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네 인생이다.
내가 브런치 스토리를 시작한 지 벌써 3년이 넘었다는 것에 세상 놀랄 때가 많다.
처음엔 그저 내 마음속의 상처를 치유하기 위한 글쓰기를 시작해 보자는 가벼운 생각이었다. 시간이 흘러 그때 그 상처가 아물어 갈 때쯤에도 나는 습관처럼 이곳에 "일기 반 에세이 반" 형식의 글을 써 내려가고 있었다. 일상생활을 살아가는 데 있어 누군가로 인해 불편했던 이야기, 회사에서 누구에게 이야기하지 못하는 하소연, 성장하지 못하는 우리 사회등의 주제들을 기반으로 내 서재를 채워 나갔던 거 같다. 그와 동시에 참 부지런히 도 카메라를 들고 이곳저곳을 돌아다니며 많은 피사체를 내가 담았더랬지... 와이프가 나의 글과 사진을 콘텐츠로 독립 출판을 한다고 했을 때 그제야 내가 만든 수많은 사진과 글들을 다시 한번 되돌아보는 계기가 되었다.
늘 마음속 어딘가에서는 내가 쌓아둔 글과 사진 재료들을 가지고 한번 정도는 책으로 묶어 보고 싶다는 바람이 있었다. 사실 글을 쓰거나 사진을 찍는 사람들이라면 누구나 한 번쯤은 생각해 보는 바람이 아니었을까? 그러던 와중에 우연히 인스타 그램으로 알게 된 '독립 출판' 광고를 접한 뒤 와이프가 나의 글재료를 가지고 책 편집 디자인을 해보기로 하였다. 이것이 이번에 세상에 나오게 된 나의 사진 에세이 책의 탄생 근원이었다.
비록 독립출판, 즉 출판사를 끼지 않고 자체 제작하여 만드는 책이라고 하였으나, 그 책의 콘텐츠가 재미없고 사람들의 기대치보다 낮게 나오면 어떻게 하나 걱정했지만 그것은 기우였다. 와이프가 우여곡절 끝에 약 6주간의 책 디자인을 마치고 샘플책을 내게 가져와 보여 주었을 때, 마음속으로 '기대 이상이다'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고 브런치 스토리 등의 웹상으로 보는 글과 다르게 활자로 인쇄되어 읽게 된 나의 글들은 좀 더 명확한 가독성을 갖게 되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앞서 이야기했듯 에세이의 출간배경에는 '한번 해볼까?'라는 호기심이 많이 내포되어 있었을 뿐, 상업적 혹은 영리적 목적자체가 없었다. 내 이야기를 지인들이 아니면 누가 관심 있게 봐주겠는가 하는 생각에 한 열 권 정도 제작해서 부모님 한 권씩 드리고 친한 분들께 선물로 드리려는 목적이었다.
하나, 독립 출판을 통한 책 제작 단가는 내 생각보다 높았다.
아울러 출판할 책의 양이 많아질수록 단가가 내려가는 구조다 보니 책의 사전 주문량을 체크해서 적절하게 출간할 양을 조절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리하여 우리가 발견한 플랫폼은 '텀블벅'이었다.
텀블벅은 심플하게 단기간 물건을 구매할 사람을 펀딩 하여, 프로젝트 주인이 설정한 목표치를 초과하면 제작에 들어가고 그렇지 않으면 무산되는 구조를 가지고 있다. 그 안에서 텀블벅은 설정한 목표치의 10프로를 플랫폼 수수료로 가져가는 구조였다. 그리하여 필자의 경우처럼 몇 권을 인쇄해야 할지 잘 감이 오지 않는 독립출판 간행물의 경우 이 플랫폼을 자주 이용 한다고 들었다.
텀블벅 심사를 통과 한 날, 나는 PC를 켰다. 그리고 메모장을 열어 카카오톡으로 지인들에게 공유할 텀블벅 홍보 문장을 만들어 보기 시작했다.
"[광고](죄송합니다) 안녕하세요, 그간 짬짬이 개인적으로 사진도 찍고 글도 쓰다가 이번기회에 독립 출판 형식으로 책을 한 권 편집하게 되었습니다~"
주어를 일부러 빼봤다. 그간 앞에 '제가'라는 말이 오지 않더라도 평상시 나를 조금이라도 아는 사람은 공감을 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마음이었기 때문이었다.
