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르장머리 없게..
누군가 나에게 “가장 고치고 싶은 한 가지가 무엇인가요?”라는 질문을 한다면, 나는 주저 없이 ‘절교’ 하는 버릇을 고치고 싶다고 이야기할 것이다.
오늘은, 과거 나의 상황과 생각에만 매몰되어 소중한 친구들을 잃어버렸던 나의 후회담에 대해 이야기하고자 한다.
중학교 시절부터 이어온 소중한 친구들이 있었다. 우리는 초등학교 중학교 고등학교는 비록 다 달랐지만, 나를 포함한 우리 여섯 명의 공통점은 바로 ‘무지개’ 아파트에 지금 살고 있거나, 살았던 경험이 있는 친구들이었다. 그래서 내가 이 모임의 이름을 지었다. “레인보우 유나이티드”라고 말이다. 그 당시는 지금과 다르게 잉글랜드 프리미어 리그가 유행할 때라, 우리 모임명에 나는 꼭 유나이티드를 붙여보고 싶었다.
이 모임의 대부분의 친구들과 사실 나는 연이 없었다. 그저 동네를 오며 가며 서로 마주쳐도 인사는 하지 않지만 그래도 얼굴을 아는 우리는 그 정도의 연을 유지하고 있었다. 그들과 함께 하게 된 계기는 중학교 3학년 때 만나게 된 J와 친해지면서부터였다. J가 적극적으로 나를 그 무리에 구성원들에게 소개해 주었고 나는 큰 어려움 없이 그 모임에서 친구들과 어울릴 수 있게 되었다. 그렇게 레인보우 유나이티드라는 친구 모임은 나의 10대 후반부터 삼십 대 초반까지의 대부분의 친목모임에서 가장 중요한 관계로서 자리매김하게 되었다. 내가 힘들거나, 다른 친구들이 힘들거나, 혹은 축하할 일이 있거나 그것도 아니면 술 먹을 사람이 없을 때 그들과 어울리는 것이 항상 내 관계 중에 우선순위가 가장 높았었다.
그렇게 우리는 나이를 먹어가기 시작했다. 그 사이 대한민국의 여느 남자애들처럼 수능을 보고 대학교를 입학했고 군대를 모두 다녀왔다. 아울러 각자 상황에 맞춰 일자리를 얻고 사회에 한 명 한 명 진출해 나가기 시작했다.
우리 여섯 명 중에는 내가 가장 빠르게 ‘어른’이 되었다고 생각이 들었다.
친구들 사이에 가장 먼저, 그리고 남들이 보기에 번듯한 직장을 우여곡절 끝에 잡을 수 있었던 것이었다. 게다가 무리들 중에 내가 먼저 결혼을 하게 된 것이었다. 그것도 뱃속의 태아와 함께 말이다.
그렇게 나는 자라온 시간 중 가장 많은 시간을 함께 했던 친구들과의 관계보다, 내가 책임져야 하는 가족과 더불어 가족을 먹여 살릴 수 있는 직장에서의 자리매김을 더 우선시해야만 했다.
그때부터였을까? 나는 친구들의 시간보다 나의 시계가 좀 더 빠르게 지나간다고, 좀 더 의미 있는 일을 하며 살아가고 있다는 커다란 착각을 하기 시작했다.
오늘도 R.U 카톡방에는 간밤에 100개의 카톡 메시지가 와있었다. 밤에 아이가 도통 못 자서 비몽 사몽 하며 지나가느라, 두 눈꺼풀이 1톤은 되는 거 같다. 겨우 머리만 감고 옷을 입고 출근하는 만원 지하철 안에서 밀린 카톡방을 하나씩 보며 ‘의무감’으로 카톡 대화방에 적혀 있는 ‘숫자’를 지워 나가는 중이었었다.
“나 어제 소개팅에서 만난 여자애한테 또 차였다.”
“또 차였어? 택시비는? “
”택시비도 내줬는데... 차여버렸다. “
또 소개팅 이야기다. J는 오늘도 짝사랑 중이다. 안 들어도 비디오다. J는 여자한테 음식값만 뜯기고 차였을 것이다. 전혀 신선하지 않은 이야기였다.
”얘들아, 오늘 리니지 게임 서버 접속해라. 사냥하러 가자. “
”오케, 끝나고 플스방 가서 위닝콜? “
”고릿~“
또 게임 이야기다. 나는 이제 게임을 할 수가 없는 상황이다. 게다가 삼십 대 초반인데, 아직도 사회에 자리를 잘 잡지 못한 몇몇의 친구들은 여전히 어떤 게임을 할지 고민 하나보다. 점차 이런 대화가 지겹다. 내가 함께 할 수 없는 이야기들. 사회가 어떻게 돌아가는데, 여전히 그들은 아직 ‘어른’이 되지 않았다고 나는 여기고 있었나 보다.
그렇게 몇 년의 세월이 지나고, 나는 점차 친구들 사이에서 자발적으로 멀어져 가고 있었다. 거의 매주 있던 노원역 먹자거리에서의 술자리에도 이제는 아이가 꽤 커서 참석을 할 수 있음에도 참여하지 않게 되었다.
“여보, 친구들하고 무슨 일 있어?”
“응... 그게, 나랑 다른 세상에서 살고 있는 친구들 같다는 생각이 들어. 어떻게 보면 한심해 보여.”
