신자가 되어 홀로 교회를 다녀오기 때문이다. 그 덕분에, 필자가 가끔 회사에 일이 조금 있다는 핑계로 잔업을 하러 나가는 날은, 일요일이 아닌 토요일로 고정된다.
필자는 집에 있는 아이들에게 "세상에 공짜는 없다."는 이야기를 자주 한다.
아마 두 딸들은 그거 때문에 귀에 피딱지가 앉아있을지도 모르겠다. 그런 가치관을 심어주기 위해, 집안에서 나름의 규칙을 만들어 아이들에게 적용을 하고 있는데, 그것은 바로 "일 한만큼 돈이나 시간으로 교환해 주는 제도"이다.
예를 들면, 집안일을 하면, 일한 만큼의 시간에 가중치를 적절히 부여하여 각자의 핸드폰이나 닌텐도 스위치에 시간을 할당해 주는 방식이다.
집안일에는 설거지, 집 청소, 세탁분류 및 접기 등의 일들을 주로 맡기는데, 어디선가 봤었던 '아빠 혹은 엄마에게 커피나 차 타오기'등의 일은, 투입 노력대비받아가는 시간이 많아 자연스레 아이들에게 의뢰를 하지 않게 되었다. (아이들은 물론 아쉬워한다. 투입대비 결과물이 가장 좋은 일중의 하나라)
아울러, 필자는 심부름도 종종 시킨다. 우유를 사 오라고 시키거나, 필자가 먹고 싶은 과자나 아이스크림을 주문하기도 한다.
이런 경우는 대게 아이들이 자신이 먹고 싶은 과자들을 추가로 골라, 시간이 아닌 '돈'으로 자신들의 노동의 대가를 받아가는 편이다.
"어머, 아직 그런 거 하기엔 너무 어린 나이 아니에요?"
필자는 회사 동료들과 육아와 관련된 이야기를 거의 나누지 않는다.
그 이유는 각자 집에서 양육하는 방식이 모두 다르기 때문에, 양육방식을 듣고 그 사람에 대한 선입견이 생기거나, 혹은 상대방이 필자에 대한 선입견이 생길 것을 우려하기 때문이다.
아주 가끔 술자리등에서 앞서 이야기했던 에피소드를 이야기하면, 위와 같이 반문하는 회사 사람들도 종종 있다.
돌이켜 보건대, 그 당시에도 여유가 있던 극소수의 친구들을 제외하면, 필자와 비슷한 유년시절을 거친 3040 또래들의 기억 속에, '심부름'이라는 일은 너무나도 당연하게 행해져 내려오던 일들이었다.
필자 시절엔 담배 심부름도 허용이 되던 시기라, 아버지께서는 늘 '디스 두 갑만 사다다오'라는 심부름을 내게 시키곤 하셨었다.
아마, 그 당시 어른이던 아버지가 어떤 생각을 가지고 계셨을지는 잘 모르겠다. 진짜 본인이 귀찮아서 나에게 심부름을 시키셨을 수도 있고, 조금이라도 필자의 생각처럼 '노동의 대가'에 대해 고민해 보라고 그러셨을 수도 있겠다.
어릴 때의 필자와, 지금의 아이들의 성장과정을 돌이켜 보면, 그렇게 차이가 난다고 보기 어렵다. 모두 비교적 안정된 주거공간에 거주하고, 그 당시보다 가구당 소득 수준은 더욱더 올라가 있다.
아울러 필자가 배웠던 수학과정에서 약간의 차이는 있겠지만, 우리 아이들도 배워 나가고 있다. 즉, 필자가 밟았던 예전 유년 시절을 비슷하게 걸어가고 있다는 이야기다.
이것이 단편적으로 나마, 지금 자라는 아이들이, 필자와 같은 어른세대가 겪었던 유년시절대비 더 많은 보호를 받아야 하는가에 대해, 커다란 의문을 가지고 있는 이유이다.
앞서 언급한 몇몇 동료들의 이야기처럼, '다 해주는 부모'가 틀리다는 이야기는 아니지만, 기본적으로 필자의 양육방식과는 방향성이 많이 다른 부분이다.
필자도 우리 아이의 미래가 필자의 지금 삶보다 더 밝았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갖고 있다.
하지만, 앞으로 아이들이 살아가야 할 세상이라는 곳은, 필자의 어린 시절 보다 더 세련되고 예뻐지고, 게다가 친절해 지기까지 한 '교과서'와 같지 않고, 지금 겪고 있는 사회보다도 더 냉혹할지도 모르겠다는 불안한 마음이 든다.
그리하여 부모로서 아이들에게 조금이나마 사회에서 통용되는 '교환'이라는 매매 개념을 심어주려 한 것일지도 모르겠다.
"지금은, 노동의 가치를 '시간'으로 바꾸지만, 나중에 너희가 크면 '돈'으로 바꾸는 거란다."
아이들에게는 산책등을 통해 기회가 될 때, 이런 이야기도 덧붙여 이야기를 해 준다.
"그럼, 나중에 크면 시간이 없는 거 아냐?"
첫째 딸의 질문에, 잠시 고민에 빠졌다.
"응, 맞네. 어른이 되면 시간이 없고, 어릴 땐 돈이 없어. 그런데, 시간과 돈이 둘 다 없는 사람들도 많아^^"
자라 나는 새싹인 아이들에게, 좋은 이야기만 해주고 싶은데, 이럴 때도 새싹밟기를 하고 있는 필자였다.
"아빠, 다했어"
"어이쿠 잘했네. 소미는 손이 참 맵고 야물다."
"헤헷, '시간 줘'"
"얼마나 줄까?"
"응... 11시 56분부터 해서, 12시 20분까지 했으니까, 30분 줘"
원래 같으면, 정확히 24분을 부여해야 하나, 세탁물을 포개고 분류한 작업의 퀄리티가 너무 나도 훌륭하다고 여겼기에, 나는 아이의 말 대로 30분을 부여했다.
"자 30분, 시간 넣어놨어"
"응 고마워"
둘째 딸의 도움으로, 겨우 빨랫감들을 분류하고 구성원들 각자의 서랍에까지 속옷등을 잘 넣어놓을 수 있었다. 고사리 손으로 양말 짝을 맞추고 빨래를 개던 녀석의 모습이 생각나 뒤를 돌아보니, 그녀는 열심히 유튜브 숏츠를 보기에 여념이 없었다.
나중에 더 크면, 영화에서 자주 나오는 거처럼 아빠볼에 뽀뽀만 하고 용돈을 뜯어가는 딸들이 되겠지? 아빠가 항상 이야기하던 '노동의 가치' 운운하며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