카카오톡 대화 목록 저 멀리 내려가 있는 단체방들이 눈에 띄었다. 대학교 학군단 동기들, 중학교 2학년 때 친구들, 대학교 동아리 친구들 모임방. 조금 더 어렸을 적 수많은 단체방의 홍수 속에서 쉴 새 없이 울려대던 나의 카카오톡 대화방 틈바구니에서 합류와 이탈을 반복하여 지금의 단톡방만이 '목숨'을 부지한 것이었다. 광고글을 올려야 하기에 다소 부끄러웠지만, 나는 해보기로 하였다. 내 콘텐츠에 나름의 자신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형님들, 혹시 라면받침 하나 안필요 하세요?"
단톡방의 규모가 아주 작거나, 개개인의 지인들께는 '라면 받침'으로서 활용해 달라며 내 책 홍보를 이어가기도 하였다. 그렇게 이제까지 나의 카카오톡 친구 목록에 살아남은 분들에게 도움을 청했고,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더 많은 분들의 진심 어린 응원과 호응이 이어졌다.
'정치입문 하는 거야? 책썼어?'
'빛 담아 너무 멋지다. 후원하기 하면 되지?'
'옛날부터 렌즈를 통해 세상을 보는데 관심이 많더니 결국 책을 내는구나. 바쁜 일상 살아가느라 말라버린 감수성이 각질처럼 벗겨지는 것을 날마다 느끼는데, 순수한 예술에 대한 열정을 불태우는 네가 존경스럽다. 작가로서 성공하는 날을 기대하고 기도할게. 책 하나 구매한다 ^^'
'빛담 책 꼭 사서 볼게 그리고 날이 좋아지는 봄이 오면 한번 보는 것도 좋을 거 같은데 다들 보고 싶다'
'저두 방금 후원하기 했는데 4월에 올 거라고 쓰여있네요! 기대할꼐요 프로님~~'
다들 각자의 언어법으로 나를 축하해 주는 친구들, 사실 그동안 연락을 쭈욱 못하고 지냈었더랬다.
내가 너무 생각이 많아져 그런 거 같았다. 앞서 언급한 친구들의 오프라인 모임이 있으면 그래도 용기 내어 나가곤 하는 편이었는데 요새는 친구들 결혼도 없고 누구도 앞서 모임을 주도하지 않기 때문에 거의 대부분 만날 기회가 없어진 것이 큰 이유였었다. 심지어 내가 결혼할 때 이후 만나지 못한 친구들도 많으니 약 십 년 넘게 못 본 친구들도 많았다. 하지만 내 생각보다 많은 사람들이 나에게 호응해 주는 것을 보고는 다시 한번 많은 것들을 생각해 보게 만들었다.
너무 스스로를 경계한 것은 아닐까? 누군가와 만난 다는 것에는 나의 행동이나 말로 인해 상대방을 불편하게 할 수도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과 더불어 그 반대의 경우를 통해 내가 상대방으로부터 피해를 입일 수도 있지 않을까 하는 경계태세가 나의 머릿속을 지배하고 있었다.
'쟤 연락도 안 하더니, 뭐 좀 나왔다고 갑자기 홍보하네?'
'바쁘지도 않나 봐, 사진이랑 글 쓸 시간도 있고, 팔자 좋네'
하는 부정적인 피드백을 나에게 직접 해주는 친구들이 있지는 않을까 우려했었는데, 다행히 그런 사람들은 없었다. 앞서 언급한 것처럼 각자의 언어법으로 나를 좀 더 응원해 주는 친구들도 있는 반면에, 말은 별로 하지 않지만 마음속으로 응원해 주는 친구들도 분명 많았으리라 생각한다.
이렇게, 나는 많은 사람들에게 또 한 번 '빚'을 지고 살아가게 되었다.
일을 핑계로, 내가 해야 했던 편집디자인을 내 대신해 준 와이프에게 가장 큰 빚을 지게 되었고, 책이 출판되었다고 이야기를 하자 많은 호응을 해준 친구들에게도 또 한 번 빚을 지게 되었다. 이런 빚은 나는 세상 사람들이 더욱더 많이 지고 더더욱 갚아 나가도 괜찮은 '좋은 빚'이라고 생각하고 있다.
처음에는 그저 '책 한 권 내보면 좋겠다.'는 생각에 시작한 프로젝트였는데, 결과물이 나오고 책을 홍보하는 과정에서 또다시 나의 그간 인생사와 궤를 같이 했던 친구들로부터 도움을 받을 수 있게 되었다. 내가 진 빚들을 또다시 부지런히 갚아볼 요량이다. 오프라인 모임에도 빠지지 않고 나가려 노력해 보기로 했다.
그리고 더 많은 사람들의 이야기를 듣고 그들을 공감해 줄 심적 여유와 연료도 충전할 수 있는 좋은 계기가 된 요 며칠의 이야기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