그 사이 나는 돈을 아끼고 모아 우리 가족이 살 집 한 채를 구매할 수 있었다. 그제야 내가 그동안 감당해 보지 못했던 ‘빚’이라는 중압감을 처음 경험해 볼 수 있었다. 한 달에 빠져나가는 원금과 이자, 이것을 제외하고 생활비를 와이프에게 가져다줘야 되는데 스스로 좋은 가장이 아니라는 자아비판적인 생각도 자주 하던 때였다. 어찌 손쓸 도리가 없었다. 우리가 해야 할 것은 그저 아끼고 또 아끼는 것뿐. 언젠간 이 빚을 갚는 날이 올 테니까, 그때 하고 싶은걸 조금 하고 살면 된다고 생각할 때였다.
‘+300개‘
레인보우 유나이티드 카톡방 제목 옆에 내가 읽지 않은 말 풍선이 표시되어 있었다. 그렇다. 나는 이미 친구들과 ’ 정서적 이별‘을 고한 것일지도 모르겠다.
채팅방을 클릭해 안 읽은 내용을 대충 훑어봤다. 앞서 이야기했던, 몇 년 전 나누던 여자 소개팅 이야기, 게임 같이 하자는 이야기, 돈 만원이 없는데 누가 좀 빌려달라는 이야기 등등이 적혀 있었다. 나는 그 순간 그들이 ’ 한심‘하다는 생각이 확 들면서 이 방에 내가 함께 있는 것이 정말 부끄럽게 여겨졌다.
’곧 서른다섯인데 우리가... 아직도 부모집에서 함께 살고 여자한테 까이고, 게임 타령이야? 돈 만원이 없어?‘
나는 결국 ’ 대화방 나가기‘를 클릭했다. 그들에게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 후 두어 번 정도 J가 나에게 개인적으로 말을 걸었다.
“빛담, 너무 오래 나가있지는 마.
다들 걱정한다고.
뭔 일 있었냐?
우리가 너한테 서운하게 한 거 있어?
말로 표현해야지 우리가 어떻게 알아.”
“응, 마음 정리되면, 돌아갈게.”
그게 마지막 J와의 대화였었다. 하지만 그로부터 9년이 지난 지금에도 나는 그 방에 다시 들어가겠다고 초대해 달라는 말을 하지 못하고 있다.
레인보우 유나이티드 친구들 외에도, 이십 대 때 나의 생활 범위 반경이 커지면서 만나게 된 다양한 집단들이 있었다. 회사 동기 모임방, 여행친구들 방, 등등. 서두에 말했던 대로, 나는 그때 이런 방들 대부분을 나가며 정서적 이별을 고했다. 주된 사유는 ‘나와 맞지 않는다’는 생각. ‘내가 주인공이 될 수 없다 ‘는 생각에서였던 거 같다. 기억을 되짚어 보면 그들도 J처럼 나에게 영문을 묻곤 했다. 나는 솔직하게 대답할 수가 없었다. 뭔가 쿨 해 보이지 않고, 쪼잔해 보인다고 생각했었나 보다. 그리고 가장 주된 이유로 ”언제든 친구를 만들 수 있다. “라고 생각했던 나의 오만함이었을 것이다.
점차 나이를 들며 나의 성향이 외향적에서 내향적으로 바뀐 것도 매우 크거니와 실제 사회생활을 하며 이제는 관계 확장보다는 관계 유지에 좀 더 초점을 맞춰 살아가게 되어 좀처럼 격의 없는 친구를 사귀는 것이 참 어려워졌다고 생각하게 되었다.
게다가 요 몇 년간 자전적 에세이를 쓰며 스스로 느낀 바, ”내가 상대방을 이해하려는 노력도 안 해놓고, 나는 상대방으로부터 이해받으려 했구나 “ 하는 깨달음이, 가장 친한 친구들을 손절한 것부터 하여 몇몇 준거집단의 친구들 마저 홀로 이별을 고한 것에 대한 후회감이 밀려오기 시작했다. 그들은 잘못되지 않았는데, 그저 그들도 오늘 하루를 열심히 나름대로 살았고, 자신이 하고 싶은 이야기를 친한 친구들에게 그냥 하던 것뿐인데, 나는 단체방에서 마치 ’ 주변인‘이 된듯한 느낌 하나 만으로 그들을 가해자처럼 만든 셈이 돼버렸다. 정작 가해자는 나인데 말이다.
기회가 만약 주어진다면 내가 그들에게 행동했던 무례함에 대해 사과를 하고 싶다.
그들에게 용서를 받거나 다시 예전처럼 친해지고 싶다는 욕심을 갖지는 않는다. 그저, 9년 전 빛 담은 지금보다 불안정했고, 주변보단 중심에서 너희와 함께 하고 싶은 욕심이었는데. 지금 돌이켜 보면 잘못된 생각이었다고. 나의 행동으로 인해 혹시나 불편해했을 친구가 있다면 정말 미안하다고 말이다.
내가 어른이고, 너희가 아이인 줄 알았는데 곱씹어보니 그 반대였다고.
지금은 얼마 남지 않은 나의 단톡방 관리를 아주 열심히 잘하고 있는 중이다. 나의 관심사가 아닌 글이 올라와도, 댓글로 표현까지는 안 해도 ’ 좋아요 ‘ 정도는 눌러 성의 표시를 하는 편이다. 가끔은 이렇게까지 해야 하나 싶기는 한 방도 몇 개 있지만 그래도 예전처럼 ‘절교’ 할 정도의 방은 현재 남아있지 않다. 이렇게 소중한 친구들을 잃어가며 낸 수업료인데, 더는 몇 남지 않은 관계들도 잃어버리고 싶지 않은 요새 나의 심정이다.